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어제 서교호텔 뒤에 있는 한국관이라는 음식점에 우연히 들렀다가 언젠가 이곳에 한 번 온 적이 있는데 하는 생각이 났다. 언제 어떻게였나, 하고 기억을 되살리려 애쓰다가 마침내 한 사람의 얼굴을 떠올릴 수 있었다.
두 달 전쯤 나를 만나러 서교동까지 찾아오신 채계열 선생의 사모님과 함께 갈비탕을 먹으러 들렀었다. 그날 양이 많다고 내게 탕에 섞인 갈비를 몇 점 덜어주시던 사모님의 얼굴이 생각났다.
일의 발단은 작년 1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 나는 채만식 선생의 둘째 아드님인 채계열 선생의 허락을 받아 중단편 선집을 내게 되었다. 지금처럼 출판사 사정이 안 좋은 때라 많이 팔리지 않을 게 뻔한 옛 작가의 선집을 선뜻 내주겠다고 하는 출판사가 없었다.
고민 끝에, '다빈치'라고, 지인(知人)이 운영하는 출판사에 부탁을 하다시피해 겨우 출간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는 이른바 채만식 매니아로서 고등학교 때 이미 중편 '냉동어'를 읽은 사람이었으므로 이익 관계를 넘어서는 출간 의지가 있었다.
나는 그에게 응당 편집자로서의 비용은 부담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으나 그 한편으로 발간되는 책의 인세만은 지불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채계열 선생은 아버지 생전에 그 얼굴을 두 번밖에 보지 못한 분이었다. 채만식 선생은 전처(前妻)와 헤어져 다른 여인과 함께 인생 후반기를 보냈는데 채계열 선생은 전처 소생이었다. 그러나 그 아버지의 흩어진 작품들을 수집 보관하고 육필원고를 갈무리하고 남은 장편소설 원고까지 자비로 출판한 사람은 바로 아버지의 사랑을 전혀 받지 못한 그 분이었다.
그럼에도 그 분은 아버지가 남긴 저작권 혜택조차 제대로 받지 못했었다. 1950년에 세상을 뜬 채만식 선생의 저작권은 유효기간이 30년에서 50년으로 연장된 개정 저작권법에 의해서도 권리가 이미 만료된 상태였다. 그런데 그 구저작권법 아래에서는 많은 출판사들이 인세를 지불하지 않고 세상을 뜬 작가의 작품을 출판하는 '관행'을 지켜오고 있었다. 또한 유효기간 30년이 지난 뒤에는 창작과비평사 같은 출판사만이 작가의 권위를 인정하여 인세를 지불하는 배려를 보였을 뿐이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채계열 선생이 아버지의 작품으로 더 많은 경제적 혜택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박성식 사장은 그 뜻을 받아들여 채계열 선생에게 충분하지는 못하지만 1백만 원의 인세를 지급하겠다고 했고 지급 시간은 늦었으나 약속을 지켰다.
문제는 인세를 전달하는 시점에 발생했다. 내가 편집비를 받지 않았음을 알게 된 채계열 선생은 굳이 인세를 받지 않겠노라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요는 당신 몫의 돈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저작권법에 따른 인세 유효기간이 지나버렸는데 선생께 돈이 온 것은 내 편집비가 인세로 둔갑해 온 것이 아니냐는 것이었다. 나는 사정이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씀드리고 돈을 도로 받아가라는 선생의 말을 듣지 않았다.
여러 차례 그런 전화가 오다가 한 달쯤 지난 후였다. 채계열 선생 사모님이 전화를 하셔서는 오래 30년씩이나 당뇨를 앓아온 선생이 위독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거동이 불편한 그 분 대신에 나를 꼭 한 번 만나야겠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나는 그 동안 채만식 선생의 일로 이런저런 고생과 심려를 끼쳐 드린 것이 후회스러워졌다. 논문을 쓴다 책을 낸다, 하고 가뜩이나 건강이 안 좋으신 분을 괴롭힌 탓에 건강이 급격히 악화된 게 아닌가 하는 염려가 일었다. 그러면서 그 분이 내게 남겨주실 무슨 말씀이라도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났다.
그런데 근심스러운 마음으로 약속장소인 리치몬드 제과점에 나간 나를 사모님은 태연할 뿐더러 웃음기까지 섞인 얼굴로 맞이하시는 게 아닌가. 그러면서 핸드백에서 하얀 종이로 싼 돈을 꺼내 내미시는 것이었다. 채계열 선생이 그 돈을 꼭 돌려주고 오라고 신신당부하셨다는 것이었다.
돈을 돌려주기 위해 칭병도 아니고 운명을 가장하셨다니! 아연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그날 내가 그 돈을 받았을까? 그건 읽는 분들의 상상에 맡긴다. 아무튼 그날 나는 채계열 선생 사모님을 모시고 한식집을 찾아가 점심으로 갈비탕을 아주 맛있게 함께 먹었다. 사모님은 옛날 분인지라 얼굴에 땀이 흐르는 뜨거운 탕을 좋아하셨다.
지하철로 그 분을 보내드리면서 생각했다. 돈은 생활에 유용하다. 그러나 그 돈을 취함에는 사려가 필요하다. 채계열 선생 같은 옛 사람만이 아니라 현대인에게도 이것은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덕목이다. 채계열 선생 부부는 일생 부유하지 않게 살았으나 양식을 지킨 분들이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