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도 무더운 날씨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등짝에서 땀이 비오듯한다. 오 교시, 창문을 열어 놓아도 바람 한 점 들어오지 않는다. 아이들은 의자 밑으로 녹아 내린다. 눈은 풀려 생기가 하나도 없고, 온 몸이 풍선처럼 아무렇게나 흔들린다. 선풍기조차 달려 있지 않은 교실의 찌는 열기. 수업을 하는 나도, 수업을 받는 아이들도 다 지쳐 쉬어터진 목소리로 짜증만 늘어가는 오늘의 교과 내용은 교육과 관련된 한자어들이다.
"일년의 계획은 곡식을 심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고, 십 년의 계획은 나무를 심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고, 백년의 계획은 자식을 가르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다…."
아이들은 내 얘기를 듣는지 마는지 전부 늘어져 있다. 몸을 비비꼬는 녀석은 그래도 나은 편이고, 어떤 녀석은 아예 책상을 침대쯤으로 아는지 침까지 흘리며 자고 있다. 내 목소리조차 더위에 엿가락모양 늘어붙고 있다.
"교육은 국가백년지대계야라(敎育,國家百年之大計也). 이 말은 교육이 한 나라의 미래를 좌우할 만큼 중요한 일이라는 뜻이다."
말이 끝나자, 한 녀석이 무어라고 중얼거린다. 가뜩이나 더위에 짜증이 치밀어 오른 나는 버럭 소리를 지른다.
"누구야? 누가 쭝쭝거리는 거야?"
그 바람에 엎드려 있던 아이들이 부시시 일어난다. 눈을 부비는 녀석도 있고, 고개를 휘휘 젓는 녀석도 있다. 무슨 트집을 잡히지나 않을까 하는 표정들이다.
"누구냐니까?"
나는 더욱 화를 낸다. 그러자 구석자리의 한 녀석이 엉거주춤 일어선다.
"저, 전데요."
얼굴이 핼끔한 게 보아하니 내성적인 녀석임에 틀림없다. 삼학년치고는 어울리지 않게 아직까지도 솜털까지 보송보송하다.
"뭐야? 뭐 할 말 있어?"
"그, 왜, 선생님이 지금 교육이 국가의 백년 앞을 좌우하는 중요한 거라고…."
더듬거리는 녀석의 표정이 밉지 않아 나는 그만 피식 웃고 만다.
"그렇지. 교육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말이지."
내 웃음에 비로소 자신이 좀 생겼는지, 녀석은 딱 부러진 말로 제 생각을 주워섬긴다. 다른 아이들도 모두 귀를 기울인다.
"정말 교육이 국가의 백년 앞을 내다보는 일이라면요, 우리나라의 백년 앞은 보지 않아도 뻔할 게 틀림없어요."
"왜애?"
아이들도 모두 궁금한 표정이다.
녀석은 이제 자신만만하다.
"생각해 보세요. 이렇게 찜통 더위에 공부는 무슨 공부예요. 부모들 회사에는 사무실마다 에어컨이 있다는데, 미래의 주인공이라는 우리들이 배우는 교실에는 선풍기 한 대 없잖아요. 제 동생은 학교 화장실에 가면 똥이 안 나온대요. 너무 지저분해서요. 이러고도 백년 앞의 우리나라가 잘 될 수 있겠어요? 교육 환경이 이런데 말예요. 우리들은 모두 삶은 돼지처럼 푹푹 익어가는데, 아 그리운 에어컨."
녀석의 마지막 말에 우리는 모두들 폭소를 터트렸고, 그 녀석 때문에 그날 수업은 더위를 가실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날 수업의 내 마지막 마무리는 이랬다.
"그래, 우리 교육 환경을 보면 백년 앞으로 우리나라도 뻔하겠지. 그렇지만 단 하나의 조건 때문에 우리나라의 앞날이 희망적이라고 나는 믿는다. 바로 너희들의 생각, 아까 저 녀석처럼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너희들의 힘 때문에 백년 앞의 우리나라가 그래도 지금보다는 나아지지 않을까?"
일상의 암울하고 답답한 삶을 여유로 눙칠 줄 아는 아이들이 있는 한 우리의 내일은 가끔 흐리고 대부분 쾌청,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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