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업, 중국 투자 ABC가 없다”

[특별진단] 차이나드림(6) -왜 무너지는가

등록 2002.01.03 11:47수정 2002.01.03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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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되는 중국에서의 좌초가 결국 차이나 드림은 ‘신기루’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일까. 결코 그렇지만은 않다.

상당수의 서구 대기업들이 중국에서 성공적으로 사업을 펼쳤고, 지금도 급속히 성장하고 있다. 특히 다양한 문제에 직면했던 외자(합자/독자)기업들에게 중국의 WTO가입은 새로운 기회로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게는 아직 그렇지 못하다. “우리 회사의 경우 잔업이 규정시간에서 20시간을 초과하는 경우가 많다. 위법인지도 안다. 가끔씩 사내에서의 고발이나 단속에 걸려서 벌금을 냈다는 회사의 이야기를 듣는다. 하지만 현재의 물량을 소화하기 위해 작업을 해야 한다. 사원들에게 정당하게 수당을 주고, 일한다고 하지만 불안한 느낌이 든다.” (칭다오 전자부품업계 현지 총경리)

“최근에 우리 회사가 구정부의 집중적인 타킷이 되고 있다. 우리 회사는 단순가공 인원이 2천 명에 이른다. 이들에게 규정대로 양로보험 등 각종 보장비를 부담하라고 할 경우 중국의 인건비가 싸다는 장점은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우리 공장이 타킷이 되고 있지만 주변에 사람들도 우리 회사에 관심을 쏟고 있다. 여차하면 모두 짐을 싸고 다른 개발구로 이동할 생각이라는 각오다. 하지만 공장이전이 그렇게 쉬운가.” (톈진 미용품 생산업체 중간 간부)

차이나 드림은 현실로 실현되어 기대를 갖게 하기보다는 이미 ‘신기루’에 불과하다는 의혹을 갖게 하고 있다. 차이나 드림이 현실에서 성과물을 제대로 얻지 못하는 것은 분명히 원인이 있다. 그 원인은 중국이라는 특수한 환경과 아직도 적지 않은 규제 속에서 움직이는 중국의 경직된 체제에 있기도 하다. 하지만 전경련의 한 간부가 중국을 다녀온 후 “중국은 자본주의 국가보다 더 자본주의적이다”라고 한 말이 시사하는 바는 적지 않다. 위의 사례들도 법을 피해 가거나 편법으로 일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도 적지 않다.

중국인들에게는 근본적으로 상업을 할 수 있는 수완이 있고, 거기에 오랫동안 거대한 땅을 영위해 왔다는 자존심이 있다. 그런 중국에 대한 이해없이 중국에 접근하는 것은 섶을 지고 불에 뛰어드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 당연했다.

우연히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이후에 만나는 파고 앞에서 허무하게 무너지는 것이 한국 투자집단이다. 이 결과 중국에서 우리 기업은 뛰어들어 활동하기보다는 생산기지로 활용하는 정도로밖에 인식되지 않고 있다. 도대체 “젓가락 하나만 팔아도 13억 개를 판다”는 기대는 왜 무너지는가.


그 원인을 점검해 본다.

중국에 대한 상식의 오류


선전(심천) 한국상회 이영호 부회장은 위와 같은 한국인들의 환상에 일침을 가한다. 한국에서는 ‘젓가락’ 타령을 하지만 이는 중국에 대한 기초도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현재 하얼빈의 경우 영하 30도를 오르내리지만 하이난다오(해남도)는 해수욕이 가능한 따뜻한 여름날씨다. 산둥반도의 끝인 웨이하니(威海)에서 해는 오전 6시에 뜨지만 같은 시간대를 쓰는 신장(신강)성 카스에는 9시 30분이 되야 해가 뜨는 곳이다.

현대 상품 가격을 결정하는 물류비용을 감안하면 중국은 한 나라가 아니다. 선박운송비가 싸다는 점을 생각하면 따리엔이나 웨이하이에서 서부로 이동하는 비용은 이곳에서 인도로 가는 비용을 능가한다는 것이 현지 관계자들의 말이다. 주중한국대사관 관계자들은 중국 정부의 추천에 따라 99년부터 서부를 몇 차례 탐사했지만 고개를 흔들었다. 자원이 풍부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물류비나 시설 투자비를 감안할 때 엄두가 나지 않았다는 것이 참석자들의 일치된 반응이다.

중국 정부와의 입장도 있고 해서 애써 외면도 긍정도 못하는 입장이다. 중국 내부는 물리적인 거리도 있지만 제도적, 문화적 거리도 만만치 않다. 중국에는 동부 연안 지역을 중심으로 엄청나게 많은 개발구들이 외자기업을 유치하려 하지만 전 개발구가 독특한 세제 등을 적용하고 있다.

또 광둥에서의 기업환경과 산둥, 허베이 등에서의 투자는 엄청난 차이가 난다. 거기에 중국 정부는 개발구 등에 있는 외자기업을 대상으로 부여하던 특혜를 국내기업에 대한 차별이라는 이유로 폐지할 방침이다.

기초비용에 대한 오해

벌써 몇 차례 지적했지만 중국이 인건비가 싸다는 특장점은 머잖아 과거사가 될 확률이 많다.

중국 정부는 외자기업에게도 중국의 노동환경을 적용할 것을 강하게 권고하고 있다. 중국노동자의 단순임금은 싸지만 의료, 양로, 주택 보험 등 사회보장지원비를 모두 법적으로 지불할 경우 투자기업들의 인건비가 낮다는 장점은 그다지 큰 이점이 되지 못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대부분의 외자기업들은 시나 구, 개발구 정부와의 암묵적인 합의를 통해 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이 부분도 점차적으로 어려워지고 있다. 중국 정부가 노동환경 개선을 이유로 내부고발자에게 벌금의 일부를 주는 등의 방법을 쓰기 때문에 위험요소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또한 중국 내수시장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거대한 물류비용뿐만 아니라 복잡한 유통시장으로의 진입, 매출의 17%에 달하는 증치세 등 적지 않은 장벽을 넘어야 한다.

치열해지는 경쟁

생산품의 전부를 해외에 수출하는 기업의 경우에 덜하지만 중국에서 활동하는 한국이나 중국대기업에 부품을 납품하는 기업들의 경우 더 이상 경쟁이 어렵다는 것이 관련 기업들의 아우성이다. 한국기업의 경우 입주비용, 원재료의 수급과정에서의 추가 비용, 주재원에 대한 처우 문제 등으로 인해 더 이상 중국부품 공급기업과 경쟁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중국기업의 경우 기초투자가 작고, 질이 떨어지는 원재료를 수급받는 일이 많아서 한국납품업체의 재료비가 그들의 납품가가 되는 일이 허다하다고 말한다. 이런 수급 과정의 어려움 때문에 대기업들이 벌이는 어처구니 없는 경쟁구도에 빠지고 있다.

납품업체의 한 사장은 대기업 직원이 자정까지 술을 먹다가 불러내 술값을 지불하게 한 경우가 적지 않다며, 사업을 철수하는 날에 반드시 손을 봐주겠다는 다짐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문제는 이런 출혈경쟁에 한국기업들이 스스로 빠지고 있다는 것이다. 세탁기에 들어가는 사출 제품을 납품하는 한 중소기업 사장은 최근 어이없는 일을 경험했다.

자신이 과거 여러 대를 들여와 제품을 만들어 납품하다가 최근에는 공급 부족으로 절반 이상 놀리고 있는 부품 생산기계와 같은 기계를 들여온 공장이 최근에 바로 옆에 입주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공장에서 쓰고 있는 기계보다 한층 개선된 생산기계라고 하지만 이미 원가경쟁에서 중국기업에게 떨어지기 시작한 기계를 들여와 한국기업끼리도 경쟁을 하는 상황에 어이가 없었던 것이다.

알지도,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베이징, 톈진, 칭다오 등 한국기업이 적잖게 투자하고, 입주한 지역에서 활동하는 현지 컨설팅 회사가 몇 개나 될까. 현지에서 손에 꼽는 컨설팅 회사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다. 그 가운데 능력을 인정받는 중국 현지 투자 컨설팅 회사는 거의 없다.

대부분의 컨설팅 회사들도 컨설팅 자체를 주력업종으로 삼기에는 수익구조가 맞지 않기 때문에 사업에 어려움을 겪는다. 현지 투자기업들이 수천만 위안씩 쏟아붓는 투자에는 아까워하지 않으면서도 정작 투자의 기초를 파악하는 컨설팅에는 비용 투자를 아끼기 때문이다.

결국 기초공사도 하지 않고, 건물을 짓고, 고속도로를 건설하는 경우다. 이 때문에 현지에서 전문가 집단이 만든 컨설팅 회사들도 본업으로 생존하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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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케이아이테크놀로지 상무. 저서 <삶이 고달프면 헤세를 만나라>, <신중년이 온다>, <노마드 라이프>, <달콤한 중국> 등 17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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