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밥해 먹기 정말 힘듭니다

친정에 간 아내의 '큰 공백' 4박5일

등록 2001.12.31 07:14수정 2001.12.31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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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두 아이를 데리고 그끄저께 오후에 친정에 일이 있어 내려갔습니다. 아내의 친정은 먼 시골입니다. 다음 달 2일에 올라올 예정입니다. 아내와 두 아이를 버스 타는 곳까지 데려다주고 돌아오면서 걱정이 되었습니다.

이번에 같이 가야 되는데 아버지를 돌볼 사람이 없어서 할 수 없이 내가 남은 것입니다. 다른 때 같으면 동생 집에 가 계시면 되는데, 이번에는 공교롭게도 동생이 같은 날에 처갓집에 가는 바람에 그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4박 5일 동안 아버지와 같이 밥해 먹으면서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니 앞이 캄캄했습니다. 아내가 가기 전에 대충 이야기를 했습니다. 김치는 있으니까 슈퍼에 가서 콩나물을 사서 손쉬운 콩나물국을 끓여먹으라고 했습니다. 소금을 넣어 간을 맞추고 김치나 파 같은 것을 썰어 넣으라고 말했습니다.

세탁기 사용하는 방법을 말하려고 할 때 말을 막았습니다. 그때까지 입을 속옷이나 양말은 있으니까 그냥 세탁기 안에 집어넣겠다고 하니, 아내는 웃으며 그렇게 하라고 했습니다. 조금이라도 복잡하면 안되니 가급적 단순하게 생각하고 그렇게 하고 싶었습니다. 빨래까지 신경을 쓰는 것은 나에겐 무리입니다.

그 날 저녁은 먹다 남은 밥이 조금 있어서 밥 더하기가 귀찮아 라면 두 개를 끓였습니다. 아버지가 라면을 매우 좋아하십니다. 끓인 라면에 밥을 말아서 한 끼를 때웠습니다. 다음 날 아침입니다. 아내가 해놓은 시금치국을 가스레인지에 데우고 밥만 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문제입니다.

예전에 살던 아파트는 쌀통이 좋았습니다. 크기는 작으나 숫자가 1인용, 2인용 등으로 써 있어서 그것을 누르면 필요한 양의 쌀이 나왔는데, 새로 옮긴 이곳은 그게 아닙니다. 그냥 누르는 것이기 때문에 얼마만큼의 쌀이 나왔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적은 것 같아서 더 누르면 많은 것 같고, 조금 덜어내면 이번에는 부족한 것 같아서 적은 것보다는 많은 것이 나을 듯싶어서 많다 싶은 쌀을 씻어서 밥을 했습니다. 아내는 밥을 할 때에 콩도 넣고 또 뭐도 넣고 해서 맛있는 밥을 하는데 난 그것을 넣으면 얼마큼 더 시간이 필요한지 몰라서 흰쌀만 가지고 했습니다.

드디어 밥이 되었습니다. 압력밥솥이 달랑달랑하면 2분 정도 있다가 불을 가장 약하게 줄여 놓습니다. 그런 다음에 5분 가량 지나면 불을 끕니다. 그리고 나서 10분이 지난 다음에 뚜껑을 열고 밥을 푸면 됩니다. 예전에 아내에게 배운 방법입니다.

뚜껑을 여니 내 눈으로 봐도 밥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아버지와 둘이서 이틀은 먹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밥맛이야 없겠지만 전자레인지에 데워서 먹으면 되니까 걱정 없습니다. 또 요즘은 날이 추우니까 뒤 베란다에 놓으면 쉴 염려도 없습니다.

아버지와 맛있게 아침을 먹었습니다. 아버지는 아침과 저녁만 드십니다. 점심은 경로당에 가서 드십니다. 그 날은 저녁까지 아내가 해놓은 국을 데워서 잘 먹었습니다. 저녁을 끝내고 슈퍼에 콩나물을 사러 갔습니다. 5백 원, 천 원어치 판다고 하여 천 원어치 달라고 했습니다. 양이 꽤 많습니다.

가지고 와서 아내에게 전화했습니다. 아내는 천 원어치 샀다니까 막 웃습니다. 너무 많이 샀다는 겁니다. 콩나물을 검은 비닐에 담았는지 확인하라고 합니다. 흰 비닐에 담겨 있으면 싹이 난다고 합니다. 그리고 냉장고 채소 넣는 통에 넣고, 아침에 일어나 3분의 1 가량을 30분 정도 물에 담가 놓으라고 합니다. 요즈음 하도 농약을 많이 치니 그렇게 해야 된다고 합니다. 그렇게 하겠다고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그 날 밤의 일입니다. 밤에 책도 보고 컴퓨터 작업도 하다가 피곤하여 펴놓은 요 위에 앉아서 신문을 봤습니다. 밀린 신문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눈이 자꾸 감겨서 보던 신문을 한쪽으로 밀어놓고 자려고 베개를 제대로 했습니다. 그런데 감촉이 이상합니다.

푹신푹신합니다. 부드럽습니다. '내 베개는 이렇지 않은데'하고 자세히 보니 아, 글쎄 요 위에 베개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지 않겠습니까. 부드러운 아내 베개와 좀 단단한 내 베개가 놓여 있었습니다.

늘 했던 습관대로 베개를 두 개 놓은 것입니다. 저절로 웃음이 나왔습니다. 정말로 습관이 무서운 것을 느꼈습니다. 아내는 내려가기 전에 농담으로 이야기했습니다. 없는 동안에 자신이 쓰던 베개를 꼭 껴안고 자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머리 속에 명심해서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아내가 떠나간 날 밤은 안 그랬는데 참으로 이상합니다.

다음 날 아침에 일찍 일어나 콩나물을 3분의 1 정도 꺼내 물에 담가놓았습니다. 신문을 보느라고 자그마치 한 시간이나 담가놨습니다. 세 번을 물로 씻었습니다. 큰 냄비에 넣고 싱크대 밑에서 간장 통을 꺼내 물에 넣었습니다. 아내는 소금을 말했지만 그것은 녹아야 되니까 시간이 걸릴 것 같았습니다. 맛이 이상합니다. 좀 싱거운 것 같습니다. 그래도 그것이 짠 것보다는 낫습니다.

부글부글 끓으면 끈다는 것은 나도 알고 있습니다. 파도 썰어서 넣으려고 했는데 다른 곳에 놓았는지 냉장고에는 없어 넣지 못했습니다. 김치도 넣지 않았습니다. 국위에 시원한 김치 놔서 먹는 게 더 좋습니다. 끓는지 냄새가 납니다. 냄비 뚜껑에 송송 구멍이 몇 개 뚫려 있습니다. 그리로 콩나물 익는 특유의 냄새가 풍깁니다. 냄새로 보아 틀림없이 맛있게 끓었을 것입니다.

어느 정도 됐다 싶어서 뚜껑을 열었습니다. 김이 많이 납니다. 부글부글 보기 좋게 끓고 있습니다. 성공일 겁니다. 맛있을 겁니다. 아버지는 식탁 의자에 앉아서 웃고 계십니다. 밑반찬을 식탁에 놓고 밥을 데운 뒤 국을 펐습니다. 국자로 국물을 떠서 조금 먹어봤는데 맛이 영 아닙니다.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묘한 맛입니다. 뭐 괜찮습니다. 싱거우면 간장 넣어 먹으면 됩니다.

아버지가 고춧가루를 넣고 국을 드시더니 인상을 찌푸립니다. 맛이 없기 때문입니다. 국물 맛이 없습니다. 아버지는 간장을 더 넣은 뒤에 어제 먹은 국이 없느냐고 묻습니다. 며느리가 한 시금치국이 드시고 싶은 모양입니다. 다 먹었다고 했더니 구겨진 표정으로 식사를 하십니다.

콩나물은 익었는데, 콩나물은 참 맛있게 쫄깃쫄깃하게 익었는데 그만 국물 맛이 조금도 없어서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어떻게 할 수는 없습니다. 국 양으로 보아 다음 날 아침까지 먹어야 합니다. 김치 놔서 먹으면 다 먹을 수가 있습니다.

낮에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콩나물국 이야기를 하니 또 깔깔대고 웃음부터 터뜨립니다. 내가 사용한 간장은 간 맞추는 게 아니라고 합니다. 간장도 두 가지가 있는 모양이지요. 소금 넣어서 간 맞추라고 했지 왜 알지도 못하면서 간장을, 그것도 다른 간장을 넣었냐고 타박을 합니다. 아내도 너무합니다. 아니 그걸 내가 어떻게 압니까?

저녁때의 일입니다. 산보를 갔다왔더니 아버지가 들어와 계십니다. 첫 말씀이 내 속을 뒤집어 놓습니다. 두부 차가 지나가기에 뜨끈뜨끈한 두부 한 모를 사왔다는 겁니다. 도대체 아버지가 정신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 아들이 밥과 국을 간신히 해서 끼니를 때우고 있는데 두부 사와서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화가 났습니다.

아내가 두부를 가지고 데우고 기름을 넣고 부치는 것을 여러 번 봤습니다. 아버지가 두부를 사오시면 큰 접시 가장자리에 둥글게 썰어서 놓고 가운데에 김치를 볶아서 혹은 그냥 놓는 것도 보았습니다. 참 맛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누가 합니까.

아버지께 큰소리로 화를 냈습니다. "며느리가 있을 때에 사오셔야지 지금 사오시면 어떻게 해요?"하고 큰소리 냈습니다. 그리고 나서 싱크대에 가서 흰 비닐 속에 있는 두부를 만져보았습니다. 정말로 김이 모락모락 나는 게 만든 지 얼마 되지 않는 모양입니다.

기름에 튀기고 볶고 데우고 하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그냥 먹어도 건강에 아무런 지장이 없을 것 같습니다. 재빨리 칼을 꺼내 두부를 썰었습니다. 접시에 담아서 상 위에 놓았습니다. 그래서 어제 저녁은 아버지 덕분에 따끈따끈한 두부까지 먹었습니다.

또 아침이 밝았습니다. 올해의 마지막 날입니다. 그런데 난 또 걱정입니다. '오늘 하루는 어떻게 밥해 먹어야 하나' 하는 문제로 신경 써야 합니다. 그래도 모레 점심까지는 나의 힘이 닿는 데까지 남은 콩나물로 국 잘 끓여 가지고 아버지께 효도하겠다고 굳게굳게 다짐합니다.

덧붙이는 글 | 아내의 소중함을 절실히 깨닫고 있습니다. 남자라지만 지나칠 정도로 밥과 반찬을 못하는 것이 부끄럽습니다. 국 한 두 가지는 확실하게 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아내가 두 아이와 함께 건강하게 친정에서 새해 잘 맞이하고, 고향의 따뜻한 정을 한아름 안고 오기를 기원합니다.

덧붙이는 글 아내의 소중함을 절실히 깨닫고 있습니다. 남자라지만 지나칠 정도로 밥과 반찬을 못하는 것이 부끄럽습니다. 국 한 두 가지는 확실하게 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아내가 두 아이와 함께 건강하게 친정에서 새해 잘 맞이하고, 고향의 따뜻한 정을 한아름 안고 오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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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요즈음 큰 기쁨 한 가지가 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오마이뉴스'를 보는 것입니다. 때때로 독자 의견란에 글을 올리다보니 저도 기자가 되어 글을 쓰고 싶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우리들의 다양한 삶을 솔직하게 써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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