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바람의 나라' 공연을 앞두고

등록 2001.12.29 00:37수정 2001.12.28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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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서울예술단의 공식입장과는 상관없는 저 개인적인 입장입니다.

저는 지난 8월말 서울예술단의 뮤지컬 <바람의 나라> 계약직 AD 면접을 봤습니다. 지원하게 된 동기는 평소 관심을 가졌던 김진 원작의 만화 '바람의 나라'를 뮤지컬로 만든다는 것에 우선 호기심을 느꼈고, 뮤지컬 제작현장의 모습을 바로 옆에서 지켜볼 수 있다는 것이 저로 하여금 별 망설임 없이 학교를 휴학하고 면접을 보게하였지요. 다행히 피디님께서 저를 좋게 보셨는지 계약서에 도장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그때 면접시에 물어보시던 질문 중에 기억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올해 연말 공연되는 뮤지컬 최대 화제작은 무었이냐고?
사실 그때까지 뮤지컬이라고는 넌센스 하나밖에 본적이 없는 문외한이었지만 워낙 그 이름을 자주 들었던 공연이 있었기에 서슴없이 '오페라의 유령' 입니다 라고 대답을 해드렸습니다. 피디님께서 그 대답에 약간은 씁쓸하게 웃으시며 고개를 끄덕이던 것이 새삼 떠오르는군요.

오페라의 유령은 전세계 최고의 흥행작품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 헐리우드 영화가 아무리 몇 억 불씩 흥행한다고 해도 80년대 후반 초연 이후 지금까지 오페라의 유령이 전세계적으로 거두어들였다는 약4조 원의 공연수입에 비하면 아직도 갈길이 멀다고 합니다. 그만큼 뮤지컬이라는 장르자체의 부가가치가 높다는 말이 될 수도 있겠지요.

예상대로 국내최대 규모인 제작비 100억짜리 오페라의 유령은 국내 공연계의 갖가지 기록을 세우고 숱한 화제를 만들어내며 흥행에 있어서 순항중입니다. 다만 그 순항으로 인하여 여타의 국내뮤지컬들은 고전을 면치 못한다는 사실이 잘 알려져 있지 않아서 섭섭하지만요.

제가 바람의 나라 에이디기 때문에 오페라의 유령에 대하여 감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감정적인 태도에 빠지기 앞서 과연 오페라의 유령의 독주가 국내 뮤지컬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해서는 한번쯤 생각해볼 만한 문제인 것 같습니다.

분명 오페라의 유령 직수입에 따른 긍정적인 면들도 많습니다. 그것을 부인하겠다는 생각은 없습니다. 아직도 주먹구구식의 공연제작이 빈번한 한국의 현실에서 오페라의 유령은 투명하고 합리적인 선진공연제작 기법으로 국내 공연계에 많은 자극을 주었고 그에 따른 변화를 만들어낼테니까요. 또한 작품자체는 외국 것이긴 하지만 출연진은 우리의 배우들이니 직수입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외국의 그것이 아니라 한국인이 표현하는 오페라의 유령인 셈이지요.

뮤지컬 바람의 나라는 우리가 흔히 여성국극으로 생각하고 있는 고구려의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의 자명고 이야기가 근간을 이룹니다. 하지만 원작자 김진 씨는 자명고를 낙랑의 왕자 충과 운으로 의인화 하였고 여기에는 또 여러가지 인간관계의 어긋난 맺음들이 설정되어 있습니다.

음악은 영화 은행나무침대를 통하여 한국 영화음악의 수준을 한단계 끌어올렸다고 평가받는 이동준 씨가 작곡하셨습니다. 고구려의 웅장함과 대륙에 대한 열망을 음악으로 표현하고 싶었던 오랜 바램을 이번 작업을 통해 이루셨다고 하는군요.

젊은 관객들로부터 호평을 받은 뮤지컬 '젊은베르테르의 슬픔' 초연의 연출을 맡았고 인간에 대한 깊이를 무대위에서 형상화 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다고 평가받는 연출가 김광보 씨는 기존의 브로드웨이와는 차별화된 우리 정서가 녹아있는 뮤지컬, 배우들의 연기를 느낄 수있는 뮤지컬로 만들고자 노력했다고 합니다

분명 오페라의 유령과 바람의 나라를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를 하는 것에는 무리가 따를 것입니다. 사실 오페라의 유령 한편 제작비 정도면 바람의 나라 정도 규모의 뮤지컬을 네 다섯 편 만들수 있다고 하는군요. 예를 들어 오페라의 유령에 들였다는 의상제작비 30억이면 웬만한 국내뮤지컬 3편 정도의 예산과 맞먹는다고 합니다.

큰 것과 수입한 것에 대한 다소 맹목적인 선호도가 있는 우리네 특성상 오페라의 유령은 참으로 잘 어울리는 작품일 수도 있습니다. 더군다나 작품성까지 인정받은 작품이기에 여타의 국내창작뮤지컬들은 오페라의 유령에 대항할 만한 여지가 아예 없을 수도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무언가 우리네의 정서와 우리의 이야기를 무대위에서 창조적으로 형상화하고 싶어하는 젊은 예술인들이 있다는 것, 외국의 것을 가져와서 재조립하는 것보다 우리의 독창적인 작품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꼭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불과 10년전까지만 해도 헐리우드 영화가 영화관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현실이 이젠 거꾸로 한국 영화가 헐리우드 영화와 당당히 겨룰만큼 성장한 이면에 한국 영화를 사랑해주는 관객이 뒷바침 되었던 것처럼 한국 뮤지컬의 발전을 위해서도 분명 애정을 가진 뮤지컬 관객이 뒷받침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 저의 바램입니다.

또한 그런 뮤지컬 관객의 형성에 있어서는 매스컴의 역할도 중요한 것이구요. 한국 영화의 발전이 영화계 자체의 노력과 관객들의 사랑과 더불어 매스컴의 지속적인 관심이었기 때문 아닐까요?

뮤지컬이란 공연예술의 최후형태이고 또한 그만큼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이기에 그저 단순하게 보고 즐길 장르는 아닐 것입니다.

오페라의 유령의 환호속에 묻혀지는 정작 우리의 이야기 우리의 창작뮤지컬이 안타까워 늦은 밤에 자판을 두드렸습니다.

덧붙이는 글 | 뮤지컬 <바람의 나라>
2001년 12월 29일부터 1월 6일까지
3시 7시 공연 (단 29일 3시 1월1일 공연없음)
평일낮 30%할인, 학생단체관람시 할인 가능
7만원~2만원 예약및문의) 02-523-0986

덧붙이는 글 뮤지컬 <바람의 나라>
2001년 12월 29일부터 1월 6일까지
3시 7시 공연 (단 29일 3시 1월1일 공연없음)
평일낮 30%할인, 학생단체관람시 할인 가능
7만원~2만원 예약및문의) 02-523-0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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