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져가는 법성포 단오제를 찾아

등록 2002.06.13 10:44수정 2002.06.20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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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성포구의 모습. 물이 가득찼을때 배는 다른 배를 피해 들어옵니다. 하지만 물이 빠지면 배는 움직이지 못합니다. 퇴적물이 물이 들어오는 길을 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 전고필

바다의 비릿한 내음이 밀물과 함께 골짜기에 가득하다. 폐선 몇 개만 보이던 항구에 오늘은 배가 꽉 차있어 보인다. 밀물이 가라앉은 배들을 부양해 놓았기 때문이다.

법성포.
참 무거운 지명이다. 저마다 두려워하는 법과 저마다 존경의 마음을 아끼지 않는 성인의 의미를 지닌 항구라고 하니 무겁기가 서해바다가 이고 있는 하늘 만큼이다.


그 옛날 앞바다에서 삼태기로 건져 올렸을 정도로 조기의 어획량이 많았고 이것을 천연의 태양과 소금에 조림하고 골바람에 건조하여 얻어진 굴비의 명성은 어쩌면 법성포라는 이름이 전국적으로 퍼져나갈 수 있게 만든 가장 큰 동력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법성포는 그 이름을 영광에 내어 주었다. 함께 지역의 인지도를 확산하자는 것이었는지 아님 자연스럽게 그리 되었는지는 모를 일이다.

다만 모든 이들이 밥도둑이라고 하는 법성포의 굴비를 그저 영광굴비라고 부른다. 얼마나 그 맛이 독특하고 빼어났으면 세상에 그 이름을 밥도둑이라고 했을까?

▲ 자린고비. 2002 광주비엔날레에서 법성포를 만났습니다. 함진씨의 작품으로 설치라는 제목을 담고 있는데 이곳 저곳에 조그마한 설치작품을 만들어 놓아 눈여겨 보지 않으면 쉽게 지나쳐 버립니다. 다행스럽게 실에 메달린 물고기를 보았는데 보자 마자 떠오른 것이 자린고비와 법성포였습니다. ⓒ 전고필

지금은 아쉽게도 법성포에서는 조기가 더 이상 잡히지 않는다. 근해어업에 의탁하여 조그마한 배를 타고 앞바다에서 잡아 올렸던 조기는 황금어장이라고 했던 칠산바다에 도착하기도 전에 원근해 어업을 나가는 한국의 어부와 중국의 어부들에게 잡히고 만다. 결국 법성포 사람들은 그들 특유의 굴비가공을 위하여 먼바다에서 조업을 해 오는 고기궤짝을 찾아 부산으로 진주로 남해 바다의 포구를 헤매야 하는 처지이다.

설상 가상으로 번창했던 포구의 맞은편 바다에 퇴적물이 쌓이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그 퇴적물을 이용하여 수면 매립공사를 하고 그곳에 공원을 조성할 계획까지 가지고 있다. 세월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상한가를 법성포에서 느껴볼 수 있다.


자연의 환경은 이렇듯 변하고 있지만 법성포 사람들의 단합심과 전통에 대한 보전 의지는 정말 남달라 보인다. 수백년을 지켜온 단오제가 바로 그런 법성포 사람들의 뜻을 알 수 있는 근거이다. 옛적 정월부터 찾아오기 시작한 회유성 어류 조기를 잡으며 형성되기 시작한 파도속의 시장은 음력 4월말 5월초면 절정에 달했다.

▲ 용왕호의 모습. 풍요로운 바다 생명을 보호해주는 바다의 신 용왕에게 제사를 지내고 선유놀이를 하기 위해 이번에 새로 만든 용왕호입니다. 직설적인 그들의 이름짓기가 군더더기가 없어 더 순수해 보입니다. ⓒ 전고필

오랜 민속인 단오와 겹쳐지는 기간 법성포에 몰려든 상인들과 지역의 어민들은 1516년 중종 무렵에 법성포에 진성을 쌓으면서 형성된 "숲쟁이"라는 곳의 숲에 모여 마을의 당산과 산신에게 제를 올리고 포구를 떠돌며 억울하게 죽은 이들의 한을 풀어주기 위하여 한제를 지냈다.
또한 그들의 원초적인 삶을 대변하는 용왕님께 풍어를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고 생산의 바다가 아닌 놀이의 바다로서 그들의 일터에서 뱃놀이를 즐겼던 것이다.


이런 제의적인 행사가 끝나며 자연스럽게 난장이 형성되었다. 숲쟁이의 높다란 팽나무에 걸린 그네를 뛰는 처자, 황소 한 마리를 걸어놓고 벌이는 씨름판, 윷놀이, 전주대사습보다 그 명성이 컸다는 명창대회 등이 단오제 행사의 절정이었다.

물론 이런 난장에 농악이 빠질리는 없다. 독특한 운율을 가진 동편제의 가락에 바다를 향한 법성인들의 마음이 모아진 농악이 도처에서 저마다 일손을 놓고 숲쟁이로 몰려들어 단오를 즐기려는 백성들과 함께 하였다.

하지만 일제시대에 접어들면서 이러한 아름다운 전통을 지켜내느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험난했던 시절이 지나서야 법성의 어른들과 청년들을 중심으로 다시 단오제를 지켜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단오제에 대한 양식은 모든 공동체 사회가 그렇듯이 철저하게 자신들의 주머니에 있는 혹은 곳간에 있는 돈과 곡식을 가지고 행사를 진행했다.

▲ 굴비를 건조하고 있는 모습. 이 굴비정도 가지면 몇년은 밥먹는데 반찬 까탈을 안부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법성포의 곳곳에서 이런 모습을 만날 수 있습니다. ⓒ 전고필

특히 법성포를 기반으로 굴비를 판매하는 상인들은 이날이야말로 굴비를 대대적으로 판매하고 알리는 중요한 시점이기 때문에 오늘날과 같은 세련된 방식의 마케팅은 아니지만 그들 나름대로의 양식을 가지고 시장을 형성하고 더 많은 굴비를 판매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물론 단오제에 소용되는 물품과 비용의 조달들도 이런 상인들을 중심으로 이뤄졌었던 것이다.

▲ 단오제 씨름대회. 한판 붙었습니다. 각 면별로 대표선수들이 나와 저마다의 기량을 뽐내지만 결국 나이 앞에서는 속수 무책인가 봅니다. ⓒ 전고필

현대사회로의 이행단계에서 법성포단오제를 이끄는 지역민들은 지역성을 넘어 굴비의 전국화를 꾀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찾아낸 대안은 80년대 각 지역을 중심으로 등장하는 백화점에 굴비를 소개하고 친절하게 판매해줄 수 있는 사람으로 굴비아가씨가 적격이라는데 뜻을 모았다. 그들의 그런 의사결정은 결국 "영광굴비 홍보 도우미"로 이름을 바꾼 이번회까지 하면 14번째의 굴비아가씨를 뽑고 있는 셈이다.

물론 이 부분이 지역의 여성단체와 문화단체에 의해 비난을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법성포단오제의 많은 관계자들은 전라도 사람들 밖에 모르던 굴비를 굴비아가씨를 뽑아 전국의 백화점, 시장 등으로 홍보를 하고 나서부터는 조기가 없어서 더 굴비를 생산하지 못할 정도로 판매량이 급신장을 했는데 어찌 굴비아가씨를 없앨 수 있냐고 반문한다.

▲ 굴비아가씨. 예쁜 아가씨가 건네주는 굴비가 더 맛있나 봅니다. 어김없이 올해에도 명칭을 바꾼 "굴비 홍보 도우미"가 탄생될 것입니다. 이제 축제에서 나타나는 성의 상품화에 대한 논의는 주최측과 사회단체의 몫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인가 봅니다. 수용자가 그 잘잘못을 따지는 시대로 가야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 전고필

이런 이유가 여성의 성 상품화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불식시키기 어렵지만 2001년 굴비아가씨선발대회에 나왔던 후보중에는 "부모가 주신 이 아름다움을 뽐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데 뭘 마다하겠느냐" 며, 나중에 자신의 딸을 낳더라도 이런 대회에 내 보내겠다는 생각을 거침없이 던지는 것을 보았던 기억이 있다. 어지러울 것도 없이 이런 미인 선발대회를 폐지해야 한다는데 동의를 하지만 과거에 대한 추수적 개념과 스스로의 외모를 뽐낼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전국의 미인대회는 없어지기가 힘들겠다는 생각이 드는 구절이다.

법성포의 굴비가 전국적으로 기세를 떨치고 단오제의 행사들이 마이크와 증폭기의 힘을 빌게 되면서부터 단오제전은 더욱 확장하여 지금은 3일 행사를 치르고 있으며, 사용되는 예산만해도 2억원에 달한다.

▲ 흥겨운 농악. 한국인의 신명나는 문화에는 반드시 농악이 함께 했습니다. 극한 노동에 대한 보상은 노동자 스스로에 의해 스스로를 어루만지는 농악대들의 힘찬 연주에 있나 봅니다. 농악대의 연주가 가장 관객들의 호응이 높았습니다. 작년 단오제때의 일입니다. ⓒ 전고필
물론 이 비용은 법성포의 굴비 상가를 중심으로 추렴이라는 형태로 조달되고 있는 현실이다. 한 조그마한 포구에서 매해 2억원의 비용을 민간인 스스로 거두어 행사를 치르고 있다는 점은 전국 어느 곳에서도 그 예를 찾기 힘들다.

이는 단오제의 제전과 병행하여 법성포에 대한 인지도의 확산과 굴비에 대한 소비 촉발을 유도하는 계기로 삼고자 하는 지역민들의 뜻이 반영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횟수를 알 수 없는 단오제 행사가 이번해에도 어김없이 열린다. 강릉시장과 수많은 강릉의 기관장들이 민간인과 함께 참여하는 강릉단오제도 함께 열린다.

행정의 지원을 받고 전국적으로 주목을 받는 동해의 강릉단오제에 비해, 민간의 힘으로 어렵게 어렵게 꾸리면서도 남달리 애착을 갖으며 자신의 호주머니를 털 줄 아는 서해의 법성포단오제도 14일 10시 법성포의 진산 인의산 팔각정에서 산신제를 시작으로 3일간의 행사에 들어간다.

모름지기 제사는 엄숙한 기율속에 치러야하는 법이고 난장은 스스로를 또 다른 세계에 놓을 줄 아는 자만이 즐길줄 아는 법인데 사람들은 캐캐먹은 단오제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현란한 음악과 춤이 있는 곳에 더 많은 사람이 보인다. 하지만 그곳에는 대부분 말초적인 감정만 치달을 뿐 돌아서 나오면 아무것도 쥔 것이 없어 보인다. 퇴적물에 의해 묻혀져 가는 법성포의 포구처럼 서해의 법성포단오제가 잊혀져 갈까 두렵기만 하다.

덧붙이는 글 | 2001년 법성포단오제와 관련한 프로젝트를 수행한 적이 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밀려드는 생각은 이런 아름다운 전통들이 대중성을 동반한 미디어에 의해 함락될 것이 두려웠습니다. 그 떨렸던 순간을 기억하며 몇일 전 법성포를 다녀와 글을 올립니다.

덧붙이는 글 2001년 법성포단오제와 관련한 프로젝트를 수행한 적이 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밀려드는 생각은 이런 아름다운 전통들이 대중성을 동반한 미디어에 의해 함락될 것이 두려웠습니다. 그 떨렸던 순간을 기억하며 몇일 전 법성포를 다녀와 글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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