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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목수일을 시작한 지 5개월이 되어 갑니다. 학생(F-1 비자) 신분이기 때문에 학기중에는 주당 20시간, 방학중에는 주당 40시간까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주로 오전에 강의를 몰아서 듣고 오후에 일하는 시간을 맞추느라 하루가 빠듯하지만, 땀 흘리며 일한 뒤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에 또 다른 기쁨이 있습니다.
여전히 목수일에 서툰 초보임에는 분명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낯설었던 용어나 공구들에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일을 하다보면 크고 작은 실수도 하게 되고 실수는 곧 상처로 이어지기 때문에 어떤 공구이든 익숙해지는 것과는 별개로 긴장을 게을리할 수는 없지요.
크고 비싼 전동공구를 비롯한 웬만한 공구들은 다 목공소에 있지만, 각자 사용하는 망치나 끌 혹은 칼과 같은 사소한 연장들은 개인적으로 준비해야 합니다. 저도 처음 일을 시작하면서 받은 '공구 목록'을 참고로 몇 가지를 구입했습니다. 저 같은 초보들은 아주 단순한 공구밖에는 없지만 오랫동안 일을 하신 분들은 공구가방 안에 별의별 연장들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레블(level)'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사전을 찾아보니 우리말로는 '수준기' 혹은 '수평기'라고 한다는군요. 두꺼운 플래스틱 막대 안에 알코올이 담긴 작은 관이 있고 그 속의 기포를 이용하여 벽이나 마룻바닥 등의 수평이나 수직을 알아보는데 사용되는 공구이지요.
군에 갓 입대하여 논산에 있는 육군 제2훈련소에서 박격포 훈련을 받던 시절, 기포를 이용해서 수직이나 수평을 잡는 도구를 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처음 봤을 때부터 그리 낯설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레블'은 주로 문이나 문틀을 바꾸는 등 정확성을 요구하는 작업을 할 때 사용되기 때문에 저 같은 초보에게 그리 필요한 도구는 아닙니다.
지난 겨울방학에 부모님께서 오셨을 때 함께 찍은 가족사진을 며칠 전에 찾았습니다. 1년 반만에 잠깐 만난 기쁨 뒤의 아쉬움이 사진 속에 고스란히 묻어 있었습니다. 사진을 넣으려고 커다란 액자를 사면서 문득 '레블'이 떠올랐습니다. 마켓 한 구석에 있는 공구 파는 곳에 가보니 마침 세일을 하고 있어서 아주 싼값에 9인치짜리 작은 '레블'을 하나 구입했지요.
사진을 액자에 넣은 후 레블을 이용하여 정확하게 반듯이 벽에 걸었더니, 사진 속의 부모님들께서 더욱 환하게 웃고 계셨습니다. 이전부터 있던 다른 액자들도 레블을 이용하여 수평을 잡으니 뭔지 모르게 더욱 반듯한 느낌에 기분도 좋아지더군요. 모든 물건을 '각 잡듯이' 정렬해야 하는 결벽증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마루를 뛰어다니고 문을 세게 닫다보면 액자들은 다시 수평을 무시하고 약간은 비뚤어질지도 모릅니다. 물론 그때마다 계속해서 레블을 이용해서 정확한 수평을 잴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필요할 때면 언제든지 레블은 정확한 수평을 가르쳐주겠지요.
우리네 삶의 수평을 잴 수 있는 그런 '레블'은 어디 없을까요? 과연 내가 배우고, 생각하고, 일하고, 사는 삶이 바른 것인지 헷갈릴 적마다 꺼내서 한번씩 재볼 수 있는 그런 '레블'이 말입니다.
언젠가 신영복 선생님께서 '물에다 얼굴을 비추지 말라(無鑒於水)'고 하는 옛 사람들의 경구를 인용해 '사람들에게 자신을 비추어 보라(鑒於人)'는 이야기를 하셨듯이, '레블'에 자신을 비추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목공 연장 안에도 삶에 대한 성찰이 담겨 있다면 지나친 과장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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