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캡션 텔레비전'이 필요하지 않을까?

등록 2002.01.18 11:25수정 2002.01.18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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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및 언론의 가장 중요한 기능 중 하나는 매체수용자에게 사회 일반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일이다. 특히 전파는 국민의 것이라는 전파관리법의 이념으로 보자면 방송은 어떤 종류의 장애를 가진 사람이든지 간에, 그 소유자인 국민에게 서비스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흔히 "시각장애인도 텔레비전을 본다"고 한다. 텔레비전 영상의 정확한 직접전달은 되지 않지만, 시각장애인들은 소리를 통하여 화면의 구성내용을 상상하면서 듣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의 영상기술의 비약적인 발전과 예술영상의 등장은 소리를 통한 상상만으로는 접근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으며, 장애를 갖게 된지 얼마되지 않은 사람들의 경우에는 그 답답함이 더욱 클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영상산업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이런 복지적인 측면과는 전혀 다르게 나간다. 종종 논의되는 텔레비전 대사의 자막처리 문제는 청각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얼마나 심각하게 부족한 지 보여주는 좋은 예다.

녹음상태가 안 좋거나 출연자의 말이 빨라서, 또 중요한 대사를 자막처리를 하는 경우에 대해 상당수의 매체비평가들은 '공해'라고까지 표현한다. 시청자들은 잦은 자막의 등장에 혼란을 느끼며, 영상과 음성내용의 온전한 감상에 방해가 되는 자막제공은 공해라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해 보라. 빠른 대사를 알아듣지 못하는 어린이나 귀가 어두운 노인들, 잠시 머무는 외국인들에게도 자막이 공해가 될 것인가? 오히려 조잡한 음성을 편집하지 않고 내보낸 방송사에, 정확한 발음을 하지 않는 출연자들에게 그 화살이 돌아가야 할 것이 아닌가?

물론, 캡션방송이 기본으로 채택된다면 이런 논란이 발생할 이유는 없다. 미국에 살다가 온 사람들에게 얘기를 들어보면, 방송국의 캡션방송과 캡션 텔레비전 수신기의 생산이 의무화되어 있어 어디서고 원하면 캡션기능을 사용해 텔레비전 시청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유달리 소수민족이 많은 미국의 특성상 영어청취가 불가능한 사람이 많고, 노인의 사회적 영향력이 센 데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어쨌든 노인이나 외국인, 기능적 청각장애인을 포함한 영어청취 불가능자도 캡션 텔레비전 시청을 통해 정보로부터 소외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상상해 보라. 갱영화에나 나올 법한 스탠드바에서 사람들이 음료수를 마시면서 텔레비전을 시청하고 있다. 거기에 한 동양인 남자가 들어왔다. 그는 더듬거리는 영어로 음료수를 주문한 후 바텐더에게 손가락으로 텔레비전을 가리키며 '캡션 플리즈'라고 말한다. 바텐더는 즉시 텔레비전의 스위치를 눌러 캡션기능을 작동한다. 옆 사람이 텔레비전을 보고 웃을 때, 그 동양인도 같이 웃고 있다.

정보복지라는 말이 나온 지 이미 오래 되었다. 정보력이 그 어떤 힘보다 중시되는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다. 장애인들이 평등하게 살 권리가 있다는 주장에 동의한다면, 정보의 평등부터 실현시키는 것이 당연지사다. 정보의 평등이 실현되지 않는다면, 최저 평등기준인 기회의 평등의 조건조차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사회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해야 할 것이다. 복지의 실현은 평등의 추구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다시 방송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청각장애인을 위한 캡션방송이나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방송이 우리나라에서 얼른 실현되기 어려운 이유는 방송사의 수익성 문제에 다름아니다. 예산운용의 비효율성으로 국내의 거대방송사들조차 큰 이윤을 내고 있지 못하고, 방송내용도 일정과 비용에 딸려 졸속 제작되고 있는 실정에서 이런 서비스는 요원할 수밖에 없다.

방송을 떼돈 버는 장사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긴 하지만, 케이블 텔레비전 프로그램 공급자(PP)에 참여했던 초기의 기업들이 큰 손해를 본 것을 떠올리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문제는 결코 방송시장이 작아서가 아니다. 우리나라 사정에 맞는 아이템의 개발과 고답적인 방송운영진의 구조개혁에 대한 마인드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서 방송 프로그램의 제작조건은, 외국의 방송 프로듀서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의 열악한 환경이라고 하니,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기에 급급한 사정에 다름 아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군다나 기업형 민영방송사의 등장으로 방송의 공개념은 점차 약화되어 가고 있으므로, 뭔가 확실한 수가 나오기 전에는 방송의 제자리 찾기가 멀어져만 간다는 느낌이다.

현재 사회복지 서비스 체계 안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신조어이긴 하지만, 정보복지야말로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각각의 복지 서비스가 사회 전반적인 체제와 엇물려 있듯, 방송체계의 구조개편을 이루고 방송정책의 확고한 정비가 선행되지 않는 한, 방송을 통한 정보복지는 먼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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