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월 셋째 날, 어제의 입학식도 끝나고 첫 수업을 하는 날이다. 아침 조회를 위해 교실로 들어가며 나는 새삼 옷깃을 추스려 본다. 손가락으로 머리도 슬슬 빗어 넘긴다. 바람에 날려 마구 헝클어진 머리가 아무리 빗어도 제 자리를 잡지 못한다.
자리를 잡지 못하는 게 어디 머리카락뿐이랴. 십 년이 넘는 교직생활이지만 새로 담임을 맡게 되는 학기초마다 나는 마음을 둘 데 없어 당황스럽다. 초임 시절에야 학교도 낯설고 아이들도 낯설어 그랬다 쳐도 십 년이 넘은 지금까지 그런 마음인 것은 교직이 내 적성에 맞지 않은 탓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자 갑자기 엄지발가락이 시려온다. 겨울 바람보다 삼월 바람이 더 맵다더니, 건물과 건물을 연결하는 통로를 지나가는 바람에 날이 선 것 같다. 슬리퍼 앞으로 삐져 나온 발가락이 양말에 덮여 있어도 시려운 것은 마음 때문일까, 아니면 정말 바람 때문일까?
잘 열리지 않는 문을 억지로 밀며 나는 또 짜증이 난다.
이놈의 문짝은 작년부터 고쳐달라고 난리를 쳐도 요지부동이란다. 작년에 이 교실 담임이었던 문 선생 말에 따르면, 수리 요청 칠판에 적어놓아도, 서무실에 달려가 직접 떠들어도 나 몰라라 팽개쳐두더니, 학년이 바뀌고, 아이들이 새로 들어와도 마찬가지란다.
문을 밀자, 삐이익 하는 소리와 드르륵 하는 소리가 뒤섞여 난다. 억지로 미니 삐익 소리가 나고, 이제 나 열립니다 하는 뜻인지 드르륵 문이 밀리는 것이다.
모든 것이 작년과 같은 게 학교인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바뀌지만, 입학식부터 종업식까지, 그 사이 사이에 촘촘히 박혀 있는 온갖 학교 행사와 일정들이 해마다 변함없이 이루어지는 곳, 그리고 그 행사와 일정 속에 묻혀 있는 선생들도 다른 표정인 것처럼 아이들을 만나지만, 실은 작년 이맘때 짓던 그 표정 그대로인 나라.
그래서일까, 교직 오 년이 넘어가면서 나는 때때로 아이들에게 화난 표정을 짓다가 '아, 작년 이 무렵에도 이런 일로 아이들에게 화를 낸 것 같은데...' 하는 멋적은 느낌이 종종 들곤 했다.
그래도 올 담임은 좀 색다르다. 중학교 일 학년 담임은 처음 해보기 때문이다. 그 동안 거친 두 학교에서는 우연히 비담임이거나 2,3학년만 맡았다. 그러다 올 해 발령 받은 이 학교에서 처음 맡게 된 일 학년 담임이 아닌가. 아이들은 다 같다고 하지만, 중학교 일 학년과 고등학생과의 차이는 그야말로 하늘과 땅, 구름과 진흙이다.
어제 입학식 날, 우리 반 아이들은 아직 솜털이 보송보송하고 얼굴에 애 티가 자르르 흐르고 있었다. 우리 반만 그런가 하고 다른 반을 둘러보니 마찬가지였다. 저 녀석들이 중학생이 맞긴 맞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 고개를 갸우뚱해 하다 기어코 옆 반 담임인 문 선생에게 입내를 내고 말았었다.
"쟤들 정말 중학생 맞아요?"
"중학교 일 학년은 초등학교 육 학년 보다 더 어려요. 초등학교 육 학년은 최고 학년이지만, 중학교 일 학년은 가장 어린 학년이거든요."
그 말을 되새기며 나는 경험이 진리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이 의외로 쥐 죽은 듯 자리에 앉아 있다. 첫날이라서 그런 것이리라. 저런 아이들이 며칠만 지나면 책상 위를 날아다니고, 복도를 휘저을테고, 창문을 넘어 정원으로 내달리기도 할 게다. 한참 혈기왕성할 아이들을 이 좁은 교실, 엉덩이를 겨우 걸칠 만한 의자에 하루 종일 묶어두는 학교가 정말 아이들을 가르치는 곳일까?
요즘 들어 자꾸 머릿속에 잡생각이, 순간순간마다 밀려든다는 느낌이 퍼뜩 든다. 나는 머리를 몇 번 흔들어 보고는 오늘의 전달 사항을 주워섬긴다.
오늘 5, 6교시는 학교 소개가 있고, 가정 환경 조사서를 내일까지 내야하고, 학생증과 생활기록부에 붙일 사진을 찍어야 하고..... 학기초라 그런지 전달 사항이 많기도 하다. 전달 끝에 나는 슬쩍 내가 하고 싶은 말도 한마디 덧붙인다.
"너희들은 이제 중학생이다. 초등학생이 아니야. 그러니 수업 시간에는 중학생답게 열심히 듣고, 생활 태도도 바르게 해야 한다. 특히 수업 시간에 선생님들의 설명을 잘 듣는 것이 공부에 아주 큰 도움이 되니 열심히 집중해서 듣도록. 알았지?"
아이들이 참새처럼 입을 벌리고 일제히 대답한다.
"예."
"그리고... "
내가 몇 마디 덧붙이려고 하는데 갑자기 일 교시 시작종이 길게 울린다.
"딩동뎅동, 딩동뎅동"
그 바람에 나는 얼른 마무리를 하고 만다.
"더 할 말이 있는데 그건 이따 종례 시간에 하자. 이상."
교무수첩과 출석부를 챙기고, 막 걸음을 옮기는데 한 아이가 번쩍 손을 든다.
"선생님."
아이들의 시선이 다 그 아이에게 집중된다.
"왜?"
나도 의아한 시선으로 그 아이를 바라본다.
앳된 얼굴에 양 볼에 살이 도톰한, 똘똘하고 귀염성 있게 보이는 그 아이가 아직 변성기도 지나지 않은 새된 소리를 낸다.
"저, 종례가 뭐예요?"
"뭐어?"
종례가 뭔지도 모르는 아이가 있나? 의아한 표정으로 아이들을 둘러본다. 그런데 아이들이 모두 진지하다.
나는 갑자기 멍해진다.
"너희들도 모두 종례가 뭔지 모르니?"
알고 있는 듯, 피식 웃는 녀석들도 몇 있지만, 대개가 모른다는 얼굴이다.
"예에."
미적미적 대답하는 녀석도 있다.
"종례는 수업 다 끝나고 담임이 들어와서 알려줄 것은 알려주고, 청소 당번도 정해주고...."
설명을 하다 나는 그만 답답해진다.
"하여튼 이따 수업 다 끝나고 교실에 있는 거다. 알았지?"
아이들은 알아들었는지, 아니면 의례적인 대답인지 다시 목소리를 길게 뺀다.
"예에."
교실을 나서 교무실을 향해 느릿느릿 걸어 내려오며 나는 곰곰 생각해 본다. 종례를 모른다고? 그럴 수도 있겠다. 초등학교에서야 담임이 하루 종일 수업하고, 마지막 시간에 전달할 것 전달하면 되니 종례라는 말이 굳이 필요 없을 지도 모르겠군. 이제 중학교에 들어와 과목마다 선생이 달라지고, 담임이야 겨우 제 수업시간에만 들어오고, 그러니 종례도 따로 해야 되고.... 시간마다 바뀌는 선생이 얼마나 낯설까? 새로 배우는 과목도 그럴테고, 말마다 중학생이라는 꼬리표로 아이들을 얽매는 규율과 제도도 그럴테고...
종례도 모르던 아이들이 이제 한 달만 지나면 중학교의 전부를 알아버릴 게다. 머리를 짧게 깎지 않으면 몽둥이 찜질을 당하고, 수업 시간에 마구 떠들어도 안 되고, 이것은 하면 안 되고, 저것도 하면 안 되고, 교칙에 규칙에 온갖 통제와 억압을 알아가고, 눈치를 살피고, 그러면서 대한민국의 중학생으로 길들여지는 아이들. 그 아이들이 까짓 것 오늘 하루쯤 종례가 뭔지 모르면 어떠랴.
나는 새삼 아까 '종례가 뭐예요' 하며 진지하게 묻던 아이의 해맑은 얼굴을 떠올리고, 첫 일 학년 담임인 한 해가 생각보다는 훨씬 재미있을 지도 모르겠다는 예감으로 슬리퍼를 좍좍 끌며 교무실로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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