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동포가 남편에게 보내는 편지

등록 2002.01.06 16:47수정 2002.01.06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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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마와 싸우고 있는 당신에게 수만리 타국에서 치료비를 벌고 있는 아내가 편지를 보냅니다.

여보세요, 려화 할아버지.

약은 잘 챙겨들고 있는지 앓지나 않는지 허약한 몸으로 가정을 유지하고 있는지 얼마나 고생스럽겠는지 참 궁금합니다. 귀여운 손녀 려화도 학교에 잘 다니는지. 려화 아빠와 삼촌들도 보고 싶고 특히 둘째 아들 영근이는 잘 있는지. 이곳에 온 친척들 얘기는 더러 들어서 알았지요. 고향을 떠나 수만리 떨어진 이곳에 온 지도 벌써 일년이 되었군요. 당신의 치료비 보탠다는 구실로 각오하고 왔지만 어찌 힘든 세월이 아니겠어요. 그러나 지금은 몸과 마음이 그런대로 평온합니다.

처음 다섯 여섯 달은 무척 힘들었어요. 이곳에 온 조선사람들은 거의 모두가 식당일이나 건물 청소 등으로 하루 10여 시간의 힘든 일을 합니다. 나도 식당일 청소일 등을 하다가 너무 지쳐서 피부병이 발생했습니다. 그래서 일하지 말고 쉬어야 한다는 의사의 지시를 받고 암담했습니다.

다행히 이곳에 내가 다니는 조선족 복지선교센터 임 목사님 소개로 어느 한 가정에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하나님 자손들답게 마음씨 아름다운 가족들입니다. 젊은 부부와 초등학교와 유치원에 각각 다니는 두 딸 등 화목한 네 식구 집안입니다. 식구들은 늘 나를 한 가족으로 대우해주고 있습니다. 가족끼리 왕래, 외식할 때마다 늘 나를 억지로 끌다시피 함께 나갑니다. 애들 간식을 사들고 올 때는 할머니 것이라면서 꼭 내 것도 챙겨들고 옵니다. 마치 내가 아들, 며느리의 보살핌을 받고 있는 것처럼 때때로 느껴집니다.

큰 딸 정민주, 작은 딸 정민성이는 나를 친할머니처럼 알고 따르며 꼭 내 품에서 잠이 듭니다. 나의 귀여운 손녀 려화도 나의 품이 그리울텐데 생각하면 목이 멥니다. 나는 사람 복이 있는지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아 잠시 외로움을 잊고 삽니다.

민성이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외숙모 내외, 외삼촌 형제들도 나에게는 한 식구입니다. 가깝게 살고 있는 탓에 일주일에 한두 번쯤 가서 집안 정돈해주고 있습니다. 민성이 외할아버지는 특히 나같은 사람에게 마음의 위로를 주어 고맙게 생각합니다. 중국 조선사람들이 한국에 와서 푸대접받고 있다는 것을 신문 등에서 읽으면 몹시 안타까와 하십니다. "조선족들은 옛날 일본 사람들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쫓겨가서 독립운동을 하고 또 독립운동가들을 뒷바라지 해준 동포들의 후배들입니다. 어찌 이들을 이렇게 푸대접할 수 있는가?" 하며 마음 아파하십니다.


나는 요즘 교회에 열심히 다닙니다. 집에서 교회까지 가려면 차로 2시간 넘어 걸리지만 목사님 비롯해서 동포들을 만나는 재미로 먼길을 가깝게 생각하며 다닙니다. 크리스마스 행사를 위해 나도 춤과 노래를 배우고 있습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해주신 목사님, 부인, 다정한 동포 교우들에게 한없는 감사를 느낍니다.

여보 그립고 보고 싶고 보고 싶어 자꾸 눈물이 나니 더 쓰지 않으려오. 언제 어느 때 반갑고 기쁜 그 날이 돌아올지? 언제 어느 때 손꼽아 기다리는 두 사람 한숨을 털어 버리고 웃음 속에 축배의 노래를 부르고 싶어요. 여보. 아내가 없어도 자기절로 자기 몸을 잘 돌봐야해요.


돈 때문에 절대 속 태우지 말고 제때에 식사와 약을 잡수시오.
나는 매일과 같이 온 가정의 신체 건강을 하나님께 기도하렵니다.
오늘은 이만하면서 당신의 신체 건강을 축원하면서 안녕히.

덧붙이는 글 | 최순애(55세) 씨는 중국 연길에서 왔습니다. 남편은 위암으로 투병 중이고 둘째 아들은 장애인이라서 노동하기가 어렵고 셋째 아들은 차 사고를 내 무기징역으로 감옥에 있습니다. 한국에서 돈을 벌어서 남편치료와 가족을 부양하며, 사회에 기부를 하면 감옥에 있는 아들이 감형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덧붙이는 글 최순애(55세) 씨는 중국 연길에서 왔습니다. 남편은 위암으로 투병 중이고 둘째 아들은 장애인이라서 노동하기가 어렵고 셋째 아들은 차 사고를 내 무기징역으로 감옥에 있습니다. 한국에서 돈을 벌어서 남편치료와 가족을 부양하며, 사회에 기부를 하면 감옥에 있는 아들이 감형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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