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중 흘낏 창 밖을 보니, 운동장 쪽 베란다에 비둘기 한 마리가 바들바들 떨고 있다.
'한 여름에도 비둘기는 추위를 타나?'
운동장에 나가 쉬는 시간 십 분을 농구나 축구로 적극 활용하고 들어온 아이들은 벌써 웃통을 벗어놓고도 땀을 뻘뻘 흘리며 선풍기까지 틀어놓기도 한다. 그러다 수업 중간쯤 지나면 슬금슬금 책상에 엎드리고, 끝내는 눈꺼풀 이겨내는 장사 없다고, 아예 코까지 골며 낮잠을 즐기는 축도 있다. 오늘 수업에도 여러 명이 축축 처진다.
"아예 아이들이 녹아 내린다니까요. 아이스크림도 아니면서."
어제 문 선생이 오 교시 수업을 마치고 교무실에 들어서며 그렇게 말하더니, 오늘 내 수업 시간에는 사 교시인데도 녹아 내린다. 아이들이 녹아 내리니 나도 흐물흐물 사그라드는 것 같다. 말에 신명이 오르지 않고, 수업에 재미도 없다.
나는 하던 말을 멈추고, 아예 창가에 다가가 몸을 길게 빼고 베란다쪽을 살펴본다. 몇몇 아이들이 무슨 일인가 싶어 창가로 몰려든다. 베란다 중간쯤에 바들바들 떠는 비둘기가 그제야 눈에 띄었는지 아이들이 웅성거린다.
"비둘기잖아."
"왜 저러고 있대?"
"낸들 아니, 임마."
아이들이 웅성거리는데도 비둘기는 추위를 타는 것처럼 몸을 떨고 있다.
자세히 보아하니 비둘기 꼴이 정상이 아니다. 한쪽 발목에는 철사줄이 칭칭 감겨 있다. 다른 한쪽 발은 구부러져 제대로 딛지도 못하고 바들바들 떤다. 몸이 가려운지 제 날개 깃 속에 부리를 박고 계속 쿡쿡 쪼아대는데, 눈은 게게 풀려 있다.
"야, 금방 죽을래나봐."
"그럼 우리 구워 먹을까?"
"임마, 비둘기 고기도 먹냐?"
"샌데 못 먹을 건 뭐냐?"
아이들이 비둘기를 바라보며 그런 말을 툭툭 내뱉는다. 그 말을 알아듣는 건지 아닌지, 비둘기는 잠시 눈을 반짝 떴다가는 다시 스르르 감아버린다. 그리고는 아예 베란다에 몸을 눕혀 버린다. 여전히 몸이 파르르 떨린다. 쨍쨍한 햇살이 그런 비둘기 몸을 훑고 지나간다.
새들은 두 종류가 있다. 인간의 생활공간 속에서 살아가는 새와, 인간을 벗어나 자연에서 살아가는 새. 인간 속에 살아가는 대표적인 새가 비둘기와 까치다. 비둘기나 까치는 인간과 함께 생활하면서, 인간이 버린 음식물 찌꺼기나 과자 부스러기를 제 식량으로 삼기 시작했다. 그 뒤부터 벌레를 잡아먹는 자기 고유의 식량 확보 방법을 잊어버리고, 인간에 기대어 살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런데 인간이 먹는 것을 새가 먹고 살아남을 수 있을까? 온갖 오염물질과 농약으로 범벅이 된 인간의 먹거리는, 그 결과가 인간에게는 급속히 나타나지 않을지 몰라도 새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다. 제 날개를 펴지 못하고, 제 삶을 온전히 자기 것으로 하지 못한 새들의 운명은 결국, 인간의 삶의 양태에 달려 있게 된다. 저 비둘기도 그런 것이리라. 인간의 세계에서 살면서, 인간이 쳐놓은 온갖 그물에 걸려 제 목숨을 다하지 못하는 새.
언젠가 강화도 외포리에서 석모도로 건너가는 배를 탄 적이 있었다. 배가 출발하자 갈매기들이 하늘을 가릴 듯 새까맣게 날아올라 배를 에워쌌다. 새우깡 갈매기라고 부르는 그 갈매기떼들은 배를 타고 가는 사람들이 던져주는 새우깡을 먹이로 삼으면서, 제 힘으로 물고기를 잡아먹는 방법을 잊었다고 한다. 시력도 약화되고, 물갈퀴도 퇴화하고, 부리마저 뭉툭해져서, 끝내는 제 힘으로 먹이를 구할 능력은 없이, 인간에게 길들여진 처량한 새로 남은 갈매기들이, 내게는 영영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다음날, 옆 반 수업을 들어가 수업을 하다 문득 어제의 비둘기가 궁금해진다. 입으로는 설명을 하면서 눈을 힐끗 베란다 쪽으로 돌리니, 어제의 그 비둘기가 아예 모로 누워 있다. 그 옆에 다른 비둘기도 한 마리 발치 쪽에 쓰러져 있다.
창 밖으로 몸을 내밀어 살펴보니, 두 마리 모두 죽어 있다. 어제 비둘기는 여전히 발에 칭칭 철사줄을 감은 채다. 숨진 비둘기의 몸 위로 햇살이 쨍쨍하다. 푸른 숲과 맑은 하늘은 그들의 영원한 꿈이었을까? 나는 갑자기 막막해지는 기분으로 건성건성 수업을 진행한다.
5학년 때 산 높고 물 맑은 강원도 고향에서 서울로 전학 온 뒤로 늘 시들시들 문명의 도시에 적응하지 못하고 겉돌았던 내 삶이 마치 저 비둘기들 같아서 도무지 마음이 잡히지 않는다.
날씨는 점점 푹푹 찌고, 아이들은 또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린다. 교실 여기저기 엎드려 있는 아이들이 눈에 띈다. 그들이 모두 베란다에서 시름시름 앓던 비둘기처럼 느껴진다. 아, 우리들의 푸른 하늘은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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