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버스 여행, 이런 점은 고칩시다

등록 2002.01.02 21:46수정 2002.01.03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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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서의 장거리 버스여행은 '기약없는 기다림의 연속'이라고 할 만큼 승객이 찰 때까지, 또 운전기사 아저씨의 끼니가 해결될 때까지 언제까지라도 기다려야 되는 것이 그 버스에 탄 승객의 미덕(?)이라고 한다. 게다가 빽빽이 들어찬 사람과 가축, 진한 땀내와 후끈거리는 열기의 불편까지 덤으로 이겨내야 한다.

이런 경험이 없는 외국인에게는 인도여행이 무척 지루하고 불편할 것이다. 하지만 그곳은 인도가 아니던가! 인도여행에서 느끼게 되는 '고달픔'은 인도여행에서 얻게 될 중요한 덕목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오늘 난 경주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고속버스에서 인도여행자들처럼 지루하거나 불편을 느끼진 않았다. 고속버스를 자주 이용하면서 나름대로 시간 때우는 방법을 터득했고 일반버스보다 무려 7000원이나 더 주고 승차(우등고속버스의 배차가 90% 이상이기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음)한 우등고속버스의 안락한 의자가 마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루함이나 불편함보다 더 힘들었던 건 출발에서 도착할 때까지 수시로 겪은 불안이었다.

고속버스를 타면 으레 녹음된 안내방송을 세 번 듣게 된다. 첫 번째 안내방송은 출발할 때 나온다. "오늘도 저희 고속버스를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승객 여러분의 안전을 위해 안전벨트를 꼭 착용해 주십시오..." 안전을 위해 안전벨트를 꼭 착용해 달라는 친절한 안내를 받으면 여기저기에서 승객들이 안전벨트를 착용하느라 달그락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물론 안내방송을 무시하고 일찌감치 신발을 벗어 앞좌석 등받이에 두 다리를 걸쳐놓는 승객도 있다.

버스는 출발했고 겨울식량처럼 한 달 전에 준비해둔 몇 권의 인디언 관련 책 중 한 권을 꺼낸다. 한 단락 정도를 읽고 다시 책을 덮는다. 그리고 차창 커튼을 젖히고 한동안 보지 못했던 산과 나무의 풍경을 감상하며 이런저런 공상에 젖는다. 이 모든 건 경주에서 서울까지 가는 동안의 지루함을 해결하기 위해 버스에 타기 전에 이미 계획되었던 것이다. 주위의 다른 승객은 일부 깨어있고 대부분 수면중이다.

임오년, 말의 해에 난 또 어떻게 살아갈까. 따뜻한 3월이 올 때까지는 어떻게 생활하고 가을까지는 무얼 해야겠다, 그리고 돌아오는 겨울에는... 창 밖으로 스치는 풍경에 하염없이 눈길을 주며 한해를 계획하고 있는데 갑자기 버스가 '덜컹덜컹'하더니 속도가 줄고 있었다.

승객들은 무슨 일인가 싶어 운전기사 아저씨쪽으로 눈길을 돌렸지만 아무 일 없다는 듯 계속 서행으로 운전을 하고 있는 운전기사 아저씨. 그렇게 불안한 마음으로 덜컹거리는 버스를 타고 15분 정도 갔을때 두 번째 안내방송이 나왔다. "...승객 여러분의 용무를 위해 이곳 휴게소에서 약 10분간 정차하겠습니다."

버스는 휴게소에 섰고 그제서야 운전기사아저씨는 차가 고장나 다른 차로 갈아타야 될지 모르니 용무를 보고 오라는 것이었다. "그럼, 미리 안내방송을 해주지 그랬어요"라며 물었지만 운전기사 아저씨는 아무 말도 않는다.

안내방송에서 말한 10분이 지난 후 버스가 서있던 곳으로 가보았지만 버스는 없었다. 그러더니 25분 후에야 버스가 나타났다. 한쪽으로 기우뚱하던 버스가 똑바로 서있는 것을 보니 정비소에서 수리를 한 것 같았다. 아무튼 다행이다 싶어 승객들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다시 버스를 탔다.

고속버스 안은 밖의 매서운 추위를 비웃기라도 하듯 히터의 훈훈한 열기로 승객들을 잠으로 빠져들게 하고 있었다. 한 시간쯤 갔을까. 신정이지만 비교적 소통이 원활해 멈추지 않고 달리던 버스가 정지를 했다. 앞쪽에 사고가 난 것 같았다. 도로 가득 차량이 늘어서 있었다.

사고현장을 지나면서 안타까워하고 있는데 갑자기 노래소리가 들렸다. 운전기사 아저씨가 라디오를 틀었던 것이다. 결국 승객 모두 운전기사 아저씨가 켜놓은 라디오 소리를 "...승객 여러분 여행중에 불편한 점은 없으셨습니까"라는 마지막 안내방송이 나오기 전까지 들어야 했다.

TV에선 월드컵대회의 성공을 기원하는 목소리를 줄기차게 내보내고 대통령의 신년연설에서도 월드컵과 아시안게임을 통해 국운융성의 해를 만들자며 말의 해에 큰 희망을 담는 요즘이지만 경주에서 서울까지 버스를 타고 오면서 아직 준비해야 할 것이 많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운행중 돌발상황이 발생했을 때 불안해하는 승객을 위해 운전기사는 어떤 상황이 발생했고 앞으로 어떻게 조치를 취하겠다고 안내방송을 해야 되지 않았을까?

도착시간이 조금 늦더라도 안전을 위해 잦은 차선 변경과 급정거를 자제해야 되지 않았을까? 운전기사의 잘못을 일러주어 안전운행을 할수 있도록 촉구하는 것이 승객의 의무는 아니었을까?

인도의 장거리 버스여행의 지루함과 불편함은 인도여행의 상품일지 모른다. 하지만 세계적인 대회를 앞두고 외국손님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하는 우리에게는 별 것 아닌 것 같은 말 한마디의 안내방송이 외국인들에게 한국을 다시 찾는 작지만 소중한 부분임을 알아야 되지 않을까.

아무리 친절하고 좋은 목소리로 녹음된 안내방송이라도 때때로 해결할수 없는 상황이 있다. 투박하고 두서없는 목소리지만 솔직하고 정성이 담겼다면 그것만으로도 우리의 손님은 한국에 대해 따스한 눈길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오늘 같은 버스에 탄 두 명의 외국인이 한국의 고속버스여행에 대해 느꼈을 것에 대해 생각하며...

덧붙이는 글 오늘 같은 버스에 탄 두 명의 외국인이 한국의 고속버스여행에 대해 느꼈을 것에 대해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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