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뉴스를 '영원한 2등'에서 구하라"

[현장과 사람]'실세 앵커' 엄기영 복귀하던 날

등록 2002.01.02 09:52수정 2002.01.03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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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이종호
글/이병한 기자
사진/이종호 기자


"10초 전입니다."

새해 첫날, 밤 9시가 가까워질수록 여의도 MBC 5층 뉴스데스크 주조정실에는 긴장감으로 팽팽했다. 소리를 내는 사람은 오직 담당PD뿐.

"스타트! 23초에서 페이드아웃하면서 앵커로 넘어갈께요. … 자, 앵커!"

"네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MBC뉴스데스크 엄기영입니다. 저 광야를 달리는 야생마처럼 올 한해 활기차게 출발하시기를 빕니다. 올해는 지방선거와 대선이 있고, 월드컵이 있는가하면 아시안게임이 있습니다. 올해 정정당당하십시다. MBC뉴스는 앞으로 이게 과연 정정당당한가 하는 가늠자의 역할도 하겠고, 그 창을 시청자 여러분께 열어드리겠습니다."

'앵커' 엄기영이 돌아왔다. 지난 96년 11월 뉴스데스크 스튜디오를 떠난지 만 5년만이다.


'앵커' 엄기영 복귀의 두가지 의미


엄기영 씨의 앵커복귀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시청율 하락'이라는 고민에 빠진 MBC뉴스 제작진의 대응책이다.

시청률 조사기관인 'TNS 미디어코리아'에 의하면 2001년 12월 평균 방송 3사 메인뉴스 시청률은 KBS가 18.9%, MBC가 11.8%, SBS가 8.4%로서 MBC가 KBS에 약 7% 뒤지고 있다. 이같은 차이는 2001년 7월 이후 고착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3%정도 하락한 시청률이 좀처럼 상승하지 않는 것이다.


1월 1일 밤, 첫방송 직후 엄기영 앵커와 마주앉았다. 그는 뉴스 시청률 하락의 원인을 '변화된 시대'에서 찾고 있었다.

"굉장히 복합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상당히 권위주의적인 시대여서 상대적으로 그만큼 MBC에 대한 기대가 있었는데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무엇보다 멀티미디어시대가 되면서 뉴스공급 소스가 위성·케이블·인터넷 등 다양해졌습니다. 특히 인터넷이... MBC의 주 시청층은 KBS에 비해 30∼40대의 젊은 고학력층이었는데 이들은 거의 컴퓨터 엑세스가 가능합니다. 그래서 자꾸자꾸 이탈해가는 거지요."

ⓒ 오마이뉴스 이종호
엄 씨 또한 시청율 하락에 대한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왜냐하면 MBC뉴스의 시청율이 지속적으로 하락했던 90년대 후반, 그는 앵커에서는 물러났지만 보도본부장 등 보도국의 핵심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지적에 대해 엄 씨는 "당연하다"면서 작년 언론사 세무조사 정국에 대해 먼저 말을 꺼냈다.

"뭐라고 할까요. 휘둘렸다고 할까요? 작년 언론개혁을 둘러싸고 타매체와 MBC 사이의 갈등, 정치권과 MBC 사이의 갈등이 있었죠. 신문매체를 중심으로 갈등관계가 형성되고 그것이 정치권, 특히 야당으로 토스가 돼서 떠들면 확대 재생산이 되는, 그러면서 손해를 많이 봤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때 저희가 선택한 포지션이 옳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더 절실한 것이 언론개혁이 아닌가 합니다. 지금도 그런 자세에서는 후퇴할 생각이 없습니다."


보도본부장을 겸한 실세 앵커

'앵커 엄기영' 복귀의 또다른 의미는 본격적인 미국식 앵커제도의 한국화 가능성이다. 다분히 미국적인 방송 제작 시스템인 '앵커'는 뉴스를 통해 '그만의 보도, 그만의 뉴스'를 만들어내야 정상이다. ABC방송의 피터 제닝스, NBC의 톰 브로커, CBS의 댄 래더는 각 뉴스의 실질적인 중심으로서 단순한 아나운서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하지만 그만한 경륜과 사내 위상, 능력을 겸비하지 않고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엄기영 씨의 경우 이미 89년부터 96년까지 7년간의 뉴스 진행 경험을 가진 베테랑이다. 무엇보다 그는 현재 보도본부장을 겸하고 있다. 외형적으로 볼 때 뉴스의 제작과 진행 전반을 장악하고 자신의 색깔을 집어넣을 수 있는 가능성이 가장 높아진 '실세 앵커'인 셈이다. 미국식 앵커제도의 한국화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엄 씨는 "아직 우리나라의 사회문화가 누구를 영웅으로 만드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것 같다"며 조심스러우면서도 강한 의욕을 보였다.

"저의 앵커 복귀는 시청자들의 욕구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왜 우리는 미국과 같은 뉴스를 못하는가 말이죠."
- 실질적인 앵커로서의 시도를 해보겠다는 말씀인가요?
"예. 아직 기자들이 쌓아온 공정성에 대해, 엄기영 저 사람이 임원의 논리를 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남아있지만, 무엇이 뉴스를 살리는 것인지, 시청자들이 보는 뉴스를 만드는 것인지, 후배기자들에게 끊임없이 의견을 이야기할 생각입니다."


만년필 시대에서 컴퓨터 시대로, 엄기영의 선택

ⓒ 오마이뉴스 이종호
1월 1일 밤 10시, 복귀 후 첫 방송을 마친 엄 씨가 스튜디오를 나오면서 스태프들에게 한 첫마디는 "아휴∼ 떨려가지고"였다. 7년 경력의 베테랑 앵커에게도 5년이라는 공백은 쉽지 않은가 보다. 엄 씨는 예전과 지금의 가장 큰 차이를 '만년필과 컴퓨터의 차이'로 설명했다.

"전에는 원고로 앵커멘트를 써서 넘기면 타이핑을 해줬는데, 지금은 워드프로세서가 보통이 돼서 직접 워드로 집어넣어야 한대요. 그게 아직 능숙하지 않아서 애를 많이 먹었습니다."

그의 말대로라면 '만년필 시대' 뉴스데스크를 이끌었던 사람이 '컴퓨터 시대'에 다시 전면에 나선 셈이다. 하지만 둘 사이의 간격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뉴스, 언론의 본질이 있을 것. '위기에 빠진 MBC뉴스를 구하라'는 임무가 주어진 그의 복안은 무엇일까.

"시청자의 욕구를 쫓아가서, 그것을 발굴해 충족시켜주는 겁니다. 영합이 아니라 건전한 욕구를. 그래서 세상을 보는 세계관, 사회관, 역사관까지 올바르게 제공하는 보도가 돼야하지 않을까요. 흔들림 없이 꾸준히. 그래서 '아, MBC는 일관성있게 하는구나'하고 시청자들에게 삼투되게 해야죠."

아무리 실세 앵커라지만 이것을 앵커 혼자 할 수는 없을 것이다. MBC의 한 관계자는 "앵커를 바꾸면 초기에는 시청율이 좀 올라간다"면서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관리해서 전반적으로 끌어올리느냐다"라고 말했다. 그는 "기자들의 리포트 방식 등 뉴스전체를 새롭게 해서 시너지 효과를 찾아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도 더 절실한 것이 언론개혁이 아닌가 합니다."
MBC 엄기영 보도본부장은 새해 첫날 5년만에 다시 힘든 임무를 띤 채 앵커로 복귀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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