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년 동안 부른 "아버지, 어머니 영면하소서"

제주4.3항쟁 제54주년 4.3 희생자 범도민위령제 봉행

등록 2002.04.04 08:30수정 2002.04.04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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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천을 헤매시는 영령들이시여!

2002년 4월 3일입니다. 이제부터 54년전 이 땅의 크나큰 비극인 4.3항쟁으로 말미암아 억울하게 희생된 영령들을 위령하고자 이곳 거친오름 산자락 양지바른 곳에 정성으로 자리를 펴고 제단을 마련했습니다.

제주도민 모두의 이름으로 유주무주, 유명무명의 영령들을 두손모아 간절히 청하옵니다.

제주시 3878신위, 서귀포시 1262신위, 북제주군 5255신위, 남제주군 3459신위, 제주외 타지역 34신위와 무명의 신위들이시여 이제 한을 풀고 제단으로 강임하시여 흠향하옵소서"

제주사의 최대비극, 4.3항쟁이 발발한 지 54주기를 맞은 3일 제주 섬에 '4.3 진혼곡'이 울려 퍼졌다.

그동안 가슴속 깊이 묻어온 제주도민의 뼈아픈 한(恨)이 통한의 눈물이 돼어 온 섬을 물들였다. 제54주년 제주4.3항쟁 희생자범도민위령제 봉행위원회는 3일 오전 11시 제주시 봉개동 4.3평화공원 부지에서 '제54주년 제주4.3항쟁 희생자 범도민위령제'를 봉행했다.

이날 범도민위령제에는 각급 기관.단체장과 유족, 학생, 4.3관련 단체 회원, 도민 등 8000여 명이 참석해 4.3항쟁의 회오리 속에 억울하게 희생된 4.3 영령들의 넋을 기렸다.


범도민위령제는 △영혼들을 불러 모으는 초혼례(招魂禮) △국민의례 △제의 시작을 알리는 고유문(告由文) 봉독 △봉행위원장의 주제사 낭독 △제주도의회 의장 및 유족회 대표의 추도사 △추모시 '바람은 바람으로' 낭송 △제주불교합창단 '부루나'의 조가(弔歌) 합창 △내빈 헌화 및 분향 등의 순으로 1시간여에 걸쳐 진행됐다.

이날 조명철 위령제봉행집행위원장은 "이제 제주엔 깊은 계곡의 천년설이 녹 듯, 반세기 넘게 쌓였던 빙벽이 강물이 되어, 노래를 부르며 산곡을 에돌아 대해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렁찬 평화의 소리로 세계인들의 가슴에 메아리로 흐를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우근민 도지사는 주제사를 통해 "우리는 어두운 4.3을 역사의 뒤안길로 보내고 밝은 4.3을 빛의 광장에 불러들였다"며 "4.3광장에 용서와 화해와 상생의 빛이 가득 채워지고 있는만큼 이제 지난날의 상처를 보듬고 쓰다듬어 치유해 나가자"고 강조했다.

이어 김재호 제주도의회 의장은 추도사를 통해 "4.3항쟁 54주년을 계기로 제주도가 진정한 평화의 섬으로서 21세기 세계 질서에 능동적으로 편승할 수 있도록 힘과 지혜를 모으자"고 역설했다.

이성찬 제주도4.3항쟁희생자유족회장도 추도사에서 "아팠던 사람이 건강의 소중함을 알듯 박해를 당했던 사람이 인권의 소중함을 알 수 있을 것"이라며 "오늘 우리가 디디고 선 이 땅을, 평화와 상생의 훈풍을 따뜻하게 피워 올리는 터전으로 만들어 나가자"고 피력했다.

한편 우근민 지사는 이날 위령제에서 4.3 진상규명이 이뤄진 후 유족 및 도민들의 의견을 모아 △가칭 '4.3평화상'을 제정하는 것을 비롯해 △4.3기념일 제정 △4.3예술제를 범도민적 예술제로 승화.정착시키는 방안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제주 4.3항쟁

4.3특별법이 시행된 지 3년째를 맞고 있으나 올해 4월도 4.3유족들의 울분과 한은 속시원히 풀리지 않았다.

2000년에 제정된 제주4.3특별법에 따라 지난해 1월 제주4.3항쟁 진상조사보고서 작성기획단(단장 박원순 변호사)까지 공식발족됐지만 아직도 일부 보수 언론과 일부 우익단체의 이념적 공세와 덧칠은 다시 한번 위령들과 유족들에게 못을 박고 있다.

그러나 이날 위령제는 예전과는 사뭇 달랐다.

숨죽여 흐느끼는 유족들의 가슴 한 켠에는 내년 위령제 행사부터는 뭔가 달라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솟구치고 있는 것이다.

4.3특별법 시행이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4.3진상조사활동이 오는 8월 모두 마무리되고, 9월부터 내년 2월까지는 진상조사 보고서가 작성돼 그동안 지리하게 이뤄져온 4.3의 성격 및 진상 논란이 이념의 종지부를 찍을 수 있다는 기대 또한 하고 있다.

지난 3일 오전 11시 봉행된 제53주년 제주4.3사건희생자 범도민위령제 행사장에는 도내 각급 기관.단체장 및 유족, 도민등 8000여명이 운집.

특히 올해 위령제에는 도외에서 강종호 재경 제주4.3유족회장, 강실 재일본제주4.3유족회장, 정용화 5.18기념재단 상임이사, 김명진 거창사건 처리지원단장, 채의진 민간인학살 국민위원회 상임대표등도 참석해 1만3894명의 신위가 모셔져 있는 제단앞에서 4.3영령들의 넋을 위로.

위령제가 시작된 후 주제사와 추도사를 하는 도중 참석한 많은 유족들은 친지의 신위를 찾기 위해 제단앞으로 몰려들어 유족들의 애타는 심경을 그대로 표출.

유족들은 "1년에 한번 하는 행사인데 격식이 뭐 그리 중요하냐"며 저마다 신위앞에서 눈시울을 붉히자 행사관계자들은 이들을 만류하지 않고 질서를 지키도록 유도.

불편한 몸임에도 불구하고 하얀 국화꽃을 한 손에 쥐고 제단앞에 다가선 강일화 할머니(71. 북제주군 한경면)는 "친정 아버지의 신위가 어디쯤 있나 보려고 했는데, 신위가 너무 많아 찾기가 여간 힘들지 않다"며 행사관계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이성찬 제주도4.3사건희생자유족회장은 유족대표로 추도사를 하면서 "그 모진 세월을 '살암시민 살아진다'라고 서로 다독거리며 견디어 왔다"고 회고하자 유족들은 그동안 참아왔던 설움이 복받쳐 오르는듯 눈물을 글썽거려 장내는 크게 숙연.

우근민 도지사는 이날 주제사를 낭독하면서 앞으로 4.3평화상 제정등을 적극 검토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혀 주목.

우 지사는 우선 "진상규명이 이뤄진 후 제주도민과 유족회 등의 의견을 수렴해 가칭 4.3평화상을 제정하겠다"며 "이 상이 제정된다면 제주는 진정 명실상부한 평화의 섬으로, 평화의 메카로 자리잡게 될 것"이라고 강조.

우 지사는 또 "4.3기념일을 제정하고 4.3예술제를 범도민적 예술제로 승화.정착시키는 문제도 전향적으로 검토해 추진하겠다"고 약속한 후, "아울러 정부는 진상규명의 진척상황과 때를 맞추어 분명 제주도민들에게 사과표명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행사장으로 들어오는 길 한쪽에는 제주작가회의(회장 고정국) 등에서 4.3관련 시 25점을 전시해 눈길을 끌었는데, 제주작가회의 사무국장 강덕환 씨는 "그동안 4.3위령제 행사에 문화적인 요소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아 4.3관련 시를 전시해봤다"며 "반응들이 매우 좋았다"고 소개.

올해 4.3학생문예공모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김동환 군(오현고 3년)은 이날 행사에서 최우수작인 추모시 '바람은 바람으로'를 직접 낭송하며 유족들을 위로했다.

덧붙이는 글 | 바람은 바람으로 살아야 했다.

이유조차 알지 못하고 꺾여버린
수만 양민의 가냘픈 숨소리에
맺혀진 눈물 밤하늘에 새겨놓고
보고도 못본척 들어도 못들은 척
뒤돌아 앞으로 달려야만 했다.

빨갱이 섬 출신이라는
뭇 사람들의 멸시와 모욕에
억울함을 삭이지 못해 바다 앞에서 통곡하는
가여운 양민의 후손을 달래주지 못하고
다시 앞으로 달려야만 했다.

바람은 바람으로만 살아야 했다.
그것이 바람의 운명이었다.

그러나
바람은 바람으로 살 수 없었다.
모진 아픔 겪고 있는 그들을 두고
부질없이 떠날 수는 없었다.

조금 더 일찍 지켜주지 못한
자신을 책망하며
잔뜩 웅크려 떨고 있는 그들 곁으로
조심스레 다가갔다.

바위틈새에 피 붉은 진달래 피워두고
산중턱 진 누런 억새 밭을 만들어

죽어있던 그들을 다시 살게 하였다.
잊혀졌던 그들을 다시 기억하게 하였다

더 이상 바람은 바람이 아니었다.
멈춰버린 바람은
한낮 봄날의 아지랑이에 불과했다.

하지만 바람은 후회하지 않았다.
이제라서도 한 서린 영혼들을
감싸 안아줄 수 있었기에
행복의 미소지으며
동터오는 슬픔의 섬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오현고3. 김동환 작)

덧붙이는 글 바람은 바람으로 살아야 했다.

이유조차 알지 못하고 꺾여버린
수만 양민의 가냘픈 숨소리에
맺혀진 눈물 밤하늘에 새겨놓고
보고도 못본척 들어도 못들은 척
뒤돌아 앞으로 달려야만 했다.

빨갱이 섬 출신이라는
뭇 사람들의 멸시와 모욕에
억울함을 삭이지 못해 바다 앞에서 통곡하는
가여운 양민의 후손을 달래주지 못하고
다시 앞으로 달려야만 했다.

바람은 바람으로만 살아야 했다.
그것이 바람의 운명이었다.

그러나
바람은 바람으로 살 수 없었다.
모진 아픔 겪고 있는 그들을 두고
부질없이 떠날 수는 없었다.

조금 더 일찍 지켜주지 못한
자신을 책망하며
잔뜩 웅크려 떨고 있는 그들 곁으로
조심스레 다가갔다.

바위틈새에 피 붉은 진달래 피워두고
산중턱 진 누런 억새 밭을 만들어

죽어있던 그들을 다시 살게 하였다.
잊혀졌던 그들을 다시 기억하게 하였다

더 이상 바람은 바람이 아니었다.
멈춰버린 바람은
한낮 봄날의 아지랑이에 불과했다.

하지만 바람은 후회하지 않았다.
이제라서도 한 서린 영혼들을
감싸 안아줄 수 있었기에
행복의 미소지으며
동터오는 슬픔의 섬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오현고3. 김동환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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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대자(大者)는 그의 어린마음을 잃지않는 者이다' 프리랜서를 꿈꾸며 12년 동안 걸었던 언론노동자의 길. 앞으로도 변치않을 꿈, 자유로운 영혼...불혹 즈음 제2인생을 위한 방점을 찍고 제주땅에서 느릿~느릿~~. 하지만 뚜벅뚜벅 걸어가는 세 아이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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