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교야! 울지 마

폐교 상안초등학교를 가다

등록 2002.01.06 22:02수정 2002.01.07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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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흥찐빵으로 유명한 강원도 횡성군 안흥면이라는 곳이 있다. 찐빵으로 인해 유명해진 조그마한 면, 아련한 옛날의 향수를 아직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번 쯤 들어 보았거나 또는 치악산 등산길에 한번 쯤 들러 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곳, 안흥의 면소재지에서 3-4킬로미터 42번 평창행 국도를 따라가다 보면 아름다운 폐교 하나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미 1995년 3월 1일 폐교가 된 곳이지만 아직도 어디선가 개구쟁이들과 말괄량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올 것만 같은 곳이다


연초에 내린 눈이 아직도 녹지 않아 쌀쌀한 기운이 도는 이곳의 교문을 들어서려는 순간 하얀 안내문이 눈에 들어온다

우람한 아름드리 잣나무가 울타리를 만들어 빙 둘러있고 돌담으로 운동장이며 건물을 둘러싸고 있는 아름다운 폐교의 겨울풍경은 너무나 쓸쓸하기만 하다. 아니 너무나도 슬퍼 눈물이 나올 지경이다. 그네는 이미 녹이 슬고 사슬은 꼭대기에 아무렇게나 뒹굴고 미끄럼틀의 내림판은 어디서 누가 가져 갔는지 기둥만 쓸쓸하다.

운동장을 가로 질러 화단에 오르자 멸공소년 이승복 군의 동상이 이끼 낀 자태를 드러낸다. 동상을 바라보다가 문득 초등학교 시절을 떠올렸다. 시내에서 큰 트럭에 실려 온 세종대왕 동상을 보고 아무런 느낌도 못 받았던 시절도 있었다. 차라리 다 떨어져 나간 전기에서 읽은 세종대왕의 인상을 나 혼자 그려보던 이미지가 오랫동안 남는 까닭은 무슨 이유일까?

교실로 들어섰다. 칠판엔 권경자 선생님 이라고 아무런 부담감 없이 써 내려간 글씨가 눈에 들어온다. 문뜩 찾아온 한 졸업생이 아직도 눈에 선한 여선생님을 잊지 못하고 쓴 글씨인 듯하다. 아직도 유리창에 선명히 남아있는 딱정벌레의 무늬며 개구쟁이들을 그린 무늬는 그 어떤 인테리어 보다 훌륭하다. 다만 그것을 예쁘게 바라봐 주는 이가 없어 안타까울 뿐이다.

교실에서 나오니 복도 한켠에 자리잡은 신발장이 눈에 들어온다. 저 신발장에 신발이 사라진 지 어느덧 6년의 세월이 흘렀다. 교무실인 듯한 방으로 들어섰다. 칠판엔 월 행사표가 정리되어 있고, 출결상황판, 그리고 주훈이며 월훈이며 지시사항 등이 보인다. 전교회의를 통해서 주훈과 월훈이 정해지고 실천사항이라고 해서 우리들 끼리 실천사항을 정하던 회의시간이 눈에 선하다. 하지만 초등학교 시절 교무실은 나에게 쑥스러운 대상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리 대단한 곳도 아니었지만 그때 당시 선생님의 존재는 우리들에게 있어 절대적인 것 그 이상이었다. 요즈음 어린이들이 들으면 웃음부터 짓고 말 것이다.


뒤편의 공간엔 폐가가 된 사택이며 소나무 우거진 솔숲이 자태를 드러낸다. 콘크리트로 만든 둥근 테이블이 띄엄띄엄 눈에 들어온다. 둥그런 테이블 주위로 의자 9개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의자는 선생님의 의자인 듯 하다. 폐교 직전 한 학년의 수업은 거뜬히 치렀을 법한 공간인 듯하다. 그곳에 앉아 초롱초롱 눈빛을 밝히던 갑순이와 갑돌이는 어느 도시의 어느 아파트에서 이곳을 떠올리고 있으리라. 문득 쓸쓸한 테이블을 바라보니 김용택 시인이 쓴 수필집 '촌아 울지 마'에서 나오는 섬진강변 마암분교 한 어린이의 동시가 떠오른다.

쓸쓸한 촌


사람들이
다들 도시로
이사를 가니까
촌은 쓸쓸하다
그러면 촌은 운다

촌아 울지마

마암분교 박초희


그렇다. 교육이라는 특수성보다는 자본주의의 논리에 앞서 경제성의 명분으로 우리의 시골학교들은 폐교가 되었다. 때론 다람쥐를 잡으러 학교 옆 솔숲을 뛰어 다녔던 아이들의 재잘거리던 웃음소리가 이웃 면소재지의 큰 학교로 옮겨지는 것으로 폐교의 슬픔은 끝나지 않았다.

폐교는 단순한 초등학교의 없어짐이 아니라 마을의 중심적인 공동체 공간을 앗아갔고, 더욱 더 많은 이들을 도시로 이사하게끔 만들었다. 아울러 마을문화의 크나큰 상실을 의미했다.

그 뒤에 폐교는 공공목적이라는 명분으로 여느 종교집단의 수련회장이 되어 또는 기도원이 되어 높은 담장으로 둘러쳐지고 자물쇠를 굳게 잠가버려 닫힌 학교 아니 잃어버린 성이 되어 버렸다. 그래도 예술인들의 작업공간이 된 학교는 지역주민과 연대감을 가지고 새로운 문화활동을 벌여 나가는 곳도 적지 않다. 아니면 이렇게 상안초등학교처럼 외지에 위치한 까닭으로 쓸쓸한 바람만 부는 폐교도 부지기수일 것이다.

2002년 새해 벽두의 폐교엔 오랜만에 까치소리가 울려 퍼졌다. 무척이나 오랜만에 사람 얼굴을 확인한 듯 상안폐교는 잠시 슬픈 울음을 멈추고 노랫소리를 들려주고 있다. 제발 더 이상 폐교가 없었으면…….

무너지는 학교교육의 대안학교가 다름 아닌 시골학교 아닌가? 교육부는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니면 알면서도 애써 외면하는지 모르겠다.

더 이상 교육이 우리의 교육이 경제논리의 대상이 아닌 무한한 꿈 그 자체에 있었으면 하는 바람은 나만의 욕심이 아니길 빌어 본다. 상안폐교는 해가 뉘엿뉘엿 해지는 풍경에 다시금 눈물을 흘리려 한다. 폐교야 울지 마……

덧붙이는 글 | 전영철은 관광학을 전공하고 자칭 여행을 부전공한 나그네이다.

덧붙이는 글 전영철은 관광학을 전공하고 자칭 여행을 부전공한 나그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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