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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여름이면 내가 자주 사는 과일(채소라고 해야 맞는다지만)이 하나 있다. '수박'이다. 나는 수박이 나오는 여름에는 시골집에 갈 때 무엇을 살까 고민해 본적이 없다.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약간은 큼지막한 수박 한 통이면 되기 때문이다.
나는 철이 들고 나서 아버지가 수박을 좋아하신다는 것을 알았다. 단순히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라 어머니의 말씀을 빌리면 수박이라면 어머니도 주지 않고 혼자서 드신다고도 하고, 손자들에게도 주지 않는다고 했다(설마 어머니가 웃자고 조금은 과장해서 그렇게 말씀하셨겠지만).
아무튼 우리 형제들은 시골집에 갈 때는 으레 수박을 한 통씩 들고 가면 되었다. 사람이 많으면 두 통, 세 통. 수박을 사가면 아버지는 참 기뻐하셨다. 그리고 정말로 맛있게 수박을 드셨다. 때론 함께 정담을 나누다가도, 나와 바둑을 두시다가도 수박이나 한 조각 먹어볼까 하시면서 수박을 찾곤 하셨다.
가끔은 어린 손자들이 수박을 서로 먼저 먹으려고 다투기라도 하면, 우리는 수박을 좋아하시는 아버지를 닮아 손자들도 수박을 다들 좋아한다면서 재밌어 했다. 여름철 과일로 가격도 비싸지 않고 양도 많은 수박은 그래서 시골집에 가는 우리에게는 부담 없는 준비물이었고 행복한 과일이었으며 우리 형제 모두도 가장 좋아하는 과일이 되어 버렸다.
올해도 역시 뜨거운 여름과 함께 가게에는 수박이 진열되기 시작하고 여기저기 수박을 사들고 가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그러나 나는 올해는 수박을 사고 싶지 않다. 큼직한 수박을 사 가지고 간다해도 그 수박을 맛있게 드실 아버지가 이제는 안 계시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버지는 왜 그렇게 수박을 좋아하셨을까? 많고 많은 과일 중에 왜 별로 고급스럽지도 않은 수박을 좋아하셨을까? 혹시 자녀들에게 시골집에 찾아올 때 무엇을 살 것인가? 하는 그런 사사로운 것까지도 부담이 될까 싶어 의도적으로 수박을 좋아한 척 한 것은 아니었을까?
뜨거운 햇살과 함께 수박의 계절은 계속될 것이고 나는 '수박'을 볼 때마다 아버지를 더욱 그리워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어느날 문득 아버지가 어깨에 짊어지고 계신 삶의 무게를 보았습니다. 그 후로 아버지를 이해하려 했고 진정으로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너무 늦었습니다. 아버지는 나를 기다려 주시지 않았으며, 아버지와의 행복한 시간은 너무나 짧기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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