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으로서 살아가기 힘겨운 사회

고리키의 <그들도 한때는 인간이었다>

등록 2002.06.13 13:23수정 2002.06.13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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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누구십니까?" 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까. 여러 종류의 답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지닌 직업이 될 수도 있으며, 소속된 조직, 부의 척도, 살아가고 있는 지역, 학벌 등 다양한 기준을 지니고 자신을 설명해 낼 수 있을 테니까.

그러나 이러한 인식의 바탕에는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구조적인 비극이 숨겨져 있다. 우리 사회는 하나의 인간을 끊임없이 해체한다. 우리가 소속된 조직의 성격, 혈연, 부, 직업, 지위 등의 요소로 인해 우리는 끊임없이 찢겨진다. 그리고 우리는 찢겨진 조각을 통해 평가된다. 그 속에서 우리가 각기 완성된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존엄성은 사라지고 만다. 다만 부자와 빈자, 성공한 이와 그렇지 못한 이, 권력을 지닌 이와 그렇지 못한 이가 존재할 뿐이다.


막심 고리키의 작품 <그들도 한때는 인간이었다> 는 바로 이러한 사회가 지니는 비정함과 슬픔을 그려낸 작은 우화이다. 주인공 아리스티드 쿠발다와 그의 동료들은 사회적인 기준으로 볼 때 완벽하게 실패하고 타락한 존재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인간미를 지녔고,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이들이다. 신의 존재에 대해 고민할 줄 알고, 사라져야만 하는 것들에 대해 슬픔을 지닐 줄 아는 존재인 것이다.

그러나 고리키는 그들에게 행복한 결말을 선사하지는 않는다. 결국 주인공 쿠발다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존재인 페투니코프의 야욕에 의해 체포되고 만다. 상인 페투니코프는 성공한 존재이지만, 그가 자신이 원하는 부를 쟁취하기 위해 벌이는 행위는 너무나 비인간적이며 잔혹한 것이었다. 고리키는 사회적인 성공을 위해 끝없이 잔혹해지는 인간과 그로 인해 벌어지는 비극을 이 소설을 통해 보여준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비극을 본다. 성공하기 위해서, 때로는 생존하기 위해서 우리는 자신의 인간성을 포기해야 할 때가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타인의 인간성마저 무시하고 파괴하는 행위에 동참해야 하는 생길 수 있다. 그 순간 우리는 스스로 인간이기를 포기해야 하며, 또한 타인의 인간성을 파괴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회적인 성공의 신화는 이 모든 것을 정당화한다. 오히려 자신과 타인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이들은 미숙하고 어리숙한 바보가 되고, 약삭빠른 이들이 존경받는 사회가 다가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두려워질 때가 있다.

고리키는 이러한 사회의 비극을 냉철한 눈으로 바라본다. 정규교육을 받지 못하고 11살부터 스스로의 생계를 해결하며 힘겨운 삶을 살아야 했던 고리키의 고민이 이 소설속에 잘 드러나 있다. 그는 사회적인 성공을 위해 자신과 타인의 인간성을 파괴하는 이들의 행위를 냉철하게 묘사해낸다. 이야기의 마지막 장면에 제시된 상인 페투니코프와 끔찍한 몰골의 노인과의 대화에 이러한 고리키의 의도가 잘 드러나 있다.


"당신 뭐야, 누구냐니까?"
페투니코프가 소리쳤다.


"인간이야."
그가 거칠게 대답했다. 이 거친 어조가 페투니코프를 진정시키고 기쁘게 했다. 그는 미소짓기까지 했다.

"인간이라! 당신 같은 인간도 있나?"
그는 옆으로 비켜서며 노인이 지나가도록 했다. 그는 걸어가며 천천히 말했다.


"인간도 여러 종류가 있지, 신의 의지만큼이나. 나보다 나쁜 인간도 있어. 훨썬 더 나쁜, 정말이야."

그들도 한때는 인간이었다 - 개정판

막심 고리키 지음, 서은주 옮김,
큰나무,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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