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제 경선불복, 대선 '아킬레스건'

민주당의 경선 불복 논란을 보며

등록 2002.02.22 15:55수정 2002.02.22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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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 총재의 두 아들은 군대에 갔다 오지 않았다."

이 문장의 내용은 비방일까? 아니면 비난일까? 정답은 무얼까? 혹자는 비방이라고 하고, 혹자는 비난이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정답은 둘 다 아니다. 정답은 '앞 문장은 사실이다'는 것이다. 즉 가치판단의 문제 이전에 이 문장은 사실명제인 것이다.

지난 97넌 대선 때 민주당은 상대당 후보인 이회창 총재 아들의 병역문제를 집중 공격했다. 병역에 관한 특별한 감정을 지닌 많은 유권자들은 이 총재에게서 등을 돌렸다. 1위를 달리던 이 총재의 지지도가 급락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유학 가 있던 이 총재의 아들이 귀국해 기자회견을 갖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으나 대세는 이미 기울어져 있었다.

민주당이 집권하는 데 이 총재 아들의 병역문제를 끄집어내어 집중 공격한 점이 먹혀들었다는 사실은 그 누구도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민주당에 불거진 이인제 경선 불복 논란

5년이 지났다. 민주당이 국민예비경선제를 도입하면서 22일부터 국민경선에 돌입했다. 그러나 이날 민주당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 14일 제주도에서 이인제 고문을 비방했다는 이유를 들어 노무현 고문을 '주의' 조치했다.

당시 언론에 보도된 노 고문의 발언내용을 보자.

"민주당 후보는 적어도 경선 불복으로 국민으로부터 손가락질은 받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노 고문은 22일 오후 논평을 통해 "제주발언은 특정인에 대한 비방이 아니라, 대선 승리를 위해 당 후보가 갖춰야 될 기본요건과 기준을 제시한 것으로서 당의 정통성과 정체성에 관련된 본질적인 문제제기이다"고 맞섰다.

노 고문은 "비판과 비방은 구분돼야 한다"며 "명백한 사실에 근거한 정치적 견해 표명은 건전한 비판으로써, 활기찬 국민 경선을 위해서 오히려 장려돼야 한다"고 반박했다.


노 고문은 비판이라고 주장하는데, 당 선관위는 비방으로 판정했다. 과연 어느 쪽이 맞는 걸까?

앞서 이회창 총재의 사례에 이어 두 가지 사례만 더 들어보겠다.

사례1. 월간조선 2001년 6월호 '이인제 "경선에 불복, 탈당할 것"'

이인제 고문은 지난 97년 신한국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패한 뒤, 탈당해 국민신당을 결성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 이는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다. 이건 비방도, 비난도 아닌 사실이다. 월간조선 2001년 6월호 '한국인의 이인제관'의 기사를 보자.

아킬레스건-떨쳐지지 않는 경선 불복의 꼬리표 / 라이벌보다 더 많은 李 최고위원 비토세력

「李仁濟 최고위원이 민주당 경선에서 패배하여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지 못할 경우, 어떻게 할 것으로 보는가」를 물었다. 그 결과 「경선 결과를 받아들일 것」이라는 응답은 20.8%에 불과했다. 반면 「경선에 불복하고 탈당해 독자적으로 출마할 것」이라는 반응은 무려 72.5%로 3배 이상 많았다. 지난 大選에서 李최고위원이 보인 행보에 대한 학습결과로 해석된다.

민주당 지지자들조차도 「경선에 불복, 탈당할 것」이라는 응답이 66.8%로 「경선결과를 받아들 일 것」 (26.5%) 쪽보다 훨씬 많았다. 경선불복의 꼬리표가 계속해서 붙어다니고 있는 것이다. 지난 大選에서 李仁濟 후보에게 투표했던 유권자들도 대다수(75.4%)가 「경선불복, 탈당할 것」이라는 예상했다. 민주당 지지자들 보다도 10%포인트 가량 더 많은 수치다. 李仁濟 최고위원을 지지하는 상당수의 유권자들은 민주당의 경선 결과에 상관없이 李최고위원의 출마를 기정사실화하고 싶은 것이다. 어쨌든 일반 유권자들이 李최고위원에 대해 경선불복의 이미지를 여전히 강하게 갖고 있다는 점은 李최고위원으로서는 불식시켜야 할 최대 과제로 보인다.

이런 예상은 李최고위원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와 직결되고 있다. 그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그 첫 번째 이유로 「탈당·당적 변경·철새 이미지」(18.2%)를 꼽았다. 다시 말해 그는 지난 선거 때 그를 지지했었거나, 현재 그를 지지하고 있는 유권자들 대부분에게 경선과 관련해서는 신뢰받을 수 있는 이미지를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李會昌 총재의 최대 아킬레스건이 「집권하면 정치보복을 할 것이다」라는 이미지라면, 李최고위원의 경우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라면 약속이나 룰 따위는 버릴 수 있는 인물」이라는 평가이다.(이하 생략)

<출처 : http://monthly.chosun.com/html/200105/200105310012_3.html>

이 기사를 보면 당시 여론조사결과, 72.5%가 "이인제 고문이 黨內 경선에 져도 불복, 탈당한 뒤 출마할 것"이라고 답했다. 월간 조선은 "李仁濟의 최대과제는 「競選不服→脫黨」이미지 불식하고, 투표율 높은 40代 이상층의 지지 확보하는 것"이라고 친절하게도 이 고문에 대한 조언까지 해줬다.

이 고문의 경선 불복은 사실이다. 아울러 민주당 지지자조차도 이 고문이 이번 민주당 경선에서도 경선 불복, 탈당, 독자출마 가능성을 66.8%로 보고 있다. 또한 "지난 선거 때 그를 지지했거나, 현재 그를 지지하고 있는 유권자들 대부분에게 경선과 관련해서는 신뢰받을 수 있는 이미지를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 이 고문에 대한 유권자의 생각이다.

그러나 이 고문은 한번도 자신의 경선 불복 사실에 대해 시인하고, 사과하지 않았다. 국민의 70%가 이 고문의 경선 불복 사실을 문제삼고 있는 데도 말이다.

그렇다면 월간조선의 기사에 나타난 유권자 여론조사에 비춰보면 노 고문의 제주발언 "민주당 후보는 적어도 경선 불복 국민으로부터 손가락질은 받지 않아야 한다"은 사실에 근거한 가치판단의 명제로 해석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비방도 비난도 아닌 사실에 기초한 명제일 뿐이다.

사례 2. 민주당 한광옥 대표의 특별기자회견 - "야당 총재 의혹 말할 수 없는가?

22일 한광옥 민주당 대표는 특별기자회견을 열어 지난 18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발생한 한나라당 의원의 민주당 의원 발언제지 사건을 강하게 비판했다.

한 대표는 "우리 당의 의원이 국회본회의에서 발언하는 도중에 한나라당 의원들이 몰려나와 대정부 질문중인 국회의원을 밀어내고, 원고를 빼앗는 해괴한 사건이 벌어졌다"며 "이번 의사당 폭력이 바로,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의 가족 문제를 거론하는 중에 일어났다"고 말했다.

한 대표는 이어 "이는 국민 모독입니다. 원내 제1당의 오만입니다. 의회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입니다"라며 "국회의원이 국회에서, 야당 총재 가족의 의혹조차 말할 수 없는 나라입니까? 언제부터 야당 총재와 가족이 '성역'이 되었습니까?"고 한나라당을 성토했다.

굳이 한 대표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정치인이 정치인에 대해 비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정치인에게서 비판, 논평, 지지, 타협 등을 빼면 무엇이 남겠는가?

상대당 총재에 대해서는 "부친의 친일의혹, 아들의 주가조작 의혹"등을 거론하며 국회에서 비방해도 되고, 자당에서 진행중인 경선과 관련, 후보자간의 자유로운 논의와 비판을 차단한다. 어딘가 말이 안 되는 논리 아닌가?

이인제 경선불복 대선 아킬레스건 될 것

민주당은 이번 노 고문 주의 조치에 대해 벌써부터 일부 유권자들 사이에서 "민주당 선관위가 특정후보를 지원하기 위한 판정을 내린 게 아니냐"는 논란이 불거지고 있음을 주지해야 할 것이다.

10명중 7명에 달하는 국민이 이 고문의 경선 불복 사실을 지적하고 있으며 그것이 문제될 것임을 알고 있다. 따라서 민주당은 이 고문의 경선 불복 사실을 덮어두려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유권자 앞에 내놓고 공개적으로 이 문제에 대해 검증을 받아야 할 것이다.

이 고문 역시 경선 불복 문제에 대해서 감추고 덮으려고 할 일이 아니라, 국민 앞에 솔직하게 드러내놓고, 사과할 것은 사과하는 책임 있는 정치인의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본선에 나가 더 큰 문제에 부딪치기 전에 이 문제를 말끔히 해소해 민주당 지지자들과 국민에게 신뢰를 줘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민주당은 이 고문이 대선 주자가 되더라도 결코 본선에서 '경선 불복'의 아킬레스건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더욱이 상대당의 후보는 97년 이 고문을 누르고 본선에 나선 이회창 총재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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