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에 다시 읽는 동물농장

<서평> 조지 오웰의 '동물 농장'

등록 2002.02.24 20:36수정 2002.02.24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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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열심히 일하자", "나폴레옹 동지는 항상 옳다"는 동물 농장의 묘한 신화로서 자리매김한다. 그 어느 동물 구성원도 이 두가지 원칙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으며, 더불어 나폴레옹이 제시하는 이상적인 미래상의 도래에 물음표를 찍을 수 없다.

묵묵히 그들의 조작된 신념에 의해 노동의 세월을 보내온 복서의 비참한 죽음은 아름다운 미화와 신화의 영상으로 채색되었고, 그것은 본받아야할 사회의 원형이 되었다. 그러나 진정 동물 농장의 구성원들은 복서의 삶의 구체적인 모습을 알지 못했다.


꽤 오래전 조지오웰의 동물농장을 접했을 때, 이 소설보다 뒤에 달린 평을 더 흥미롭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마르크스의 이상향은 피폐했고, 정작 그 열매를 딴 이는 따로 있지만 결국 그들은 독재 국가를 건설했고, 인민을 착취하고 있으며, 이 수단으로서 노동 신화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그리고 이를 날카롭게 비판한 조지 오웰의 반공 사상(?)을 예찬하는 평이었다.

어차피 당시에는 그러한 정치체제의 우월성에 관한 내용이 웬만한 책 주석이면 으레 따라붙던 시절이었다. 우리가 러시아나 중국을 그나마 덜어진 편견을 지니고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 그다지 오래 된 일은 아니니까. 그리고 조지 오웰의 시각은 실제로도 날카로운 지각을 견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시대는 변했다. 조지 오웰의 작품을 읽는 사람들의 머릿 속의 사유 방식도 조금은 변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을 해석하는 방식도 조금은 변화를 가미해봄직 하다.

그러나 우리들 사이에는 아직도 복서의 신화가 강하게 자리잡고 있다.

"더 열심히 일하자", "나폴레옹 동지는 항상 옳다" 이러한 근면과 신뢰 그리고 충성의 신화는 언론 매체에 의해 더욱 강화되고 신념화 된다. 대중매체에서는 잘못된 교육 구조를 비판하는 것보다는 어려운 환경에서 성공한 이들의 이야기를 일반적인 것처럼 제시함으로써, 실제로 문제의 본질을 잘못된 교육 구조보다는 개인의 문제로 돌려 버린다.


TV 브라운관 속에 제시되는 성공한 이들의 이야기는 부의 분배의 문제가 사회적 구조가 아닌 전적으로 개인의 노력에 달린 것처럼 들리게 해 버린다. 진정 언론에서 노래하는 것처럼 저 한강물의 오염이 전적으로 개인 가정에서 쓰는 세제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라고 믿어야만 하는가 ?

이 시대는 정말 너무나 착하고 순박한 사람들을 양산해낸다. 동물농장의 복서처럼 열심히 일하고 나라에 순종하는 그런 이들이 사회의 이상향이 되어 버렸다. 사회적 문화의 코드의 핵심도 점차 사회적 구조의 본질이 아닌 개인의 차원으로 변화해 가고 있다.


더욱 큰 문제는 우리 사이에, 사회 구조의 변화를 꾀하는 이들에 대한 공격적인 논리가 자생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기존 사회에서 특별한 수혜를 얻지 못하는 존재일수록, 때로는 더욱 보수적이고, 변화에 대해 더욱 공격적일 수 있다는 기묘한 현상이 동물농장이라는 정치적 우화속에 담겨 있다. 그러한 이해하지 못할 논리가, 당연한 현상으로, 이해하기 쉽게 서술되어 있기에 이 책은 재미있고 흥미롭다. 고전이지만 또한 읽을 때마다 새롭다.

그래서 동물농장은 다시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왜 나폴레옹이 있어서는 안될 존재이며, 착하기만 한 복서가 비참한 결말을 맞이해야만 했는지, <신화만들기>에 전념하는 스퀄리는 어떤 존재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때가 아닌가 싶다.

동물농장

조지 오웰 지음, 도정일 옮김,
민음사,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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