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도 저들처럼 마냥 즐겁던 날이 있었지

설날, 동네 골목길에서 만난 유쾌한 아이들

등록 2002.02.15 14:55수정 2002.02.15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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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명절이 마냥 좋기만 합니다. 이젠 결혼도 하고, 조금 철이 들어서인지 저는 명절이 두렵기까지 하지만, 아이들 표정엔 즐거움이 가득합니다. 세뱃돈으로 요즘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탑 블레이드 팽이'도 사고, 맛있는 과자도 먹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4일 동안의 휴일이 계속되니, 학교 갈 걱정없이 뛰어 놀아도 좋습니다.


놀이 공간이 부족한(그나마 진주는 나은 편이지요) 도시의 골목길에서도 아이들은 친구들과 어울리느라 한가할 틈이 없습니다. 명절엔 아이들이 더 바쁩니다. 이곳 저곳 세배도 다녀야 하고, 한동안 얼굴을 보지 못했던 사촌들과 한바탕 장난도 쳐야 합니다.

어렸을 때는 추석과 설이면 어머니께서 시장에 데리고 가서 새 옷 새 운동화를 사주셨습니다. 그땐 '나이키'니 '리복'이니 그런 건 있는 줄도 몰랐죠. '아티스', '프로 월드컵' 운동화가 최고였고, 윗도리 아랫도리가 모두 있는 운동복이나 모자 달린 점퍼가 가장 멋진 설빔이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언제 장에 데려 가려나 며칠 전부터 마음이 들떠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목욕탕에 가서 연례행사처럼 한참동안 묵혔던 때도 밀었습니다. 흙에 뒹굴며 뛰어놀던 촌아이라 '까마귀 할배' 저리가라 할 정도로 지저분했기 때문에 목욕탕에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모습은 '변신' 그 자체였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설 연휴가 끝나기 전에 원상태로 돌아갔지만, 목욕탕 거울에 반짝반짝 빛(?)이 나는 내 모습을 비춰보며 행복해 했던 기억도 납니다.

세월이 훌쩍 흘러 어느 새 명절이 되면 고향 가는 차편을 어떻게 구할까, 부모님 용돈은 얼마나 드려야 할까 걱정해야 하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항상 받아쓰기만 하다가 이제 조카들의 용돈도 얼마씩 주어야 할까 고민하는 것도 예삿일이 아니더군요. 그리고 고생하는 아내의 눈치도 살펴야 하구요. 이런 저런 이유로 명절은 어른이 되었다는 걸 실감할 수 있는 날입니다.

골목길에 들어서는 순간 만났던 아이들의 표정을 보며 예전 즐거웠던 설날의 기억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설날을 손꼽아 기다렸던 아이들의 마음을 사진으로 담는 것도 저에겐 의미 있는 일이었습니다.


"아저씨,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안녕"하며 동생과 함께 제 앞을 뛰어가던 아이의 모습을 보며 언제부터 명절이 부담으로 다가왔는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참 이상한 것이 어릴 적 명절의 즐거웠던 일이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데, 언제부터 그 즐거움이 사라졌는지는 알 수가 없더군요. '명절이란 그 기억조차도 즐거움으로 가득한 것이군.' 나름대로 결론을 내려보았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벌써 내년 설이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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