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북 인식 더욱 강경해진다"

[심층인터뷰] 세종연구소 정옥임 박사

등록 2002.05.08 16:26수정 2002.05.08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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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행정부 일부에서는 북한을 부드럽게 붕괴시키는 것을 시도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이것이 바로 가장 바람직한 시나리오이라는 것이다."

국내에서는 보기드문 여성 안보문제 전문가인 정옥임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의 진단이다. 미국의 대표적 싱크탱크인 브루킹스 연구소 연구원과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 정책 전문위원 등을 지낸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 전문가인 정옥임 박사는 "전쟁을 수행 중인 미국의 대북인식은 더욱 강경해지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5월 3일 저녁 참여연대 2층 강당에서 평화네트워크 회원들과 가진 인터뷰 자리(인터뷰 내용 전문은 평화네트워크 홈페이지 www.peacekorea.org에서 볼 수 있다)에서 정옥임 박사는, "북한과 미국 사이에는 근본적인 인식 차이가 존재한다"며, "이 차이를 메우는 방법은 남한이 제 역할을 하는 방법이 유일하다"고 강조했다.

부시 행정부는 왜 북한에게 강경하게 나오는가?

정옥임 박사는 우선 부시 행정부가 북한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클린턴 행정부 때는 북한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고, 또 대화가 가능하다는 인식도 있었지만, 부시 행정부는 다르다는 것이다. 특히 클린턴 행정부 때는 북한과 전쟁을 벌이는 것이 이라크나 유고슬라비아와는 다르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나, 부시 행정부는 이러한 차이에 크게 주목하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즉, "지역 전문가라든지 실용주의자보다는 소위 냉전의 전사들이 핵이나 미사일 같은 것이 참 위험할 뿐만 아니라 불량국가들을 근절시켜야 된다고 생각하는 그런 사람들이 포진하고 있기 때문에, 자기네들이 보더라도 북한 정권이 예상보다는 오래갈지 모르지만 결국 붕괴되는 것이 국제사회의 평화를 위해서 바람직하다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부시 행정부의 대북관은 북한은 물론 남한과도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정박사는 지적했다. 북한은 21세기 생존전략으로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바라고 있지만,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 목표는 관계 개선보다는 대량살상무기 위협 제거에 있다는 것이다. 또한 남한 정부는 북한은 변하고 있다고 보는 반면에, 부시 행정부는 변화는 표면적인 것에 불과하고 북한의 군사적 위협과 인권 상황에는 변화가 없다고 보고 있기 때문에 한미간에도 적지 않은 마찰이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의 북한 공격 가능성은?

정옥임 박사는 5월말에 예정된 잭 프리처드 대북 교섭 담당 대사의 방북을 비롯해 북미간의 관계 개선이 이뤄질지를 가늠할 핵심적인 변수는 핵, 미사일 등 이른바 대량살상무기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들 사안에 대한 북미간의 인식 차이가 워낙 커서 회담 성과를 낙관하기는 힘들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다만, "북한이 대화를 수용한 이상, 남북, 북일 회담에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진단했다.


그렇다면 핵, 미사일 문제 등에 있어서 진전이 없을 경우 부시 행정부의 대북 군사행동의 가능성은 어떻게 봐야 할까? 정옥임 박사는 이 문제와 관련해 크게 세 가지 문제를 강조했다.

첫째, 우선 미국이 판단하기에 북한이 도발을 한다면, 부시 행정부가 군사 행동을 취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즉, 북한이 제네바 합의를 파기한다든지, 미사일 발사 실험을 재개한다든지, 미사일 수출 선박을 포착한다든지 등의 행동을 할 경우 부시 행정부는 단호한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는 곧 북한의 입장에서는 정상적인 주권 행사가 미국에게는 도발로 해석될 수 있다는 점에서 북미간의 군사적 충돌이 대단히 유동적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둘째, 그러나 부시 행정부가 북한에 대해 공격 계획을 세우고 먼저 공격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정옥임 박사는 "부시 행정부의 우선적인 공격 목표는 이라크이기 때문에, 이라크에 대해 공격 준비를 하기에도 바쁜 부시 행정부가 북한을 먼저 공격할 가능성은 없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우선적으로는 이라크 공격을 준비하면서, 북한과는 실무 회담을 유지하는 선에서 정책을 펼 가능성이 높다"며, 그러나 "북한을 고사시키는 정책을 시도할 가능성은 있다"고 전망했다.

세 번째 문제로는 미국의 군사적 준비의 문제이다. 정옥임 박사는 94년 당시의 위기 상황을 예로 들면서, "93년에는 미국이 준비가 안되었기 때문에 북한을 공격하지는 못했지만, 94년부터는 분명히 준비를 했다"며, 부시 행정부가 준비를 갖추기 전에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녀는 부시 행정부의 공세적 핵전략을 예로 들면서, "만약에 미국이 수년내에 소형핵 무기를 개발해서 영변에 플루토늄이 있다고 판단하고 정확하게 그 지역을 폭파시킨다면, 더 이상 북한이 흔들 수 있는 카드도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며 상황이 악화되기 전에 북한이 전향적인 자세로 나와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미국의 대북 군사 행동 문제와 관련해서 또 한가지 관심사는 과연 미국이 군사 행동에 앞서 한국과 긴밀한 협의를 거칠 것인가의 문제이다. 이와 관련해 정옥임 박사는 주한미군의 감축을 예로 들었다. 그녀는 "닉슨, 카터, 아버지 부시 때 등 몇 차례에 걸쳐 미군 철수를 해왔는데, 미국이 한반도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을 감축하면서 동맹국인 한국과 긴밀한 협의를 거친 적은 한번도 없었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미국의 군사 행동을 포함한 핵심적인 문제에 대한 한미간의 정책 조율은, "한국의 정책 결정자들과 미국의 정책 결정자들간에 얼마만큼 공조가 잘 이루어지고 있느냐, 또 미국이 한국에 대해서 얼마만큼 진지하게 생각하느냐, 그리고 우리가 동맹국인 미국으로 하여금 얼마만큼 진지하게 받아들이도록 유도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주장했다. 전쟁 결정을 포함한 중대한 사안에 대해 정해진 구조가 있다기보다는 상황에 따라 유동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남한이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정옥임 박사는 북미, 한미 사이의 이러한 근본적인 입장 차이를 해소하고 예상되는 위기 상황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한미공조의 틀을 유지하면서도 남한이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즉, 문제의 핵심은 "북한의 위협에 해소될 때 한미일이 북한에 제공할 수 있는 보상은 무엇인가?"와, "그 보상을 누가 줄 것인가?"로 모아지는데, 결국 이 역할을 할 수 있는 나라는 남한밖에 없다는 것이다.

2003년 위기설의 핵심적인 변수로 등장하고 있는 제네바 합의 이행 문제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정 박사는 강조했다. 즉, "지원을 하되 긴장은 늦추자는 미국측의 논리를 고려해, 남한이 전력 공급을 하고, 이를 북한의 핵사찰과 연계하는 방안을 강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방안은 미국 측의 유력 인사도 고려하는 방안이라고 정 박사는 강조했다.

정옥임 박사는 끝으로 우리가 미국에 갖고 있는 두 가지 환상을 깨야 한다고 주문했다. 즉 근거없는 희망적인 관측이나 미국을 제국주의적 관점에서 보는 것은 모두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당연한 얘기처럼 들리지만, 우선 필요한 일은 "미국의 이익과 우리의 이익이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다는 현실 인식이고 그 차원에서 소위 용미, 즉 미국을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지만 이것이 잘 안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반도 문제가 잘 풀어 평화의 기반을 닦기 위해서는, "우리도 우리의 국가 이익에 근거해서 움직여야 되고 단지 우리의 이익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미국이라든지 다른 나라의 이해와 우리의 이해를 일치시키는 부분의 범주를 더 넓힐 수 있도록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한 역량을 발휘할 수밖에 없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정옥임 박사가 끝으로 강조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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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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