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스님과 더덕 도둑

보길도 편지

등록 2001.12.05 09:19수정 2001.12.05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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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반농반선(.半農半禪)

토굴에 도착하자 겨울 날 장작을 패던 스님이 반갑게 맞이합니다.
서둘러 출발했으나 늦게 도착했습니다.


강원도 산중에 밤이 옵니다.
마당 한 구석, 장작불을 피우고 둘러앉아 저녁 공양을 합니다.

육순의 노스님이 직접 담그신 김장 김치와, 생배추,
생더덕으로 저녁상은 푸짐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김장 무를 다 키우지 않고 중간 크기로 키워 담그셨다는 동치미가
어찌나 맛있는지 염치없이 자꾸 손이 갑니다.

스님이 아랫께 토굴에서 이곳으로 올라온 것은 이태 전입니다.
지금의 이 토굴은 더덕 농사지어 지으셨습니다.

신자가 절을 지으라며 가져온 수억 원의 시주 돈을 돌려보내고,
더덕 팔아 모은 돈으로 손수 지으신 암자.
스님은 다음에 올 사람을 위해 터만 닦아 놓은 것뿐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느새 산중에 달빛이 가득합니다.

낮에는 농사짓고 밤에는 참선하고, 벌써 수 십 년을 스님은 그렇게
산처럼 살아 계십니다.



2. 더덕 도둑

"저 아래 토굴에 살 때 더덕 도둑 등쌀에 아주 혼이 났어.
내가 이 산 밭으로 일하러 오면 도둑이 따라 올라와 산 속에 숨어서 지켜보고 있다가 저녁 참에 불도 때고 밥도 하러 토굴로 내려가면 그 사이에 한 두둑 캐 가고,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한 두둑 캐가고,
내가 부러 30분 늦게 내려가면 30분 뒤에 나타나 한 두둑 캐가고.

밤새워 지키고 있으면 나타나지 않고.
잡을래야 잡을 수가 있어야지. 그렇게 한 밭뙈기를 다 도둑 맞았어.
10년도 넘게 키운 산더덕들을.

그래서 소문을 냈지, 더덕 도둑 맞았다고.
그러고 며칠 있으니까 장에서 더덕을 파는 어느 보살한테 기별이 왔어.
자기가 산더덕 한 관을 샀는데 암만해도 스님이 도둑맞은 더덕 같다는 거야.
팔러온 사람은 동네 사람인데, 그 사람이 산에서 캤다고 여기저기 팔러 다닌 모양이야.
그 사람이 도둑이 틀림없었어.

그런데 방법이 없잖아, 현장을 잡은 것도 아니고.
헌데 마침 그때 더덕을 팔고 간 사내의 아들놈이 많이 아팠데.
약을 써도 소용 없고.
사내의 아낙이 답답했던지 인근에서 용하기로 소문난 점쟁이한테 점을 보러 간다는 거야.
그 이야길 더덕 장수 보살이 듣고 한 가지 꾀를 냈데.
점쟁이한테 자초지종을 이야기 한 거지.
그 보살도 보살이지만 점쟁이는 또 얼마나 꾀가 많은 사람이야.

아낙이 점쟁이 집에 찾아오자마자, 점쟁이가 그러는 거야.
아들놈이 아파서 왔지.
아낙은 놀래고.
무슨 좋다는 약을 다 써도 차도가 없다고, 살려달라고 애원을 했겠지.

그래서 점쟁이가 그랬데.
당신 남편이 아주 어렵게 사는 사람 물건을 훔쳐서 당신 아들이 아픈 거라고.
아낙이 실토를 하더래, 자기 남편이 산 속에 사는 스님 더덕 밭에서 더덕을 훔쳤다고.
그래서 도둑을 잡았어."

"그래서 어떻게 하셨어요."
"어떡하긴, 기다렸지.
그런데 기다려도 안 와.
그래도 아무 말 없이 한참을 더 기다렸어.

그러자 누굴 통해서 10만원을 보내왔어.
돌려보냈지. 아이 약값에나 보태라고.
그제서야 그 도둑이 나타났어.
죄송하다고, 그냥 산 더덕인 줄 알고 캐갔다고.

두둑에 심어진 더덕 밭인데도 임자 없는 더덕인 줄 알았다니.
너무 빤한 거짓 말에 웃음도 안나오데.
그래서 앞으로는 그러지 말라고.
늙은이가 어렵게 농사지은 건데 그러면 쓰겠느냐고 타일러서 보냈어."

"그 뒤로는 괜찮으셨어요."
"괜찮긴. 위쪽으로 토굴을 옮긴 뒤에는 아래쪽 더덕 밭을 홀랑 캐갔어.
"그래서 도둑을 또 잡으셨어요."
"아니 그냥 뒀어, 잡으면 뭐하겠어.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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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자 섬 활동가입니다. 사단법인 섬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으며,<당신에게 섬><섬을 걷다><전라도 섬맛기행><바다의 황금시대 파시>저자입니다. 섬연구소 홈페이지. https://cafe.naver.com/island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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