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살 여성의 눈으로 본 '25살 쇼핑퀸'

<한겨레 21>이 말하는 25살 여성에 대한 반론

등록 2002.04.30 18:26수정 2002.04.30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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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살 쇼핑 퀸, 그들의 패션 트렌드 안과 밖" <한겨레 21>(5월 2일, 제 406호) 특집 제목이 내 눈길을 끈다. 백화점업계를 강타한 20대 여성들을 군단으로 표현하고, 쇼핑할 때가 가장 즐겁다는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소개한다고 되어 있다.


기사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들어서 있는 늘씬한 여성이 몸에 걸치고 있는 명품들을 계산해보니 얼추 259만원이다. 라펠라 선글라스 15만원, 루이뷔통 백 70만원, 페라가모 구두 40만원...

그 외에 손발 맛사지와 헬스 등에 투자하는 돈은 약 20만원. 이를 합치면 한 젊은 여성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자신을 가꾸기 위해 투자한 돈만 약 280만원에 달한다.

언제부터인지 명품을 찾는 이들이 중년층에서 20대의 젊은 층으로 내려가면서, 이들의 구매력이 높아 백화점 업계를 강타하고 있으며, 중고 명품을 취급하는 곳 또한 특수를 누리고 있다는 기사가 심심치 않게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러한 기사 말미엔 명품에 목을 메는 이러한 현상이 결코 과소비만으로 볼 수 없다며 20대의 명품 열기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려는 시각으로 마무리되곤 했다.

불과 몇 년 전에 이런 현상이 발생했다면 언론에선 즉시 과소비의 열풍이라며 비판적인 기사로 도배되었을 일이 지금은 많이 다른 양상을 보여주는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그런 기사를 대할 때마다 나와는 거리가 먼 일이라고 치부했기에 일부여성들만의 얘기로 넘어가곤 했다.


그런데 <한겨레 21> 기사의 제목이 내게 안겨준 것은 흥분이었다. 어쩌면 분노라고 솔직히 고백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같은 25살, 난 그녀들과 같은 나이이며 같은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누군가 다른 이들과 나의 삶을 비교 평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한 기사를 읽는 독자들 또한 그러한 흐름에 대해서 일반화시키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읽는 내내 불편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들의 소비 행태를 비판한다거나 과소비로 몰아붙이려는 것은 아니다.

그녀들의 눈으로 봤을 땐 월급 60만원을 받고 여성운동을 한다는 필자를 천연기념물 취급할지도 모른다. 다만 그녀들의 소비과정을 지켜보며 같은 나이에 다른 삶을 살아가는 젊은이도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25살 쇼핑 퀸, 그들의 패션트렌드의 안과 밖'에 포함되지 않는 25살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한겨레 21> 기사에서 은행에서 6년째 일한다는 25살의 한 여성은 "한달 평균 카드 결제액은 50만원 정도이고, 그밖에 헬스와 피부, 손발 관리에 30만원 가량을 지출하지만 한 달 수입 160만원에 비해 과소비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한겨레 21에 실린 한아무개 씨의 한달 지출 내역

* 월수입 : 160만원

* 엄마용돈 : 10만원(대신 매일 도시락 싸줌)
* 교통비, 책(잡지), 구입비, 전화료, 점심값(도시락 안싸오는 날) 등 필수용돈 : 20만원
* 보험 : 8만원,
* 적금 : 12만원
* 헬스클럽 : 10만원
* 네일케어, 손발·피부 맛사지 : 20만원
* 카드결제 : 50만원
* 펜디코트계 : 10만원
* 동창모임 : 5만원
* 시슬리 화장품 공동구매계 : 5만원
* 기타 현금 지출(커피값 등) : 10만원


필자의 한달 지출 내역

* 월 수입 : 665,000(실 수령액 : 609,170)

* 적금 : 23만원,
* 보험 : 5만원
* 교통비 : 5만원
* 핸드폰 : 6만원
* 카드결제 : 약 15만원
* 시민단체 후원금 : 약 2만원
* 기타 지출 : 5만원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수입이라 지출내역을 비교한다는 것도 무의미한 일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자신을 가꾸려는 노력이 단지 과시하기 위해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중에 직업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성공하고 싶어요. 돈도 쓴 만큼 번다고 하잖아요. 저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해요'..."라고 표현한 기사를 보며 도대체 명품을 좋아하고 그것들을 구입하는 것이 자신을 위한 어떤 투자인지가 내심 궁금하다.

맛사지와 피부 미용으로 젊음을 유지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자신이 번 돈으로 마음껏 한다는 부분에 대해서 긍정적인 대답을 할 수도 있겠지만 위의 내역서를 아무리 들여다봐도 그 사람의 미래를 위해 투자하고 있다는 부분은 어떠한 것인지 알 수가 없고, 기사에서 무엇을 말하려 하는 것인지 이해되지 않는 건 무엇 때문일까?

"평생직장이 아니잖아요. 혹시 결혼하면 나가라고 할 수도 있고..."
그녀들은 왜 무한한 경쟁 속에 끊임없는 노력 없이는 평생직장이 될 수 없기 때문에 내 발전을 위해서 투자한다고 말하지 않는 것일까? 결혼한 이유로 직장에서 나가라고 한다면 그 부당성에 대해 왜 싸우려고 하지 않고 담담히 받아들이는 것일까?

여성단체 바자회에서 5천 원을 주고 산 니트를 입은 채 25살의 여성들을, '패션잡지를 3개 정도 꼬박꼬박 사보고, 백화점에도 일주일에 한번은 나간다. 좋은 세일 물건이 나올 때를 대비해 사이트 검색과 홈쇼핑 채널 시청은 날마다 한다'고 정의한 <한겨레 21>을 보며 씁쓸한 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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