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금 70만원 내던 날의 '반성문'

마음의 불편과 현실의 편함 사이

등록 2001.10.14 11:15수정 2001.10.15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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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여수환경연합에서 일을 하는 강용주입니다.


지난 국회의원 선거 때 여수 총선연대 사무국장으로 일을 하였고 그 일로 인해 대법원에서 70만원의 벌금형이 선고되어 7월 10일자로 수배자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런 줄도 모르고 10월 12, 13일 양일간의 전국 활동가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경남 남해로 가다가 남해대교 검문소에서 단순한 검문에 응했다가 수배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자리에서 벌금을 내지 않으면 경찰서로 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같이 가던 여수의 일행들이 갑작스런 일에 항의하다 여의치 않아 "여수에 가서 벌금을 내겠다" "이미 벌금을 준비했지만 전국적으로 입장정리가 안돼 안내고 있는 것이다"는 등의 주장을 하였으나 우리나라의 훌륭한 경찰들의 원칙에는 통하지가 않았습니다.

그런데 잠깐의 실랑이를 듣고 있던 검문소 소장이 우리의 입장이 이해가 되었던지 유연한 제안을 하였습니다. 여수경찰서 경찰관의 보증을 세우면 일단 여기서 나갈 수 있게 해주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에 우리 일행들은 평소 알고 있는 경찰서의 직원에게 전화를 넣어 보증을 세우고 검문소를 나올 수 있었습니다.

우리 일행은 어처구니 없는 해프닝을 겪고 나오면서 어차피 노역형 아니면 벌금을 내야 하는데 제발로 찾아가 벌금을 내는 것도 우스운 일인데 차라리 잘됐다며 속 편하게 생각하자고 스스로를 달래며 활동가 대회를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어떻게 보면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을 해프닝입니다. 조그만 도시 여수의 잘 알지도 못하는 활동가 한 명이 벌금을 거부하고 노역형을 산다고 이 복잡한 현실에서 사회적인 문제가 될 일도 아니고 벌금을 낸다고 그것이 무조건 비판 받을 만큼 중요한 쟁점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저에게 있었습니다. 대법원에서 70만원 벌금이 확정되고 난 후에 아무리 생각하고 고민해봐도 내가 벌금을 내는 것에 스스로가 승복이 되지 않았습니다. 저의 하루하루의 짜여진 현실로 비추면 노역형을 살 만한 처지가 안되었지만 나의 처지 때문에 벌금을 내야 하는 것은 더욱 저를 비참하게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운동가의 최선의 덕목인 명예와 도덕성에 비추어도 그리고 우리의 운동에 대한 원칙과 명분에도 벌금을 내는 것은 논리적으로도 운동적으로도 수긍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저의 생각은 벌금을 내지 않고 버티다가 검찰이 잡으면 노역형을 살아야겠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런 개인적인 결론과 관계없이 뜻밖의 검문으로 인해 여수경찰서 직원과의 약속을 핑계로 토요일 저녁 10시가 넘은 시간에 이미 시민단체의 회원들이 모아둔 벌금을 가지고 담당 파출소를 찾아가 벌금을 냈습니다. 저의 개인적인 고민과 결론은 너무나 긴 시간이었는데 벌금을 내고 처리하는 데는 5분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벌금을 내면서 스치는 다양한 생각을 애써 피한 채 파출소를 나오는 저의 모습은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요. 모처럼 차 안에 놓아둔 민중가요 테이프를 틀어 놓고 망연한 마음으로 집으로 들어와 "벌금을 내고왔다"고 얘기했습니다.

그리고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일상으로 돌아와 아이들과 씨름하다 잠을 청하고 일요일인데도 회사일로 광주를 가는 아내와 아이를 태우고 배웅을 한 뒤에 저 역시 가게를 운영하러 나와서 문을 열고 손님을 맞이하기 위한 청소를 마친 뒤에 저의 이틀에 걸친 일과와 그 과정에서 생긴 일들을 오랜만에 이곳에 올리고 있습니다.

지난 총선연대 활동을 통해 인근 순천의 이학영 총무님은 자신의 양심을 지키기 위해 노역형을 택하여 많은 분들의 공감과 자신의 희생을 감수하는 아름다운 실천을 보여주셨는데 여수의 후배인 저는 선배님의 고귀한 실천을 따라하지도 못하고 현실에 영합하여 편한 선택을 하고 말았습니다.

저의 이번의 선택은 분명히 잘못된 것으로 생각하며 두고두고 마음이 불편할 것 같습니다. 이래서 마음의 불편과 현실의 편함을 택한 저의 판단은 현실이 조금 불편해도 노역형을 사는 게 마음으로는 편할 것이란 뻔한 이치도 망각한 선택이었다고 생각되며, 특히 총선연대의 활동에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준 여수시민과 국민 여러분에게 노역형보다도 큰 대가를 치러야 할 것 같습니다.

많은 마음의 복잡함을 가감없는 표현으로 이곳에 올려 반성문을 쓰는 심정으로 정리하고 싶었는데 오히려 어색한 마음이 더욱 생겨 이만 줄이겠습니다.

다음에 이런 일이 있으면 고민하지 않고 노역형을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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