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기구 감시하 주민투표'로 풀자

<동남아 리포트> 인도네시아 아체 방문기 (7. 마지막회)

등록 2001.11.28 18:43수정 2001.12.02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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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로부터 26년간 분리 독립투쟁을 전개해 온 아체인들이 주장하고 있는 핵심적인 정치구호인 '찬성 주민투표'는 매우 합리적으로 보인다.

이 구호는 아체인들이 인도네시아로부터 독립할 것인지 여부를 아체인들의 투표로 결정하자는 것인데 찬성 의견이 많으면 동티모르의 경우처럼 분리 독립의 길을 가고 반대 의견이 많으면 현 상태 그대로 인도네시아의 한 주로 남게 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아체 분리 독립투쟁을 전면에서 이끌고 있는 자유아체운동(GAM)이 내건 이 구호는 아체인들에게서는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지만 인도네시아 정부로부터는 철저히 묵살되고 있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이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도 아체인들의 민심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알려진 바도 그렇고 내가 직접 만나 본 아체인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확인한 바로는 적어도 주민투표를 실시하자는 주장에 대해서 반대하는 아체인은 거의 없다. 많은 아체인들이 주민투표가 실시되면 독립 찬성 의견이 압도적일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것이 주민투표에 대한 아체인들의 자신감을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인도네시아 정부는 주민투표 요구를 받아들였다가 낭패를 본 동티모르의 경험 때문에 주민투표 요구 허용은 바로 독립 허용이라는 입장을 견지하며 주민투표 요구를 일관되게 거부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 아체의 분리 독립 문제를 둘러싼 아체인들과 인도네시아 정부의 대립은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아체의 분리 독립 문제의 해결 대안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 아체인들과 인도네시아 정부가 한발 씩 양보하며 타협할 대안은 없을까?

나는 아체 지역 정확히 말해서 반다아체, 피디, 룩스마웨 세 도시를 다니면서 자유아체운동(GAM) 지역대변인으로부터 호텔 벨보이까지 만나는 사람마다 주민투표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물론 그들이 대답은 한결같이 '예스'였다. 그들은 인도네시아 정부가 뭐라고 하든지 간에 자신들의 입장은 독립을 허용하라는 것이기 때문에 주민투표 요구는 그나마 한발짝 물러선 요구라고 말한다.


이에 대해 인도네시아 정부는 '천연가스 자원 수익 70% 분배'를 골자로 한 특별자치법이라는 당근을 제시하면서 한편으로는 자유아체운동(GAM)에 대한 군사적 공세 강화라는 채찍을 휘두르는 '당근과 채찍' 전술을 구사하고 있다.

하지만 인도네시아 정부의 특별자치법에 대해서는 특정 지역에만 특혜를 주어선 안된다는 여론의 지적에 직면하고 있고 아체인들도 주민투표를 일관되게 지지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특별자치법을 지지하지 않고 있다.


반다아체에서 만난 압둘 씨는 "원래 우리 것이었던 것을 가지고 70%만 돌려준다고 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말했다. 그는 "독립 허용만이 문제의 해결책인데 인도네시아 정부가 그 것을 받아들일리 없다"고도 말했다.

이렇듯 풀기 쉽지 않은 실타래 같은 아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먼저 원칙부터 세워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 원칙 중 첫 번째로 꼽혀야 할 것은 다름아닌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아체 지역에서는 자유아체운동(GAM)과 인도네시아 정부군의 교전으로 인한 희생자뿐 아니라 그 틈바구니에서 억울하게 목숨을 빼앗기고 있는 민간인들이 속출하고 있다. 더 이상의 아체인들의 희생을 막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데 이견을 다는 개인이나 정치세력은 적어도 겉으로는 없을 것이다.

두 번째 원칙으로 삼아야 할 것은 아체 문제 해법의 최종 결론은 '아체인들이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어찌보면 너무도 당연한 원칙이지만 현실에서는 저만치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이상과 같은 원칙을 정한다면 자유아체운동(GAM)과 인도네시아 정부가 택할 수 있는 방법은 '평화협상'이다. 양측이 평화협상을 통해 아체의 독립 허용 여부, 만약 독립을 허용한다면 어떤 방법으로 할 것인지, 독립을 허용하지 않는다면 어느 정도로 자치를 인정할 것인지 등을 합의하면 된다.

이 협상 테이블엔 당연히 자유아체운동(GAM)의 무장해제 문제와 인도네시아 군경의 아체지역 내 철수 문제도 의제로 올려져야 한다. 그리고 또한 세계 최대의 LNG 생산공장인 '아룬'에 대해서도 토의되어야 한다. 양측이 어떤 합의안을 도출하더라도 반드시 아체인들의 승인, 구체적으로 말해서 주민투표를 통한 추인을 받아야 할 것은 물론이다.

이렇게만 되면 아체 문제가 순조롭게 풀릴 수 있겠지만 정작 아체 문제 해결의 가장 큰 걸림돌은 '인도네시아 정부의 대화노력 부족'이다. 그들은 현재 아체인들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고 있는 자유아체운동(GAM)을 대화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어떠한 구체적인 평화협상 노력도 기울이지 않고 있다.

이 대목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기는 하지만 국제사회의 개입 필요성이 제기된다. 팔레스타인 문제의 해결 과정이나 동티모르의 독립 과정을 보면 아체 문제 해결의 길이 보인다. 여기서 말하는 국제사회의 실체는 타국 국가정상이 될 수도 있고 만델라 같은 저명한 세계적 지도자가 될 수도 있고 국제연합(UN)같은 국제기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초기에는 국제사회가 인도네시아 정부에 평화협상에 임할 것을 촉구하면서 동시에 협상 중재에 나서고 협상을 통해 일정한 합의가 도출되면 그 합의 이행과정이 철저히 집행될 수 있게 감시자 또는 관리자 역할을 해야 한다. 정확히 말하면 아체의 독립 허용 여부를 아체인들에게 '국제기구 감시하의 주민투표'를 통해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야만 아체인들이 더 이상의 피를 흘리지 않는다. 이것이 이번 아체 방문을 통해 내린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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