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일 학년은 신선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한 나이다. 처음 대하는 중학교 생활이니 모든 것이 낯설어 어리숙해보이는 말썽을 자주 저지르기도 하고, 그런 만큼 신선하게 보이기도 한다.
오월, 중간고사가 시작된 첫날이다. 몇 차례 연습을 시키기도 했고, 조회시간과 종례시간마다 누누이 강조를 했지만, 일 학년 시험감독에 걸린 선생은 괜히 마음이 썩 내키지 않는 표정들이다.
"여기 답안지 여분 좀 더 줘요. 이것 갖고는 어림도 없을 거야."
"맞다. 아매도 이 학년 두 배 택은 돼얄기다."
"하모. 두 배 가꼬도 모자랄끼구마."
첫날 일 교시, 일 학년 시험감독에 배정된 선생들이 예년의 경험에 비추어 한마디씩 내뱉는다.
일 학년은 초등학교에서 컴퓨터가 채점하는 시험을 본 적이 없는 아이들이라 마킹이 틀리기 일쑤고, 그때마다 답지를 바꾸어 주느라 시험감독이 아니라 아예 답안지 교환수가 될 게 뻔하다.
나는 얼른 교무실 칠판을 훔쳐본다. 나 역시 일 학년 시험 감독에 걸리지 않기를 내심 바라고 있는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내 기대를 정면으로 비웃는 듯, 칠판 일 학년 칸에 내 약호인 맹(孟)이 진득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게 아닌가?
이거 난리 났군. 오늘 첫 시간부터 고생바가지 뒤집어쓰게 생겼군.
나는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쉰다.
그때 길게 종이 울린다. 나는 바삐 내가 들어갈 반의 꽂이함에서 시험지와 문제지를 빼들고 교무실을 나선다. 일 학년 교실로 올라가는 감독 선생 모두가 단단히 각오라도 한 표정이다. 입을 굳게 다물고, 마치 전쟁터에 나가는 병사들처럼 한 시간의 치열한 전쟁을 어떤 작전으로 견뎌낼 것인가 골몰한 얼굴이다. 그래서인지 다른 때 같으면 농담이라도 몇 마디 주고받으며 계단을 올라갈텐데, 오늘은 누구도 입을 열지 않는다. 나도 마음을 다잡아먹으며 내가 들어갈 일 학년 십일 반의 문을 연다.
교실에 들어서자 몇몇 아이들은 책을 꺼내놓고 공부에 열중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시험이라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줄 사이를 뛰어다니고, 공책을 집어던지기도 하며 난리다.
"차렷!"
나는 뱃속으로부터 묵중하게 소리를 끌어올린다.
난데없는 차려 소리에 아이들이 갑자기 주춤해진다. 나는 그때를 놓치지 않고 한 마디 한다.
"모두 제자리. 지금부터 쓸데없이 움직이는 사람은 교실 밖으로 쫒아 낸다."
몇몇 녀석이 후다닥 제자리로 달려들어가 앉자, 갑자기 교실이 쥐죽은듯이 조용해진다.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역시 일 학년은 일 학년이군. 큰 소리 한마디에 이렇게 조용해지다니.
나는 내친 김에 한 발 더 내딛는다.
"시험지를 받으면 자기 정면에 놓고 엎드려 풀도록. 만약 쓸데없이 고개를 들면 부정행위로 간주하겠다. 문제지에 표시하는 답은 자기만 알아보게 작게 하도록. 아울러 다 풀고 나면 문제지는 책상 서랍에 접어 넣고 답지는 뒤집어놓고, 엎드리도록. 알겠나?"
"예."
아이들이 일제히 대답한다.
나는 내심 만족해하며 시험지 포장을 뜯고, 분단별로 나누어준다.
OMR카드도 분배를 한다.
중학교에서의 첫 시험이라서인지 아이들 눈빛에는 신기해하는 표정마저 깃들어 있다. 어떤 녀석은 OMR 카드를 요리조리 살펴보기도 한다.
"고개 숙이고 풀도록. 질문이 있으면 고개 숙인 채로 손만 들어라."
나는 한 번 더 다짐을 둔다.
한 십여 분 남짓 아이들은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문제에 열중이다.
거, 참. 일 학년 감독 어렵다지만 별 것 아니군. 이렇게 조용히 잘 풀고 있는데 말야.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는 찰나, 갑자기 한 녀석이 손을 번쩍 든다. 손만 드는 게 아니라 교실이 우렁우렁하도록 소리까지 크게 지른다.
"선생님, 문제가 틀렸어요."
그 바람에 아이들 모두가 고개를 번쩍 들고 소리나는 쪽을 바라본다.
나는 바삐 걸음을 옮겨 녀석에게 다가간다. 다른 아이들도 모두 어떤 문제가 잘못됐는지 궁금해하는 눈치다.
"뭐가 틀렸는데?"
나는 고개를 숙여 녀석의 시험지를 보며 묻는다. 과학 시험이라 문제가 틀려도 내가 해결할 방법이 뾰족하니 없다는 생각을 하며, 담당 교과 선생이 틀린 것을 알면 교실을 순시하거나 방송으로 알려줄 거라는 대답을 미리 준비한다.
그런데 녀석이 틀렸다고 지목한 문제를 보고 나는 그만 어이없는 표정을 짓고 말 수밖에 없었다.
"여기 이 18번 문제요."
녀석이 제법 자신 있는 말투로 그 문제를 가리킨다.
그때 뒤에 앉은 다른 아이가 녀석의 말을 들었는지 냉큼 한마디한다.
"18번 틀린 거 없는데."
그러자 녀석이 시험이라는 것도 잊었는지 뒤를 홱 돌아보며 소리를 지른다.
"봐. '<보기> 중에는 지구 온난화 현상과 관련이 없는 것이 하나 '잇다'. 어느 것인가?' 틀렸잖아."
뒤의 녀석도 지지 않고 맞받는다.
"그게 뭐가 틀려?"
"이런 바보. '잇다'가 아니라 '있다'잖아. 쌍시옷."
녀석이 그것도 모르냐는 투로 소리를 버럭 지른다.
그러자 교실이 와글와글 난장판이 된다. 책상을 두드리며 웃음을 터뜨리는 녀석에, 시험지를 흔들어대며 소리를 지르는 녀석, 저런 삐다리 어쩌구 하는 소리들이 뒤섞인다.
나도 그만 어이가 없어 피식 웃으며 녀석의 머리를 한 번 쥐어박고 만다.
"임마, 그건 네가 알아서 풀어."
그렇지만 녀석은 여전히 볼멘 한 마디를 입 밖으로 내뱉는다.
"분명히 틀렸는데, 씨."
잠시 소동이 가라앉은 틈에 나는 다시 주의를 준다.
"조용히, 시험에 열중하도록."
그러나 이미 분위기는 많이 풀려버린 뒤다. 처음의 긴장된 분위기는 녀석의 얼토당토않은 행동으로 산만하게까지 변해 버렸다. 몸을 뒤트는 아이에, 괜히 시험지를 앞뒤로 펄떡펄떡 넘기는 아이, 볼펜을 돌리다 떨어뜨리고는 책상을 삐익 소리나게 끌며 줍는 아이 등 눈에 띄게 분위기가 달라졌다.
그러더니 한 녀석이 슬며시 손을 든다.
"또 뭐냐?"
"저어, 답이 틀렸는데요."
OMR 카드를 바꿔달라는 얘기다. 나는 여분 답안지를 한 장 가져다준다. 그러자 지금까지 눈치를 보느라 그랬는지 가만히 있던 대여섯 명이 한꺼번에 손을 든다.
"저도 틀렸는데요."
"저도 바꿔 주세요."
"저도요."
드디어 시작이군.
나는 마음 속으로 단단히 각오를 한다.
"조용. 틀린 사람은 그대로 손만 들도록. 움직이지 말고, 제자리에서 손을 들면 내가 답지를 가져다주겠다."
손 든 녀석들에게 답지를 모두 교환해 주자 이어서 자꾸 손을 드는 녀석들이 나타난다.
"틀리지 않게 먼저 빨간 펜으로 답지에 표시하고, 그 다음에 컴퓨터용 싸인펜으로 칠해라. 담임선생님께 그런 얘기 못 들었나?"
나는 주의를 준다. 여분의 답지도 몇 장 남지 않았다.
조금 뜸한가 싶었는데, 가운데 줄 중간쯤에 앉은 녀석 하나가 칼로 무언가를 박박 긁고 있다. 가까이 가보니 OMR 카드를 얇게 긁어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임마, 너 뭐 하는 거야?"
녀석이 머리를 긁적이며 싱긋 웃는다.
"답을 잘못 써서 긁어내는 거예요."
어이가 없다. 나는 새 답안지를 바꿔준다.
"긁으면 컴퓨터가 카드를 읽지 못해 전부 틀린 걸로 된다."
한마디했지만, 정말 어이가 없어 말이 잘 안나온다.
시계를 보니 이제 한 십분 남짓 남았다.
"남은 시간 십 분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시간을 알려준다.
대부분이 답을 옮겨 적었지만, 그제서야 문제지에 표시한 답을 답지에 옮겨 적기 시작하는 아이도 있다.
그런데, 한 녀석이 또 손을 든다.
"뭐야?"
나는 여분 답지를 하나 들고 녀석에게 다가간다.
그런데 녀석의 답지는 아직 표시도 하지 않아 깨끗한 채다.
"뭐? 답지 바꿔달라고?"
나는 의아해 묻는다.
"그게 아니고요..."
녀석은 잠시 망설이더니 말을 잇는다.
"우리 담임선생님이요 여기에는 손대지 말고 답을 쓰라고 했거든요."
녀석이 답안지 아랫부분을 가리킨다. 바코드처럼 까만 줄이 표시되어 있는 부분이다. 컴퓨터가 카드를 판독하도록 표시를 내장해 둔 부분이다.
아마도 담임이 이곳은 절대로 손대서는 안 된다고 강조를 한 모양이다. 그 부분에 칠을 하면 컴퓨터가 카드를 읽을 수 없으니, 워낙 낙서가 심한 일 학년들이라 특별히 강조한 모양이다.
"그럼. 거기는 손대면 안되지."
나도 당연하다는 투로 받는다.
"그러면 어떻게 답을 써요? 이렇게 팔을 들고 써야 돼요? 손대지 않고?"
녀석은 그 부분에 손이 닿지 않게 싸인펜을 쥐고 팔꿈치를 들어 겨우겨우 답지에 표시를 하는 시늉을 한다.
손을 대지 말라는 말은 낙서를 하거나 다른 표시를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인데, 녀석은 곧이곧대로 손을 대서는 안 된다는 말로 이해하고, 난감해 하는 표정이다.
"손 안대고? 그래 임마, 니 마음대로 해라."
말문이 막힌 내가 픽 웃는데, 다른 아이들이 또 난리다.
와글와글, 교실이 또 순식간에 난장판이 된다.
그때 마치는 종이 난다.
"임마, 얼른 답이나 적어."
소리치며 나는 다른 아이들의 답지를 걷게 한다.
아직 채 답지를 걷어가지도 않았는데, 몇 녀석은 문을 박차고 교실 밖으로 튀어나간다. 잡을 새도 없다. 손 안대고 어떻게 푸냐고 한 녀석만 그제서야 급한지 정신없이 답지에 답을 적어나간다.
창 밖을 보니 오월, 맑은 햇살이 오동잎새에 잔잔히 내려앉고 있다. 이렇게 일 학년 첫 시험의 첫 시간이 끝난 것이다. 그리고 저 햇살처럼 아이들도 중학교에 내려앉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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