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교감이 조회 끝에 일어나 공문을 읽는다. 보건복지부 장관의 명에 따라 오늘부터 교무실을 금연 구역으로 설정한다고, 공공 장소에서 흡연하는 것은 법에 의해 금지되며, 교무실도 공공장소이므로 당연히 금연이란다.
교감이 자리에 앉자 이번에는 교장이 일어선다.
"교무실이 오늘부터 금연구역이므로 담배를 피우는 선생님들은 많이 불편하실 겁니다. 담배는 휴게실에서 피우십시오. 휴게실까지 가기 귀찮은 선생님들은 교장실로 들어와서 피우십시오. 저도 담배를 좋아하니까 언제나 환영입니다. 단, 피울 때는 반드시 저도 한 개비는 주셔야 합니다."
교장의 마지막 말은 우스개였지만, 아무도 웃지 않는다. 말뚝이를 비롯한 몇몇 남선생들이 쉬는 시간마다 마구 담배를 피워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때로는 담배 좀 나가서 피울 수 없느냐고 볼멘 소리를 해대던 여선생들은 내심 이제부터는 지겨운 담배연기에서 해방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서 마음이 좀 편안해지는 눈치다. 그러나 말뚝이와 골초 한 선생, 이 선생은 볼멘 표정이 가득하다.
자칭 골초 대왕이라고, 마누라보다 더 좋은 건 애인이고, 애인보다 더 좋은 건 담배라며 끽연 예찬을 늘어놓기 잘하는 한 선생은 다른 사람보다 더 표정이 일그러져 있다.
교장도 한 선생 저리가라 할 만큼 골초다. 결재 때문에 교장실에 들어갈 때면 교장은 어김없이 담배를 물고 있다. 재떨이에는 꽁초가 수북한데, 하루 두어 번 사환인 김 양이 치우는 눈치지만, 교장실 재떨이가 말끔하게 비워져 있는 것을 본 적이 없을 정도다.
어느 학년 회의 때던가, 아니면 긴급히 소집한 부장 및 기획회의 때였던가, 교장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교장 되니까 참 좋아요. 교감 할 때는 교무실에 있어야 되니까, 담배 피우고 싶어도 이 사람 저 사람 눈치를 봐야 했거든요. 특히 여선생들, 참 무서웠어요. 담배를 입에 물기만 하면 '교감 선생님, 담배는 밖에서 피워주세요'하고 한마디씩 했거든요. 나 처음 교직에 나와서는 감히 어디 교감한테 그런 말을... 하긴 시대가 바뀌었으니까. 하여튼 교장 되니까 교장실이 생기지, 교장실이 있으니 내가 하루 종일 담배를 물고 있어도 뭐라고 할 사람 없지,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어요."
그 말을 들으며 나는 담배 피우기 위해 교장이 되었나 하는 생각에 쓴웃음을 지은 적이 있다. 직원 조회가 끝나고, 모두들 일 교시 수업 준비에 바쁜데 말뚝이가 남보란 듯 담배를 꺼내더니, 일부러 라이터 불을 가장 거세게 솟아오르게 하고는 담배 불을 붙인다. 그런 모양을 보던 여선생 몇이 인상을 찌푸린다. 저 봐, 또 저 똥고집이 발동했군 하는 표정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말뚝이는 담배를 길게 한 모금 빨아들이더니, 제 앞 여선생들 자리를 향해 후우 내뿜는다. 담배 연기는 몇 걸음 여선생들을 향해 몰려가다가 점점 넓게 퍼진다. 말뚝이는 두어 모금 그렇게 담배를 피우더니, 들으라는 듯 일부러 중얼거린다.
"공공장소 금연법? 웃기고 있네. 담배는 기호식품이야. 기호식품인 담배를 아무 데서나 피우지 말라고 하면, 여선생들 커피도 교무실에서 마시면 안돼. 나는 담배 냄새보다 커피 냄새가 더 싫거든."
말뚝이도 교장이 되면, 교장실이 있어 담배 피우기 좋다고 할까? 아마 십중팔구 그럴 것이다. 수업하는 선생들을 위해 어떻게 하면 도움이 될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고, 마음대로 할 수 있어 편하다는 생각을 하는 교장이 많아질수록, 그런 관리자들이 학교를 좌지우지할수록 우리 교육 현장은 더 암담해질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 교육은 부장이 되고 교감이 되고 교장이 될수록 점점 더 자기 편함만 추구하게 될까, 그런 구조가 과연 무엇일까 생각하는데, 시작종이 길게 울린다.
종소리에 맞춰 말뚝이가 뿅뿅뿅 담배 연기를 내뿜는다. 그 담배 연기가 마치 "선생들 빨리 수업 들어가시오"하며 등을 떠미는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대한민국 사람이면 대부분 삼 년을 살아야 하는 집인 중학교에 대한 이야기(소설)입니다. 이야기는 한 회분이 독립적으로 완결되지만, 전체는 같은 공간인 어느 중학교에서 이루어지게 됩니다. 나는 그 집에 조금 더 살아본 사람의 자격으로 이야기를 쓰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 다시는 그 집에 살지 않게 된 나이 든 사람들에게는 그 집에 대한 추억을 되살려주고 싶고, 아직 그 집에 살고 있는 아이들에게는 자신이 사는 집의 속내를, 그리고 그 집에서 아이들과 호흡하며 살아가는 선생님들과는 교직이라는 자리, 교육이라는 것의 의미를 돌이켜보는 자리를 마련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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