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아침에 출근하여 업무를 시작하려는 시간이었다. 전화기 벨이 울려 수화기를 들었다.
"오래 살다 보니 별일 다 본다, 갑갑해서 전화했다"는 약간은 상기된 친구의 목소리가 울려 나왔다.
"무슨 일인가? 자세히 얘기해야 답답함을 풀어 줄 것이 아닌가?"라고 응수했다.
친구의 대답이 좀 엉뚱했다.
"발렌타인 30년산 술값이 얼마나 하는가? 술집에서 말일세. 자네는 사람 사귀는 폭이 넓고 접대도 많이 주고 받을 터이니 술값을 잘 알 것 아닌가?"
"글쎄? 나도 두어번 맛은 보았지만, 술값은 정확히 모르겠는데? 알아 보고서 연락하지" 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이다. 발렌타인 30년산이라면 아무데서나 흔히 마실 수 있는 술이 아니라고 알기 때문이다. 술값을 알만한 친구들에게 물어 보았다. 대부분 모른다는 얘기였다. 그중 친교 범위가 넓은 편인 한 친구가 그럴듯한 얘기를 들려 주었다.
"지난 설날 친구 집에서 발렌타인 30년산을 처음으로 한잔 얻어 마셨다. 태국 출장때 방콕 공항 면세점에서 240달러 주었다고 하였다. 240달러면 우리 돈으로 30만 원 정도가 된다. 국내에 들여 와 세금을 내고 백화점 등에서 판다면 50만 원 정도는 받을 것이다. 고급 술집에서 판다면 적어도 100만 원 정도는 주어야 맛볼 수 있을 것이다"라는 얘기였다.
친구에게 전화하였다.
"술집에 따라 편차는 있겠지만, 단란주점 등에서 마시면 1병에 100만 원 정도는 지불해야 할 것이다"라고 귀뜸하였다.
그 친구 말이 의외였다. "그럼 안심이다. 나는 바가지 쓰고 바보 취급받은 것 아닌가 걱정하였다"라고 안도하였다.
"바가지는 아니니 걱정하지 말라" 하면서 "도대체 무슨 일이냐? 누가 선물이라도 주었는가? 같이 나누어 마시자" 농담하였다.
"그랬으면 얼마나 행복하겠냐?" 하면서 털어 놓은 친구의 사연은 이러했다.
지난 밤 곤하게 잠들어 있었다. 그 때에 전화벨이 울렸다. 잠결에 전화를 받은 아내의 목소리에 선잠을 깨어 신경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초저녁에 "친구와 어울려 늦을 터이니 일찍 주무시라"고 전화한 아들에게서 온 전화였다.
전화를 놓은 아내가 "어쩔까요? 아버지 모르게 처리해 달라는데..."라고 말한다. "불부터 켜요. 무슨 일인데..." 라고 말하곤 벽시계를 보니 새벽 2시를 막 넘고 있었다.
"친구와 술을 마셨는데 술값이 없어 잡혀 있으니 돈 가지고 와서 해결해 달라네요. 여자 혼자서 한 밤에 술집이 어디인줄 알고 어떻게 가요? 당신이 처리 좀 해요."
그리하여 아내와 함께 얘기된 술집으로 갔다. 술집 문앞에는 아들과 술집 종업원인듯한 젊은이가 서 있었다. 안내를 받아 문을 열고 들어서니 손님은 아무도 없고 종업원과 마담 등 3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실내 분위기는 운동화에 청바지 차림의 아들에게는 어울리지 않았다. 술집 바닥에 완전히 인사불성인 상태로 퍼져 있는 아들의 친구는 깔끔하게 양복을 차려입고 구두를 신은 상태였다.
아들에게는 술 기운이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학교에서 늦게 집으로 돌아오다가 길에서 우연히 술에 취한 친구를 만났고 함께 어울려 술집에 들어가게 되었더란다.
종업원들과 아들로 부터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들과 친구 둘이 어울려 11시경 들어 왔단다. 어디서 술을 마셨는지 만취 상태의 아들 친구가 "이 집에서 가장 비싼 술 가져 오라"고 큰소리치며 주문을 하였단다.
종업원은 발렌타인 30년산 1병을 안주와 함께 갖다 주었다. 그리고 세사람이 둘러 앉아 주거니 받거니 모두 비웠다. 그 동안에 한 친구는 슬그머니 나가버리고 술을 주문한 친구는 만취 상태로 쓰러지고..., 12시가 넘으면서 아들이 덜 취한 상태였기에 술값을 계산하려고 하였더란다.
계산서를 받아 보니 술 1병이 100만원으로 적혀 있어 시비가 되었다.
"술값은 거짓이 없으므로 그대로 지불하라는 주문을 뒤집을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어 집으로 전화하였다"는게 아들의 사연이었다.
친구는 무엇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안주값까지 포함하여 106만원을 카드로 결제하고 나왔단다. 이왕 마신 술이라면 우선 술값을 갚고 볼 수밖에 없었더란다.
군대까지 갔다 와서 복학한 처지여서 철없다고 할 수 없으나 세상 물정을 너무 모른 아들이 안타깝더란다. 턱없이 비싼 술을 주문한 아들 친구, 그리고 주문한대로 100만원 짜리 술을 갖다 준 술집 종업원도 얄밉더란다.
"정말 술 한병에 100만 원 제대로 주었는가?" 자신이 한 일에 확신이 서지 않아 선잠을 깬 터라 새벽까지 뒤척이다 아침에 직장으로 출근하자마자 곧바로 전화하였다는 뒷얘기였다.
어저께 친구로 부터 전화가 왔다. 요즘 친구 아들은 친구가 대신 갚아 준 술값을 벌기 위해 1주일에 이틀씩 학교 강의가 없는 날 일당 5만 원짜리 막일의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얘기였다.
정말 비싼 술을 마신 경험을 톡톡히 치른다는 것이다.
"발렌타인 30년산이 그렇게 비싼 술인지 정말 몰랐어요..." 친구 아들의 순진한 얘기다. 친구도 몰랐단다. 사실은 나도 몰랐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