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 피해자들의 가해남편 살인이 언제까지 계속되어야 한단 말인가? 작년 4월 신모 씨의 가해남편 살해사건이 안겨준 충격에서 헤어 나오기도 전에 또다시 가정폭력 가해남편을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지난 12월 14일 안양에서 발생한 남편 살인사건은 남편의 지속적인 가정폭력과 의처증으로 시달려오던 부인 최 씨가 칼을 휘두르며 위협하는 남편을 말리다가 오히려 남편을 살해한 사건이다. 최 씨는 사건 직후 관할 파출소에 자수하였고 현재 안양경찰서에 수감되어 조사가 진행 중에 있다.
"가정폭력피해자 최 씨의 남편 살해는 정당방위다"
사건 발생 후 안양경찰서의 주선으로 최 씨와의 상담을 진행중인 안양여성의전화(회장 박명숙)는 최 씨의 살인을 정당방위로 보고 현재 경기지역 여성단체 및 시민단체(안양여성의전화, 안양 YWCA, 전진상복지관)와 함께 최 씨의 구명을 위한 "가정폭력피해자 최모 씨 구명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를 구성하여 구명운동에 들어갔다.
대책위에서는 최 씨가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가정폭력의 피해자임에도 무능한 남편과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며 힘겹게 살아온 여성가장으로, 남편의 폭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올해 7월에는 이혼까지 하였으나 그 후에도 알콜중독으로 노숙생활까지 하며 자식들을 괴롭히고, 다시 살아달라는 집요한 요구를 하는 남편을 불쌍하게 생각하여 결국 재결합을 했다가 끔찍한 결말에 다다른 것으로 사건을 파악하고 있다.
안양여성의전화 한황주연 간사는 "사건 당일 최 씨는 퇴근 후 집에 돌아왔다가 술에 취해 아들에게 온갖 욕을 하며 난리를 치는 남편을 목격하였고, 아들이 학원을 간 후 남편이 최 씨에게 욕을 하며 시비를 걸어 와 평소처럼 남편을 피해 집밖으로 나왔다가 남편이 잠든 후 살짝 들어 왔는데, 잠이 깬 남편이 최 씨에게 칼을 휘두르며 찌르려고 하여 남편의 칼을 뺏고 실랑이를 벌이다 우발적으로 남편을 찌르게 된 것이다. 이러한 사실에 비춰볼 때 최 씨의 행동은 당연히 정당방위로 보아야 한다"며 사건 전말의 내용과 함께 대책위 구성의 이유를 밝혔다.
현재 밝혀진 최 씨의 생활을 들어보면 최 씨의 남편은 결혼 초부터 최 씨에게 종종 심한 언어폭력과 신체폭력을 가했으며 심한 의처증과 폭력으로 최 씨를 괴롭혔다고 한다. 이미 오래 전부터 생활 의지가 없는 남편을 대신하여 직장생활을 하며 가정의 경제를 책임져 왔으나 늘 남편으로부터 '부정한 여자'로 몰려 폭력을 당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최 씨의 남편은 폭행 때마다 종종 칼을 휘두르곤 하여 보통 때도 최 씨는 집안의 칼을 숨겨 놓아야 했으며 남편이 휘두른 칼에 허벅지가 찔려 치료를 받은 적도 있고 주먹으로 맞아 이빨이 부러지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어렵게 이혼하였으나 "내가 아니면 돌볼 사람 없어" 결국 재결합
최 씨는 이러한 남편과는 가정생활을 지속할 수 없어 올해 초 이혼을 요구하였는데, 돈을 주면 이혼해주겠다는 남편에게 집을 팔아서 2천 만원을 주고 이혼을 하였다. 그러나 이혼 후에도 남편은 하루가 멀다 하고 최 씨를 찾아와서는 집안세간을 부수고 온갖 욕설과 폭력으로 최 씨를 괴롭혔다.
이러한 괴로운 날들이 계속되고 남편이 알콜중독으로 노숙을 해 경찰에서 연락을 하여 아이들이 일을 수습해야 하는 등 온 가족이 더욱 괴로워지는 것을 보며, 또 남편이 술에서 깨면 다시 살아주면 잘살 것이라는 수 차례의 약속을 반신반의하며 "내가 아니면 돌 볼 사람이 없다"고 생각해 최 씨는 이혼 6개월 만인 2001년 10월 재결합을 하였다. 하지만 다시 시작한 생활도 전과 다름이 없었다.
계속되는 가정폭력과 의처증으로 지친 최 씨는 이러한 지옥 같은 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해 결국 지난 3월, 6월과 9월에 남편을 가정폭력사건으로 경찰에 신고하여 도움을 요청하여 한때 남편이 입건된 적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가정폭력피해자들이 그렇듯이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애걸을 믿으며 고소를 취하했던 사실이 밝혀졌다.
이 사건과 유사한 작년 신모 씨의 상담을 담당했던 서울여성의전화 박연숙 사무국장은 "대부분의 가정폭력 피해자들은 긴 세월동안 남편의 가정폭력과 의처증, 알콜중독 등에도 불구하고 남편과 헤어지지 못하고 '혹시나 변화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남편을 불쌍하게 생각하여 폭력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작년 신모 씨의 남편 살해사건과 마찬가지로 이 사건 또한 가정폭력의 비극적인 종말로 일어난 사건이다. 이러한 끔찍한 결과를 나타내는 것이 가정폭력임에도 불구하고 일반인들은 가정폭력의 심각성에 대해 잘 느끼지 못하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할 수 있다"며 가정폭력의 심각성에 대해 밝혔다.
한집 건너 한집마다 가정폭력 발생
그렇다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이 가정폭력으로 고통받고 있는 것일까?
'여성폭력긴급전화 1366'의 김현정 팀장은 "지난 상반기동안 받은 상담 8318건 중 가정폭력상담은 2553건으로 30%를 넘고 있다. 가정폭력으로 고통받고 있는 여성들의 상담이 1년에 5천 건이 넘는다는 것도 무서운 수치이지만, 이외에도 아직 말하지 못하는 피해자가 더 많이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가정폭력이란 다만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결코 남의 얘기가 아니다. 한집 건너 한집마다 가정폭력이 발생한다고 해도 무방하다"라고 말한다.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로 대우받아야
때문에 대부분의 여성단체들은 이번 최씨 사건을 두고 최 씨를 가해자로 몰아 처벌해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작년 신모 씨의 경우 법원과 검찰의 인식부족으로 '폭행치사'로 인한 실형을 선고받았으나 이번 사건까지 그렇게 되서는 안 되기 때문에 사회적인 관심이 고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책위 공동대표인 안양여성의전화 박명숙 회장은 "이번 사건은 가정폭력 피해자가 가해자의 폭행을 막으려다 우발적으로 일어난 사건이다. 또한 상담소 보호시설에서 보호가 가능하고 도주할 염려가 없기 때문에 불구속 수사가 원칙이며,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로서 대우받아야 한다. 이미 선진국에서는 가정폭력에 의한 사건일 경우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로 바라보며 무죄를 선고한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며 일반인들이 이 사건을 올바르고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 주길 부탁한다고 밝혔다.
덧붙이는 글 |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변호사 선임료 등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후원금 및 최씨 사건 해결을 위한 서명운동에 많은 사람들의 참여를 바란다.
가정폭력 피해자 최씨 구명을 위한 대책위원회 연락처
: 안양여성의전화 (031) 429-8171
후원금 : 국민은행 222-01-0268-951 // 제일은행 645-10-010693
(예금주 안양여성의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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