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푼이 독서가의 장서표 만들기

등록 2001.10.17 14:08수정 2001.10.18 0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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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욕이 강한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물건에 대해 고유의 체취를 남기기 좋아한다. '장서가', '애서가'라고 불리며, 특히 책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이 소유한 책에 대해 서명이나 문구를 적어둠으로써 소유권을 표시하기도 하는데, 그러한 장서가들의 '소유권 표시' 문화는 단순한 '표시'의 단계를 넘어서 '장서표(藏書票)'라는 장르의 예술로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장서표에는 일정한 형식이 있는데 '엑스 립리스(EX-LIBRIS, 책 중에서)'가 꼭 들어가야 하며, 크기는 가로세로 약 15센티미터 이내여야 하지만. 꼭 틀에 맞출 필요는 없으며 자신이 원하는 글귀나 그림이 들어가도 상관은 없다. 이러한 장서표 문화는 15세기 유럽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그 당시 책은 지배계급의 권위를 표현하는 한 방법이었으니 자신의 소유임을 확실히 해둘 필요성을 느꼈으리라.


장서표에 대한 관심은 벌써 두 달이 되어가는 지난 8월 10일 관훈 갤러리에서 열린 '장서표 전시회'를 우연히 관람하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약 500여 점의 아름답고, 귀한 장서표들은 원래 있어야 할 자리인 책의 겉장을 떠나 작품으로서 액자에 고이 모셔져 있었다.

다양한 기법을 통해 표현된 장서표들을 보고 있자니 학창시절에 사전이나 교과서 등에 자신의 학년과 이름, 심지어 '절대 손대지 마시오'라는 협박성 글귀까지 굵은 싸인펜으로 열심히 새겨 넣거나, 색색의 형광펜으로 온갖 치장했던 기억났다.

요즘 유행하는 '졸라맨'의 원조나 될 듯한 유치한 그림을 페이지마다 그려 넣고 주르륵 넘기며 '완벽한 애니'를 구현했다며 즐거워하기도 했었는데... 하지만 결국 이렇게 장난(?)을 친 책들은 결국 헌책방에서 제값을 못 받는 축에 들어가고 말았다.

'그래, 까짓 거 나도 장서표 하나 만들어 볼까'라고 생각을 하게 된 건 순전히 객기였다. 1000원짜리 점보 지우개와 연필깎이 칼, 약간의 시간과 장인정신(?)만 있으면 될 거라 믿었던 내 생각은 대단히 무모한 것이었고 시도도 하기 전에 결국 포기상태에 이르렀다.

결국 포토샾을 이용해 저작권의 침해에 대한 걱정이 없는 단원 김홍도 선생님이 그린 '서당'에서 훈장님 앞에 울고 있는 학동(學童)의 이미지를 가져와 편집해 만들기로 했다. 훈장님께 따끔하게 혼이 나는 아이의 모습이 '책'만 좋아하고, 지은이의 깊은 뜻을 파악하는 데는 게으름만 피우는 반푼이인 나의 모습을 대변해주는 것 같아 다른 것은 고려도 하지 않고 결정을 내렸다.


"지금 뭘 하는 겁니까, 초등학생도 이것보단 낫겠어요",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디자이너'의 온갖 탄압을 견뎌내며 완성한 반푼이 독서가의 부끄러운 장서표를 공개한다. 독서의 계절이라는 가을에 책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자신만의 체취를 남길 수 있는 장서표를 만들어 보는 것도 재미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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