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외교능력이 수준이하인 이유

우수한 인재에게 푸대접을 해서야

등록 2002.01.01 08:21수정 2002.01.01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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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경제사정이 어렵다 해도 한국의 경제규모는 세계 13위에 이른다. 한국처럼 좁은 국토, 많은 인구, 빈약한 자원을 가진 나라가 치열한 국제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통상능력과 함께 외교협상 능력이 요구된다.

그러나 한국은 나라안의 밥그릇 싸움에만 골몰한 나머지 장기적인 안목과 전문능력을 갖춘 외교인력을 육성하는 데 소홀히 하고 있다. 이같은 외교능력의 부재로 중국에서 내국인이 사형을 당해도 속수무책으로 방관하든가, 협상에서 질질 끌려 당하는 사례들이 비일비재하게 보여지고 있다.

지난 12월 29일 『대한매일신보』에 게재된 「화교같다는 말들으면 신나요」제하의 외교통상부의 여성 통역관 관련 기사를 읽고 한국의 외교역량이 왜 그 모양일까하는 의문이 일부 풀렸다. 먼저 기사의 일부를 소개한다.

“‘화교(華僑)보다 더 화교 같은 여자.’ 대통령과 외교통상부의 공식 중국어 통역관인 여소영(26·6급) 씨는 자신에게 따라 붙는 이 말이 싫지 않다. 외교부 동북아2과 소속으로 중국 외교의 ‘입’역할을 하는 여 씨는 ‘중국사람같다’는 말에 오히려 신바람이 난다고 말한다.

지난 5월25일 김대중 대통령과 방한한 리펑(李鵬)중국 전인대 상무위원장의 오찬 석상. 리 위원장의 부인주린(朱琳)여사가 옆에 서 있던 여 씨에게 ‘의자 좀 밀어달라’고 요청했다. 외교관례상 상대국 통역에게는 할 수 없는 부탁이었지만 여씨는 웃으며 의자를 밀어줬다. 오찬이 끝난 뒤 주린 여사가 여 씨에게 다가와 “너무 중국말을 잘하고 분위기도 중국인 같아서 우리 수행원인 줄 알았다”고 해명했다.

여 씨의 중국말 솜씨와 화교 같은 분위기를 그대로 드러낸 일화다. 여씨는 “나중에 중국대사관 관계자에게서 리펑 위원장도 ‘통역이 우리 중국 사람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면서 “그만큼 상대방에게 ‘신뢰’를 준다는 뜻으로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99년 5월 중국어 통역요원으로 특채돼 외교부에 첫 발을 내디딘 그녀의 활동 범위는 대통령과 외교부 통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총리실 등 각 부처의 급하고 중요한 대중(對中) 현안이 걸린 현장에 수시로 불려 나간다.(중략)”


중국인들조차 자국인으로 착각할(?) 정도로 탁월하게 중국어를 구사하고, 외교통상부뿐만 아니라 각 부처의 대중국 외교현장에 수시로 불려나가는 통역관에게 해주는 대우가 겨우 주사급이다. 공직을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지만 적어도 일의 중요도에 걸맞는 대우가 따라야 한다.

사법시험 달랑 한번 붙은 젊은애들에게도 나랏돈을 들여가며 2년동안 교육을 시켜주고 서기관 이상의 대우를 해주는 마당에 국가의 명운이 걸린 현장에서 한국의 이익을 대변하는 사람에게 이보다 훨씬 못미치는 6급 대우를 해주는 것은 심하다고 생각한다. 위의 여성통역은 초중고 과정을 국내의 화교학교에서 마치고 타이완국립대(국제관계학 전공)로 유학을 갔고 그곳에서 대학원 석사과정을 이수했다고 한다. 전문성이 이른바 고시합격증 수준에도 못미친다면 이 땅에는 전문가의 설자리가 없는 것이다.

수 년전 한국과 소련의 정상회담 때 국내에는 러시아어 통역 적임자가 없어 가까스로 재미 한국인을 2급 이사관 대우를 해주며 특채를 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 통역이 시원찮아 회담 도중에 강판시키고 소련측 통역에게 한국측 통역까지 맡겨 망신살이 뻗친 적이 있다. 엉터리 통역에게도 높은 대우를 해줬던 전례에 비추어 보아도 모처럼 만난 인재에게 형편없는 대우를 해주는 것은 형평성에도 어긋난 처사다.

전투에서 가장 큰 위험을 감수하며 싸우는 전투병에게 논공행상의 우선순위가 배정되듯 국가의 이익이 걸린 외교 현장에서 한국의 의사를 전달하는 통역에 대한 처우도 이와 동일하게 적용돼야 한다. 그러나 한국은 재주부리는 사람 따로 있고, 생색내는 사람 따로 있으니 인재를 몰라보는 국가의 인사시스템이 한심스럽기만 하다.

덧붙이는 글 | 한국사회는 그저 사법시험, 행정고시 등 시험의 우등생만 대접할 뿐 정작 분야에서의 우등생에겐 칭찬도 대우도 형편없다. 전문성이 무시당하는 사회에서 장래의 발전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덧붙이는 글 한국사회는 그저 사법시험, 행정고시 등 시험의 우등생만 대접할 뿐 정작 분야에서의 우등생에겐 칭찬도 대우도 형편없다. 전문성이 무시당하는 사회에서 장래의 발전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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