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감옥에서 침묵의 감옥으로

보길도 편지

등록 2002.04.01 11:50수정 2002.04.04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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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부터 말은 더 이상 소통의 수단이 아니었습니다.
단절의 칼날이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날 때 입에 도끼를 물고 태어난다고 했으나
오래도록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이제 나는 그 도끼가 양날이라는 사실도 알게 됐습니다.
상대의 발등을 찍은 도끼는 반드시 돌아와 내 발등도 찍었습니다.

상처에 약이 되지 못하고 상처를 덧나게 하는 말.
추위에 온기가 되지 못하고 찬바람이 되는 말.
굶주림에 밥이 되지 못하고 허기가 되는 말.

내가 던진 말의 도끼 날에 찍힌 가슴이 얼마였던가요.
되돌아와 나의 심장을 찍은 도끼 날은 또 얼마였던가요.
말이 말이 아니게 되었을 때, 말이란 오로지 버려야 할 말일 뿐이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말을 견딜 수 없으니, 절명할 수도 없으니,
말의 감옥으로부터 탈옥이라도 해야 하는 것일까.

살아있는 동안은 감옥을 벗어날 수 없으니, 이제 나는
말의 감옥으로부터 침묵의 감옥으로 이감이라도 가야 하는 것일까.


말의 감옥에서는 짐작도 할 수 없이 많은 간수들이 감시하고, 간섭하고, 징벌하려 들지만, 침묵의 감옥을 지키는 간수는 죄수 자신일 뿐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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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자 섬 활동가입니다. 사단법인 섬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으며,<당신에게 섬><섬을 걷다><전라도 섬맛기행><바다의 황금시대 파시>저자입니다. 섬연구소 홈페이지. https://cafe.naver.com/island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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