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21일에 워밍업으로 근처의 청계산을 오르고 이번주에 원래는 대구 비슬산을 가려고 했었다. 그런데, 금요일에 설레는 마음으로 목적지로 가는 방법 등을 알아보기 위해 여기 저기를 인터넷에서 다시 한번 검색한 결과, 내 마음이 조급해지다 못해 급기야는 충격에 휩싸이고 말았다.
글쎄, 비슬산 진달래가 벌써 다 져버렸다는 것이다. 올해 이상고온의 날씨가 지속되어 다른 해에 비해 일찍 진달래가 피었었고, 으레 4월말에 있었던 비슬산 참꽃 축제도 이미 끝나 있었다. 준비의 소홀했음을 탓하면서, 결국 출발 하루 전에 와서 목적지를 바꿔야 했다. 그럼, 어디로?
자주 찾는 <한국의 산하>(mountains.new21.net) 사이트에 가서 진달래산행으로 괜찮다고 추천해 놓은 산들을 다시 한번 둘러보았다. 그리고 애들 엄마에게도 긴급 연락을 취해서 영동의 민주지산을 잠정적으로 정했다.
나는 다시 인터넷에서 민주지산과 관련된 각종 정보(특히 진달래를 보기 위해 올랐던 산행기)를 모으기 시작했고, 애들 엄마가 집에서 그쪽 읍사무소 등에 전화연락을 취해서 진달래가 피어있는지를 알아보았다. 그런데, 그곳 사정도 비슬산과 마찬가지로 이미 진달래는 자취를 감추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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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무정 |
허허, 이런... 그런데, 그 쪽에서 한가지 솔깃한 소식을 귀띔해 주었는데, 바로 지리산 바래봉에 요즘 철쭉이 한창일 것이라는 얘기였다.
지리산 산행이라면 이것 저것 문의할 수 있는 사이트 <검은별님의 지리산 홈페이지>(www.blackstar.pe.kr)가 있는데, '어제 정도에라도 목적지가 바뀌었다면 그곳에서 문의해 보았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남았다. 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곳에 가 보니 바래봉 철쭉에 대한 문의를 했던 사람이 있었고, 답변 내용도 '하루 코스로써 지금쯤이면 괜찮을 것'이라고 되어 있었다. 또한 바래봉이 위치하고 있는 운봉읍 홈페이지를 가 보니 바로 일요일(4/28)에 바래봉 철쭉제를 한다는 것이었다. 결국 이렇게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어렵사리 최종 행선지를 정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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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래봉 쪽으로 가는 방법은 원래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가서 전주IC에서 빠진 후 남원을 거쳐 가는 것으로 생각했으나, 그것보다는 대전까지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한 후 대전에서 대전-통영간(진주간)고속도로를 타고 함양까지 간 후 24번 도로를 타고 인월과 운봉으로 갈 수 있었다.
애들 엄마도 이번 산행이 무척이나 기다려진 모양이었다. 24시간 하루 종일 두녀석에게 시달리느라 지금껏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었을 텐데, 이를 해소할 수 있는 기회가 별로 없었다. 작년 6월초에 소백산을 다녀온 후 별다른 기회를 가져보지 못했던 지라 그동안 미안한 감도 없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었다. (다른 때 같았으면 보통 출발하기 전날 저녁에 짐을 챙기곤 했는데) 전날 점심때 즈음해서 이미 배낭과 애들 옷가지 등 준비를 끝냈다고 전화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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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지난주 청계산 산행이 큰녀석에게는 힘이 들었는지, 며칠전에 다시 "야호"하러 산에 가자고 했더니 가지 않겠다고 한다. 자기는 집에서 비디오를 보고 있을 테니까 동생과 엄마, 아빠만 다녀 오라고 태연하게 말을 하는 것이었다. 산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사 준다고 했더니, 자기는 산에 가지 않고 아이스크림을 먹겠다고 한다. 청계산에서 내려오는 도중에 "엄마, 힘들어"를 연발하더니, 그게 힘이 들었나 보았다.
그런 녀석을 며칠동안 어르고 달래서 어쨌든 4월28일 아침 9시 정각에 운봉읍 철쭉제 행사장에 도착했다. 행사장이 곧 주차장이었고, 그 행사장이 곧 철쭉 군락지였다. 군데 군데 철쭉들이 피어 있었고 그 사이 사이에 차들을 주차시키고 있었다. 특설무대가 마련되어진 것을 보니, 아마도 노래자랑 등이 펼쳐질 모양이었다. 그리고 여기 저기에서 들려오는 '쿵짝 쿵짝' 신나는 노래들을 뒤로 하고 우리 가족은 산행을 시작했다. 큰녀석은 엄마와 손잡고, 둘째는 내 등에 업힌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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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무정 |
우리의 목표는 바래봉을 가기 전과 바래봉에서 팔랑치까지 이르는 곳에 철쭉 군락이 조성되어 있다는 정보에 따라 바래봉을 거쳐 팔랑치까지 간 후 다시 되돌아오는 것으로 정했다.
인터넷 등에서 살펴보았던 대로 이곳에는 바래봉 바로 직전까지 등산로가 아니라 아예 길이 나 있었다. 과거 목장을 하면서 차들이 지나다닐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다는 길인 것 같았다. 언뜻 보기에도 4륜 구동차인 경우는 충분히 다닐 수 있을 길이었다.(나중에 보니 그런 차가 지나다녔다. '산불예방'이라는 팻말을 앞에다 붙이고 있긴 하였지만, 바래봉 근처에 갔을 때 패러글라이딩을 즐기는 사람들이 이용했던 차량임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어떤 젊은 청년들은 오토바이를 타고 그 많은 사람들을 헤집고 오르기도 하였는데, 그들이 어디까지 오토바이를 타고 가고 그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참으로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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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무정 |
날이 날인 만큼 많은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산행을 하고 있었다. 시멘트로 포장되어 있는 도로가 끝나고 흙으로 되어 있는 길에 들어서자마자 울긋 불긋한 색깔이 눈에 들어왔다. 드디어 '시작된 모양이구나!'. 아니나 다를까 화사하게 피어있는 철쭉이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준비한 카메라로 기념사진을 몇장 찍고는 다시 발길을 재촉했다. 하지만 산행을 진행할 수가 없었다. 산길을 중심으로 아래와 위로 펼쳐져 있는 풍경이 너무나 장관이었다. 사람들이 왜 그렇게 고생 고생하면서까지 굳이 철쪽을 보러 오려고 하는지를 알 수가 있었다. 표현능력이 모자라 그 장관을 어떻게 글로 표현할 수가 없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지만, 아무튼 그 모습은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하지만, 아직은 때가 이른 모양이었다. 그 이상에서는 철쭉을 볼 수가 없었다. 바래봉으로 가까워질수록 봉오리도 채 영글지 않아 아마 5월 중순쯤 되어야 그 화려한 풍경을 볼 수가 있을 듯 싶었다. 생각해 보니, 철쭉제를 하려면 일단 행사장 주변으로 철쭉이 피어있어야 할 테고 그렇게 초입에 철쭉이 피었으면 중간 이후로는 그 이후에 꽃이 피는 것이 자연의 이치상 맞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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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 중간에 올라온 길을 뒤돌아 보니, 저 멀리 산아래로 철축제 행사장도 보였고, 조각 조각 짜여 맞춰져 있는 논들이 넓게 펼쳐진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결국 그 이후로는 철쭉을 볼 수는 없었지만 그렇게 가족들과 천천히 올라갔다. 내가 산을 오르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는 산행이 우리 인생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인생을 살아가다가 중간에 자신이 살아온 날들을 되돌아 보는 것이 필요한 것처럼, 산행에서도 중간쯤 뒤돌아 서서 그때까지 올라온 길을 되짚으면서 숨을 고르기도 하고 또한 자신이 처해 있는 위치를 한번 더 인식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또한 아이들에게도 산을 오르는 과정은 어렵고 힘들지만 그러한 어려움을 참아내면 정상에 오르는 기쁨을 맛볼 수 있는 것처럼 삶을 살아가는 동안에도 힘들고 어렵더라도 그것을 참아내면 반드시 기쁜 날도 오게 될 것이라는 말을 해 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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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래봉(1165m) 바로 직전에 바래봉으로 가는 길과 팔랑치 쪽으로 길이 분기되어 있었다. 또한 지대가 지대니 만큼 불어오는 바람이 싸늘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산행로 또한 불어오는 바람을 의지할 곳 없이 그대로 받아들여야 했는데, 애들에게는 그리 호락호락할 것 같지가 않았다. 결국 더 이상의 진행은 무리라는 판단하에, 거기에서 되돌아가기로 하고 그곳에 앉아 준비해 간 음식으로 간단히 배를 채웠다. 그 때 시간이 12:30 정도. 다행히 산에 가지 않겠다던 큰녀석도 별 탈없이 무사히 잘 올라와 주었다. 물론 내려가는 것도 엄마손을 꼬오옥 붙잡고는 잘 내려가 주었다. 대견스러웠다.
예년처럼 다시 소백산을 갈지는 미지수이지만, 내년부터는 5월 중순쯤 이곳을 다시 찾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 때쯤이면 바래봉에서 팔랑치로 이어지는 철쭉 군락지의 모습을 볼 수 있을 듯 싶다. 하지만, 소백산 철쭉도 유명한 만큼 그곳의 경관도 한번 보았으면 싶다. 언제 이루어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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