정태인의 <뉴스브리핑> 세계의 공동대응이 필요하다

등록 2001.09.13 08:16수정 2001.09.13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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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테러의 충격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서 냉정을 되찾고 있습니다. 물론 미국에서는 아프니스탄에 전술 핵무기를 사용하는 방안까지 나오는 등 강경 일변도의 분위기입니다만 유럽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미국 테러 이모저모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11일(이하 현지시각) 워싱턴과 뉴욕 등에서 발생한 유례 없는 동시다발 테러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데 대해, "사악한 테러 행위의 책임자 뿐 아니라 그들을 숨기고 보호해 주는 자들까지 색출해 응징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부시 대통령은 이날 저녁 전국에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된 대국민 연설을 통해 “모든 자원을 동원해 책임자를 밝혀내고 법의 심판을 받도록 할 것을 정보 및 법집행 당국에 지시했다”고 말했습니다. <엠에스엔비시>는 부시 행정부가 보복을 위해 빈 라덴이 은신해 있는 아프가니스탄에 전술핵무기를 사용하는 방안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피가 피를 부르는 악순환이 드디어 시작될 듯 합니다. 테러리즘을 합리화할 수는 없지만 전술핵무기를 사용하겠다는 등, 비이성적인 발상에 몸서리가 쳐집니다.

다른 어떤 나라 국민의 목숨도 미국민의 목숨과 등가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겁니다. 우리의 언론까지 '전쟁 불사'를 당연한 것처럼 보도하고 있다는 사실도 또한 끔찍합니다.


현재 어느 단체나 나라도 이번 일이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밝히고 있지 않지만, 미 행정부 관계자들은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의 테러리스트인 오사마 빈 라덴을 배후로 지목했습니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납치된 여객기 안에서 빈 라덴의 추종자로 보이는 테러 용의자들의 통화 내용을 감청한 결과 이런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매사추세츠주 수사당국은 한 승용차에서 아랍어로 쓰인 비행훈련교본을 발견하고 이 승용차에 있던 5명의 아랍인들을 이번 테러공격 용의자로 지목했다고 <보스턴헤럴드>가 이날 보도했습니다. 이 중 두 명은 아랍에미리트연합 여권을 소지한 형제이며, 그 중 한 명은 훈련을 받은 조종사였다고 수사관의 말을 빌려 이 신문은 전했습니다. 또 적어도 2명이 캐나다와 미 메인주의 포틀랜드를 거쳐 11일 항공기가 납치된 보스턴 로건국제공항에 도착했다고 밝혔습니다.

한편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은 미국 수사진들이 확보한 범행증거가 확실하다면 이번 사건 혐의자인 오사마 빈 라덴 씨의 신병 인도를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범인들이 납치한 비행기에 타고 있던 승객과 승무원 266명은 전원 사망한 것으로 보입니다. 또 무역센터에 인명구조를 위해 진입했던 소방관 300여명, 경찰 78명도 실종됐습니다. NBC는 펜타곤에서도 사망자가 800여명에 이른다고 전했습니다. 재산피해 역시 천문학적 숫자에 이를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주미 한국대사관은 12일 현재 워싱턴 지역에 거주하는 한국교민들 중 이번 사건으로 피해를 입은 사례는 아직 접수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유럽, 미국 지지속에서도 성급한 보복 우려

서유럽 국가들은 전대미문의 대형 연쇄 테러에 대해 경악을 금치 못하면서도 미국의 성급한 보복과 이로 인한 폭력의 악순환을 우려했습니다.

이와 함께 유럽 여론은 이번 사태로 미국이 추진 중인 미사일 방어체제의 무용성이 드러났다며 반미감정 고조의 원인이 되고 있는 이 체제의 구축을 재고할 것을 미국에 주문했습니다.

벨기에의 드 스탕다르지는 "미국이 끝없는 폭력의 악순환에 빠져들지 않으려면 냉정을 되찾는 것이 현명할 것"이라고 지적했고 영국의 인디펜던트지는 "문명사회가 문명화된 가치를 저버리고 무고한 사람들을 향해 무차별 폭력을 사용하는 것은 바로 테러분자들에게 패배하는 길"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또 포르투갈의 엑스프레소지는 "폭력에 굴복해서도 안되겠으나 테러에 테러에 대응해서도 안된다"고 강조했으며 덴마크의 인포메이션지는 "어떤 미사일 방어체제도 부시를 이같이 대규모 인간적 테러로부터 보호할 수 없다"고 보도했습니다.

한편 나토는 12일에 두 차례의 비상회의를 소집해서 이번 테러를 나토동맹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고 공동방어조치에 나설 것인지 여부에 대한 검토를 했습니다.

세계의 금융.상품시장도 안정세를 회복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입니다. 오늘 아시아의 주가도 어느 정도 회복될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씁쓸한 것은 아시아의 동반 주가하락 속에서도 한국의 하락폭이 제일 컸다는 사실입니다. 언론도, 주식 매매도 호들갑인가요?

세계 금융.,상품시장 안정세 회복

세계 금융 및 상품시장이 12일 하루만에 안정세를 회복했습니다. 유럽증시들은 전날 폭락했던 주가가 12일 개장 초까지 이어졌다가 반등해서 대부분 상승세로 장을 마감했고 달러화도 반등했습니다.

유럽 증시의 이날 반등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와 유럽중앙은행 등 중앙은행들이 금리를 인하하고 유동성을 공급하리라는 기대에 따른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설명했습니다.

폭등했던 국제원유가격과 금값도 하락세로 돌아섰습니다.

한국, 주가 64.97P 폭락

미국 테러 사건이 불러올 충격을 흡수하기 위해 12일 증시는 낮12시에 개장했으나 열자마자 매도주문이 매수주문의 100배를 넘어서는 투매가 이어졌습니다. 결국 주가지수가 64.97P 폭락해서 475.60으로 마감했습니다.

이날 하락률 12.02%는 지난해 4월 17일 11.63%를 경신한 사상 최대이며 주가지수도 98년 12월 4일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습니다.

세계 각국 증시도 폭락세를 보여 일본도쿄 증시 6.63%, 홍콩과 싱가포르 증시는 각각 8.87%, 7.42% 떨어졌습니다. 대만, 타이, 말레이시아는 휴장했습니다.

진념 부총리는 "외환시장에서 원화가격이 투기세력에 의해 급등락할 경우 정부가 개입할 수 있다"고 말했고 전철환 한국은행 총재도 "자금수요가 있을 경우 필요한 현금과 유동성을 즉시 공급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한국경제 3대 악재 처리에도 악영향 가능성

미국의 참사는 현대투신증권 매각, 대우자동차 매각, 하이닉스 반도체 회생 등 우리 경제의 3대 현안에도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습니다.

우선 현대투신증권에 10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한 AIG컨소시엄의 AIG보험사는 이번 사태로 상당한 보험금을 물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대우차의 경우에도 GM 쪽의 주간사를 맡고 있는 모건 스탠리가 무역센터 건물의 10%를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업무 재개에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또 미국 소비시장의 위축으로 인해서 대우차 인수나 부평공장 생산차량의 위탁판매 건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입니다.

하이닉스 반도체의 경우도 정보기술산업이 이번 사태로 가장 큰 피해를 볼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간접적인 피해가 만만치 않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국제적 대응

UN은 12일 안전보장이사회와 총회를 열어 미국에서 일어난 동시다발테러에 대해 논의할 예정입니다. 안보리 대변인은 안보리 공개회의에서 동시다발테러를 비난하는 결의안을 채택할 것이라고 말했으며 총회도 한승수 외교통상부장관을 신임 의장으로 선출한 뒤 결의안을 통과시킬 것으로 보입니다.

정태인의 오늘 그리고 내일

세계의 공동 행동이 필요할 때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전략의 문제점에 관해서는 몇번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번 사건이 중동의 테러조직에 의해서 벌어진 일이라고 가정하고 이번 사건의 두드러진 주역들을 한번 생각해 봅시다.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지난 1년간 중동의 비극을 촉발시키고 계속 강경책 사용), 중동 쪽의 테러집단의 지도자(미국에 대한 테러로 보복전을 확산시킴), 부시 대통령(중동에 대한 강경책을 사용했으며 이번 사건에 대해 무차별 보복을 가할 가능성)이 누가 뭐래도 주역입니다.

다들 강경파입니다. 그렇다면 피해자들은 누굴까요? 그동안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에서 희생당한 수천명, 미국민 만여명, 그리고 앞으로 희생당할지도 모를 무수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대부분 강경파들의 대립과 무관한 사람들일 겁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Tit For Tat)전략, 즉 상호주의 전략을 사용하는 한 이런 비이성적인 일들은 계속 일어납니다. 어설픈 학자들이나 평론가들이 게임이론을 들고 나와 TFT가 가장 합리적인 행위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반복해서 보복이 이뤄질 경우 기회주의적 행위가 사라질 것이라는 얘깁니다. 또 각 개인은 물질적 이익만 추구하는 사람들로 상정돼 있습니다.

보복이 없어질 때까지 보복을 해야 한다는 기막힌 역설, 더구나 그것이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담보로 하는 일이라면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전략입니다. 또 미국과 중동의 대응은 '자존심'이라는, 물질적 이익을 넘어선 목표를 추구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피의 보복을 막아야 한다는 국제 여론과 공동 행동이 필요합니다. 특히 테러 직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전쟁이 나더라도 보복해야 한다'는 미국민이 86%에 달하는 상황을 고려할 때 국제적인 움직임은 더욱 절실합니다.

주범이 누구든 조용히 체포해서 미국 재판정에 세우는 것이 가장 현명한 해결 방법일 겁니다. 전술핵무기 사용과 같은 극단적 방식이야말로 국제사회가 나서서 막아야 할 일입니다.

이 시점에서 또 하나, 살펴 보아야 할 현상이 있습니다. 한국 증시에서와 같은 대폭락이 세계에서도 일어날 것인가, 라는 점입니다.

한국 증시에서 일어난 것과 같은 일을 경제학에서는 '자기충족적 예언'이 실현됐다고 말합니다. 주가가 떨어질 것이라는 예상이 맞았기 때문에 다시 더 떨어질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모든 사람이 증시에서 빠져 나오려고 한다면 그 예상은 다시 맞아떨어집니다.

(경제학의 설명도구를 이용해서 말한다면 수요곡선이 사람들의 예상에 의해서 계속 아래쪽으로 이동하는 상황입니다)

이런 현상을 '자기충족적'이라고 말하며 그러한 행위를 떼거리 행위(herding)라고 합니다. 각 개인이 자신의 물질적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하면 바로 이런 결과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대로 놔둔다면 바닥(또는 천정)에 닿았다고 사람들이 생각하게 될 때까지 폭락(또는 폭등)은 계속됩니다.

거기까지 이르는 동안 경제가 심각하게 타격을 받고 사람들의 고통이 심할 것이라고 예상된다면 정부가 사람들의 예상을 바꿀만한 조처를 취하든지, 그럴만한 수단도 없다면 시장 자체를 당분간 아예 폐쇄할 수 있습니다.

패닉 상황이 오면 모든 사람이 현금을 보유하거나 나아가서 금과 같은 귀금속을 가지려고 합니다. 한마디로 화폐의 퇴장(hoarding)이 일어나는 것이죠. 신용은 무너지고 모든 경제활동은 마비됩니다. 특히 국제금융시장에서는 이러한 일이 쉽게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각국의 증시를 당분간 휴장해서 냉각기를 갖자는 제의가 설득력이 있습니다. 또한 각국의 금융당국자들이 공동 대처를 하는 것 만이 '자기충족적 예언'을 막는 길일 수 있습니다.

어제, 오늘의 상황으로 봐서는 이런 수단까지 사용하지 않아도 폭등, 폭락세가 한풀 꺾이리라고 봅니다만 다른 어떤 변수가 돌발하는 경우 신속하게 공동대응할 수 있는 국제적 제도가 마련되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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