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피 학교와 위장 전입자

등록 2002.03.11 10:18수정 2002.03.11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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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교육개혁의 대상이란 명분 아래 교단을 떠나는 교사들로 인해 교육이 몸살을 앓는가 싶더니, 최근 들어서는 특정지역의 학교배정을 기피하려는 학생과 학부모들로 교육현장이 또 한번 소용돌이치고 있다.

경기도교육청의 평준화 지역 전산프로그램 오류로 인한 재배정 사태와 서울시 교육청에서 특정지역으로의 전학 과열양상이 팽배한 가운데, 신청접수 첫날부터 떼지어 몰려든 학부모들로 북새통을 이루어 대입 원서 접수창구를 방불케 하였다.

선착순 접수 때문에 학부모들은 어쩔 수 없이 노숙자 신세를 감수해야 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으니, 상황을 이렇게 몰고 갈 수밖에 없었던 교육당국이나 특정 학군에 전학시키려는 학부모들의 편협된 교육열의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우리 교육 현장만의 진풍경(?)이 아닐 수 없다.

맹모삼천(孟母三遷)은 우리의 교육현실과 흡사하다. 맹자(孟子)를 교육시키려고 공동묘지와 시장, 학교 근처로 세 번씩이나 이사를 다닌 맹모의 일화는 자녀를 위한 교육환경의 중요성을 새삼 강조한 것이다. 이를 입증하듯, 특정학교가 주변 부동산 가격 형성의 주요변수로 작용할 정도이니 이쯤 되면 학교선택에 대한 학부모의 열성을 가히 짐작할 수 있다.

물론 더 좋은 학교에 자녀를 보내고 싶은 부모의 심정에는 공감하지만, 그렇다고 위장전입마저 감수하겠다는 무모함을 생각한다면 자녀교육에 미칠 부정적 영향에 대하여 다시 한번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부모등쌀에 못 이겨 전학은 했지만 가슴 졸이며 학습에 임해야 하는 아이들의 심리적 불안감과 이에 따른 자신감 결여의 행동을 거듭하다 보면 급기야 학생들을, 내면에 자리잡은 양심의 소리를 못들은 척 외면하는 도덕불감증 환자로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작금의 교육세태를 '대입삼천(大入三遷)'이라 빗대어 말한다면, 명문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서 최소한 세 번은 옮겨 다녀야하므로 초등학교 입학을 시작으로 입시열풍에 가속도를 붙이게 된다.


평준화 속의 명문 중학교 배정을 위해 위장전입을 위한 2차 시도를 거쳐, 특정지역 고등학교를 진학해야 명문대학에 입학할 수 있다는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학부모가 대한민국에 과연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기피학교의 원인도 교육여건개선 추진에 따른 학급당 정원 35명에 억지로 짜맞추다 보니 근거리 통학 배정 원칙을 벗어나 학교가 집에서 멀다는 것이 일차적 기피 사유라고 한다. 하지만, 그 이면에 숨겨진 또 다른 이유를 재고해볼 필요도 있다.


각 고등학교별 명문대 진학률을 따져보지 않는 교사나 학부모, 학생이 어디 있단 말인가. 실례로, 서울에서 천리길인 경남지역의 모 고등학교에 전학을 하려는 희망자들이 몰려든 적이 있었다. 통학이 불가능하니, 기숙사 생활을 자처하며 서울에서 지방으로 전학하려는 것은 특정지역의 학교로써 명문대학 진학률이 높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기피' 학교라는 별칭을 쓸 수도 없지만, 선호도가 낮은 학교에 우수교사를 배정해주겠다는 교육당국자의 약속은 교육붕괴를 공조하는 난센스가 아닐 수 없다. 그런 논리라면 기존에 배치된 교사는 우수 교사 이하이며, 그 학교에 다니고 있는 학생과 학부모는 당연히 기피 대상이란 말인가.

말도 안 될 소리이다. 결국 기피학교를 명문학교로 탈바꿈하기 위해서는 인성교육, 열린교육, 창의적 수업을 그만두고, 교육과정 자체를 입시위주의 스파르타식 교육방법으로 선회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특정학교를 선호하는 현상이 지속될수록, 기존학교를 기피하는 학교 교육의 불신은 교육의 황폐화와 입시위주 형태의 악순환만 거듭될 것은 당연한 일이다.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는 말처럼, 학부모의 편협한 사고의 여파로, 학생 스스로가 특정학교를 기피하는 일이나, 위장 전입자로 낙인찍혀 수모를 겪는 불행한 일은 없어야 한다.

7차 교육과정이 시행된 만큼, 보다 창의적인 사고와 개성을 추구하여 자신의 적성에 맞는 진로를 개척하는 학생위주의 교육형태가 정착되도록 학생을 온전히 학교교육에 맡길 수 있는 학부모의 용기가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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