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혁의 소리산책>

번외편 - 여름에 듣기 좋은 음반<3>

등록 2002.06.26 09:32수정 2002.06.26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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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할 음반은 하드밥의 거장 진 애이먼스가 1962년 발표한 라틴풍미의 이색작 'Bad! Bossa Nova'입니다.

재즈라는 음악은 리듬의 미학이다. 물론 멋진 멜로디를 지닌 곡들도 많지만 대부분의 재즈광들이 재즈에 매료되는 것은 아마도 싱코페이션을 통한 독특한 박자감과 진솔하게 호소해오는 즉흥연주에 매료되는 것이 아닐까라는 추측을 낳게된다.


1960년대 초에 불어닥친 보사노바와 라틴의 열풍은 재즈에 깊게 그 자리를 잡아갔다. 그러나 보사노바나 라틴의 그 원초적인 의미로서 받아들인 것이 아닌 이종의 진화를 꾀하게 된다. 즉 보사노바가 지닌 특유의 리듬을 받아들인 것이며 이는 보사노바라는 장르의 가장 특성이라 할 수 있는 멜로디 중심의 구조를 받아들인 것은 아니며 라틴 역시 그 특성만을 선별하여 재즈적인 어법으로 승화시켰다고 할 수 있겠다. 이런 것이 항상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낸 것만은 아니지만 때때로 기상천외한 명연을 만들어 내기도 하였다. 그런 좋은 예가 있기에 지금 소개하려 한다.

본작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있는 진 애이먼스는 1925년생으로 시카고에서 태어나 1974년 죽음에 이르기까지 시카고를 거의 떠나지 않았던 시카고의 토박이로 벤 웹스터, 쟈니 그리핀, 죠 헨더슨 등과 정통적인 하드 밥계의 거장으로서 화끈한 성격으로 그리고 중후하고 남성적인 톤의 색소폰으로 후대에 숭앙받는 아티스트이다.

그는 1950년대 초부터 특급의 아티스트로 자리매김하게 되었고 블루스의 영향을 깊게 받았지만 장렬하게 배열되는 그 음의 단절이 분명한 블로잉으로 시카고 재즈의 이름을 드높이게 된다. 1962년 발표된 이 음반은 1961년부터 이 음반을 발표할 때까지 무려 20매 이상의 음원을 녹음하고 발표된 음원이다. 이는 당시에 격렬한 연주에 지쳐있던 진 애이먼스가 쉬어가는 의미로 녹음했다고 전해지는 작품이다.

세션을 살펴보자. 색소폰에는 진 애이먼스, 피아노에는 여지까지도 활동을 하고 있는 행크 존스, 기타에는 두 명을 배치하여 버키 피짜렐리와 케니 버렐이다. 거기에 드럼과 봉고까지 가세한 멋진 리듬의 향연을 기대할 수 있다.

첫 곡 Pagan Love Song부터 이런 기대는 실현된다. 버키 피짜렐리의 미풍같은 어쿠스틱 기타와 콩가가 그려내는 달콤한 리듬과 평소의 중후함을 다소 제거한 듯한 연질의 색소폰소리부터 심상치가 않다. 리듬의 소스는 보사노바 그 위에 얹혀있는 끈끈한 멜로디의 상호결합이 화려하다.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라틴풍미의 리듬파트에 오히려 이완되고 있는 색소폰 연주와 여유로운 스패니쉬 기타가 흐르는 10분에 육박하는 대곡 Ca'purange(Jungle Song)은 상반된 정서의 전달이 흥미로운 연주로 변하는 점이 재미있다. 이는 후일의 라운지 계열의 수법과도 동일한 것이다.


그러나 키치적인 미감이 제거되어 있는 진짜 프로들의 연주로 이런 연주적 어법이 나온다는 것이 신기하다. 쿠반계의 단촐하지만 흥이 나는 연주가 담겨 있는 이어지는 두 곡 Anna와 Cae Cae. 이 두 곡에서 진 애이먼스를 비롯한 나머지 모든 사이드 맨들의 스윙감이 약동하는 화려한 솔로들을 맛 볼 수 있다.

특히 Cae Cae의 중간에 삽입되어 있는 행크 존스의 물흐르는 듯한 스윙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흔치 않을 것이다. 신명나는 연주들 뒤에 이어지는 중간 템포의 곡은 Moito Mato Grosso는 당시에 재즈계를 휩쓸던 큐반계열의 타악기적인 진행을 보이는 멜로디를 그리고 있다. 음반의 대미를 장식하는 곡은 Yellow Bird. 흥겨운 타악기의 연주들과 중간중간 알싸하게 양념처럼 흐르는 스패니쉬 기타, 무엇보다도 흥에 겨운 것이 눈에 보이는 듯한 진 애이먼스의 탁월한 연주가 멋진 곡이다.


이 시대 미국인들의 노스탤지어는 40년대의 남미였다. 오죽하면 영화에서도 "살아있다면 리오에서 다시 만나자"라는 명대사를 읊었겠으며 멜 토메, 냇 킹 콜같은 거장들이 라틴을 해석하여 녹음했을까?

이 음반은 분명 진 애이먼스의 굉장한 이색작이다. 테너 색소폰의 보스(Boss Tenor)라는 별명까지 가진 그가 이리도 힘을 뺀 여유로운 연주로 일관한다는 것이 어쩌면 이질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분명 이는 당시 미국인들의 노스탤지어를 음악으로 구현한 것이었다. 이 음반의 제목에 달린 단어는 분명 Bad지만 청취의 느낌은 Not Bad 아니 오히려 Good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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