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족 불참한'생색내기용 추모행사'
전동록공대위, 미군 공병책임자고소

월드컵 열기에 가려진 '한-미동맹'의 우울한 두 풍경

등록 2002.06.19 18:08수정 2002.07.11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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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군 궤도차량에 치여 숨진 신효순, 심미선(14세·조양중 1년)양을 추모하는 '촛불추모행사'가 유가족들이 불참한 가운데 18일 저녁 미2사단 공병여단(경기도 파주시)에서 열렸다.

18일 주한 미2사단에서는 최근 미군 장갑차에 의해 희생당한 여중생들의 유가족도 참석하지 않은 '이상한 추모행사'가 열렸다. 다음날인 19일에는 그동안 사과 한마디 없었던 주한 미군 공병 책임자가 고압선 피해자인 전동록씨 유가족 등에 의해 형사고발됐다. 월드컵 8강 진출의 열기 속에 가려진 '한-미 동맹'의 우울한 현주소다.

미군 추모행사는 '생색내기용'?

지난 18일 미2사단은 한미행정협정 체결한 이래 처음 공식적인 추모행사를 열었다. 최근 경기도 양주군 56번 지방도로에서 미군 장갑차에 치여 숨진 두명의 여중생을 추모하는 행사였다. 하지만 정작 행사에 참가해야 할 사람들이 오지 않은 채 열려 '생색내기' 행사였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미군 궤도차량에 치여 숨진 신효순, 심미선(이상 14세·조양중 1년)양을 추모하기 위한 미2사단 '촛불추모행사'가 18일 오후 8시 경기도 파주시 조리읍 봉일천리 미2사단 공병여단에서 열렸다. 추모행사에는 미2사단장 러셀 아너레이 소장과 주한미군 사령부 작전참모부장 제프리 밀러 소장, 공병여단 장병 등 600여명의 미군이 참석했으며, 한국군은 무적태풍부대 장성과 장병 50여명과 피플투피플(PTP) 파주 클럽 회원 등 100여명이 함께 했다.

하지만 추모행사는 피해 가족들의 위한 자리인데도 유가족들은 오지 않았다. 또 취재진도 공식적인 행사였음에도 국내 기자로는 연합뉴스 파주주재 기자에게만 초청장을 보냈으며, 외신 기자는 로이터TV, 성조지, AFKN 등 몇몇만이 참여했다. 미군부대의 경우 초청장이 있어야 취재할 수 있는 여건을 감안한다면 사실상 국내기자의 취재를 기피했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이에 주한미군사령부 김영구 공보관은 "비극적인 사건이다 보니 추모식을 경건하고 엄숙하게 진행하기 위해서 몇몇 기자들에게만 취재를 부탁했다"면서 "많은 취재기자를 부를 경우 생색내는 행사로 비쳐져 오해를 살 수 있지 않을까하는 측면에서 주한미군측에서 논의된 의견을 고려한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김 공보관은 "유가족에게 조그만 마음의 진심 어린 성의로써 촛불추모행사를 준비하고 참여를 부탁했지만 아쉽게도 참여하지 않았다"며 "이날 미2사단장이 외신기자(방송)들과의 인터뷰에서 'Apologize'라는 표현을 써가며, 공식적으로 처음 사과했다"고 전했다.


▲ 연단옆에 놓여진 희생자의 영정 사진.

▲ 미군 병사들이 6월 13일 미군 궤도전차에 깔려 숨진 여중생들의 영정앞에 촛불을 놓고 있다.

미군 측이 밝힌 이날 행사 목적은 ▲비참한 참사를 당한 가족에 진심으로 조의를 표하기 위해 ▲유족들을 만나게 해서 조의를 표하는 기회를 장병들에게 주기 위해 ▲가까운 우방으로서 한국과 미국이 계속 친근한 관계를 유지함을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한다.

하지만 유일하게 한국기자로서 추모행사를 취재한 <연합뉴스> 김명섭 기자는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행사를 통해 공식적인 사과를 들은 적은 없다"며 "유족들이 참여하지 않는 추모행사라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고, '공식적인 사과'라면 국내 언론을 통해 우리 국민들에게 전해줘야지 외국으로 보도돼 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라고 지적했다.


피해자 신효순 양의 유가족 신현기(41·삼촌)씨는 "추모제가 있다는 것을 일방적인 통보식으로 전해왔다"며 "사고에 대한 명확한 조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상황에서 누가 참석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신씨는 또 "정식으로 사과하려면 국내 기자들이 참석한 공식적인 자리를 통해 유가족과 한국 국민들에게 사과하라"고 주장했다.

미2사단의 가진 '촛불추모행사'에 대해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상임대표 문대골)의 이소희(30) 사무국장은 "주한미군 측이 그동안 보도자료나 구두로 유감의 뜻을 표현한 것은 수준 이하이며, 형식 자체를 맞추는 데 급급한 행동"이라며 "생색내기 식의 행사와 단순히 유족들의 마음을 달래보려는 식의 사과는 상처입은 유가족에게 또다시 상처를 주는 것이기 때문에 유가족과 시민단체가 참여한 공동 조사단을 구성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고인의 죽음은 새로운 싸움의 시작"
고 전동록씨 과실치사 미군책임자 고소


▲ 오전 10시 서울지방검찰청 기자실에서 열린 기자회견. ⓒ 오마이뉴스 권박효원

한편 '주한미군 고압선 피해자 전동록씨 문제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는 6월 19일 오전 10시 기자회견을 열고 미군 책임자에 대한 고소장을 서울지방검찰청에 제출했다.

관련기사
미군 고압선 피해 전동록씨 끝내 사망

이날 고 전동록씨에 대한 과실치사 혐의로 고소된 책임자는 미군 제2사단 공병여단(캠프 하우즈) 해롤드 엘 샤펠 대령과 미제2사단 시설공병대(캠프 자이언트) 바이론 에프 네트아워 2세 공병대장.

고인을 죽음으로 몰고 간 2만2900볼트 고압선은 지붕으로부터 불과 2.3m 거리를 두고 설치되었으며 전신주도 우측으로 기울어 전선이 수평을 유지하지 못하도록 방치됐다. 공대위는 "총 5∼6회에 걸쳐 전선로 철거와 전선 수직 상승 등 안전대책을 요구했으나 미군 측은 최소한의 안전표지판조차 설치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미군의 행위는 전선이 건조물로부터 3m 이상 이격거리를 두고 설치되어야 한다는 기술기준 제 140조 제1항 2조와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안전하게 전기공작물을 소유·관리하여야 한다는 전기설비기준 산업자원부 고시 제 1999-22호를 어긴 것이다.

문제는 공무집행중 범죄에 대한 1차적 형사재판권을 미군당국에 귀속시킨 소파 협정 제 22조. 조항에 따르면 상대국의 요청이 있을 경우 재판권 포기가 호의적으로 고려될 수 있다.

▲ "영정을 바라보며 잠을 못 이루는 어머님을 보면서, 불과 며칠 뒤 일어난 여중생들의 죽음을 보면서 주권국가의 국민으로써 이 상황을 두고볼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유족을 대표해 고소장을 낸 전동록씨의 아들 전민수씨의 옷에는 아직 하얀리본이 달려있다. ⓒ 오마이뉴스 권박효원
공대위는 "이 사건은 그 피해가 심각하고 유사사건의 재발 방지가 절실히 필요하다"며 "형사재판권의 실효성을 확보를 위해 법무부가 공식적 1차적 재판권 포기요청을 해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공대위는 또한 해롤드 엘 샤펠 대령이 오는 6월 말 임기를 마친다는 것을 감안해 피고소자에 대해 출국금지요청을 제기했다.

공대위 김현경 사무처장은 "현실적으로 힘든 싸움이지만 공무중 사고로 형사 고소한 이번 시도는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공대위는 사회 여론 환기를 위한 홍보활동과 집회 등을 지속적으로 펼쳐나갈 계획이다.

한편 공대위는 경찰청장, 경기도지방경찰청장, 일산경찰서장, 용산경찰서장을 전동록씨의 아들 전민수씨와 장례위원에 대한 폭행 혐의로 고소했다.

공대위에 따르면, '건설노동자 전동록씨 죽인 주한미군 응징 규탄대회'와 노제에 참가한 시민단체 활동가들은 용산경찰서와 일산경찰서 소속 의경 및 경찰들이 휘두른 방패나 쇠파이프에 맞아 전치 2~3주 상해를 입었다. 또한 고 전동록씨 노제 과정에서 상주와 문상객의 출입을 막는 등 장례식을 방해하고 운구행렬을 가로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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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대통령실 마감하고, 서울을 떠나 세종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진실 너머 저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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