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노동 사이 잇는 시인 최종천

등단 후 첫 시집 묶은 <눈물은 푸르다>

등록 2002.07.04 10:20수정 2002.07.07 0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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찜통 더위 속을 벗어나 탑골공원 담벼락을 도니 오후 그늘이 있다.

저녁 7시 약속인데 늦으면 어이하나 조바심은 커지고 시계를 보니 벌써 5분이 넘었다. 뙤약볕을 피해 오후 약속을 정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계절. 여름은 여름다워야 한다는 것이 자연의 순리다. 애써 땀을 닦지 말고 흘러내리도록 하라. 물에 씻으면 더욱 살갗이 탄다고. 잠시라도 더위를 참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환장할 소리인가 싶지만, 다 인간이 저지른 대가라 생각하면 그리 원통해 할 일도 아니다. 그래서 우리 집엔 선풍기가 아직 없다.


향 가게 들러 시원한 감로차 한 잔 마시니 눈이 맵다. 속으로 은은하게 퍼지는 기운을 담아 인사동 '시떼'로 들어서니 시인은 벌써 냉커피 한 잔 비우고 있었다.

질긴 부드러움이 느껴지는 최종천 시인
질긴 부드러움이 느껴지는 최종천 시인김명신
까맣게 그을린 얼굴, 세상을 순하게 살았구나 하는 인상이지만 질긴 힘줄이 몸으로부터 풍겨나온다. 아마 길을 가다 최 시인을 만난다면 사람들은 그가 시인이라 여기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평범한 인상이다. 올 1월 이성선 시인을 추모하는 자리에서 봤는데, 벌써 반년이 흘렀다. 그 사이 일 탓인지 얼굴이 야윈 듯하다. 그러고보니 시인의 보물이 나온 것도 어림잡아 반년이 지났다. 등단 10년이 훨씬 넘어 한 권의 시집을 내놓은 최 시인.

그를 여느 인터뷰 장면처럼 대하고 싶지 않아 세상 사는 이야기나 해보려고 나섰다.

얼마 전 신동엽 창작기금 수혜자로 알려져 중앙일보를 비롯한 몇 매체에서 인터뷰 요청이 있었다고 담담하게 말하는 최 시인은 김우창 교수-그의 시집에 해설을 만들어주신-는 그의 시를 일러 "예술과 노동 사이를 잇는 시"라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그의 시집은 겉표지부터 시 제목을 연상케 한다.

일상이 바빠 한 번인가 통독을 한 후, 시인과의 이야기를 위해 한 번 더 읽게 되었다. 그러면서 그에게 묻고픈 말의 우선은 "시어"였다.

- 시집 전체에서 자주 쓰이는 어휘가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고독','죽음','희미하다'라는 시어인데요. 어떤 이유가 따로 있나요?
"특별히 좋아해서가 아니라 쓰다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가령, '고독'이란 시어를 보면 사람들이 '외로움'이란 말과 혼동해 쓰는데 그건 잘못된 표현입니다. 참된 고독은 인간 존재의 모순을 깨달을 때 생겨나고 결국 '고독'은 '깨달음'을 이야기한다고 할 수 있죠."


- 그렇다면, 고독하지 않으면 행복하다라는 명제를 보면 시인 자신이 생각하는 '행복'의 의미는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참 많이 행복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하지만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불행하다라고 말하는 거나 같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에서 보면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합니다. 사회와 타인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행복이지, 남과 비교되는 행복은 진정한 행복이라고 말할 수 없지요. 그런 의미에서 행복은 의무입니다. 일상에서 아주 사소한 것, 즉 작고 조용한 것이 모두 행복이죠. 그래서 전 혁명을 믿지 않습니다. 순수하고 정직해야 혁명을 이룰 수 있는데, 혁명을 이루려는 사람이 그렇지는 않기 때문이죠."

- 자신을 '노동의 시인'이라고 말하는 데, 80년대 노동자시인으로 대표되는 박노해 시인과는 어떻게 다른지요?
"박노해 시인이 '시대'를 노래했다면, 전 '인간'을 노래합니다."


- 그렇다면 '노동'을 어떻게 정의하십니까?
"노동은 인간이 추구해야할 것이라고 봅니다. 예술이나 문화가 아니라, 기계의 노예가 되어버린 인간이 기술을 실천할 수 있는 것이 노동이지요. 원래 기술과 예술이 하나가 되어 노동을 이뤘는데, 산업화되어오면서 진정한 노동은 소외되었다고 볼 수 있지요. 결국 기계에게 빼앗긴 것을 인간 스스로 해야 진정한 노동이라고 봅니다."

주위는 점점 어두워져갔고 이야기는 점점 사회학의 관점으로 돌아서고 있었다. 너무 무거운 분위기가 아닌가 싶어 그의 일상으로 말꼬리를 돌렸다.

- 요즘 바쁘실텐데 어떻게 보내세요?
"뭐 일하지요. 한 달에 15일 넘게 일하니까. 하루에 8시간 일하는데 대부분 용역을 통해 나갑니다. 일종의 프리랜서라고 할 수 있지요.
(쑥스러워하며 하루 임금을 여쭸더니 아무렇잖은 듯) 8만원이에요. (적절하다고 생각하느냐 했더니) 만족합니다. 잔업까지 하는 경우엔 하루 11시간을 일할 때도 있지요."

- 일하지 않을 때는 어떻게 보내십니까? 독서량이 참 많다고 들었는데요.
"책이야 많이 보지요. 한 달에 두 권 정도는 읽으니까. 생물학, 종교, 철학 쪽을 주로 읽습니다. 책을 읽으면 어디 돌아다니지 않아서 좋고. 다른 일을 생략하게 합니다. 글을 쓰니까 더없이 좋지요. 책을 읽다가 노트하거나 시상으로 옮기지요. 음악도 자주 들어요. (어떤 음악을 주로 듣냐는 질문에 시인은) 주로 하이든의 현악 4중주와 베토벤의 피아노, 바이올린 소나타, 모차르트를 들어요. 이들을 각기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베토벤은 기하학적 음악이에요. 무의미의 음악이라고 할까. 매우 논리적이죠. 모차르트의 경우는 수선스럽다고 할 수 있지만 그의 천재성은 피아노음악에서 발휘됩니다. (우와 탄성을 지르자, 살포시 웃으며 시인은 음악에 조예가 깊다고 스스로 말한다.)"

- 청소년을 '비쥬얼시대'라고 말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인간의 본질은 생각하고 반성하는 것에 있습니다. 비디오물은 사고를 중지시키지요. 게다가 아이들은 생각하는 것을 잘 못합니다. 비디오는 그저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니까 쉽고 좋지요. 하지만 책은 사고를 해야 하는 불편함이 따르죠. 그러니 어디 흥미를 갖을 수 있나요.

집에서 부모가 책을 읽는 모습을 보여줘야합니다. 그러다보면 습관이 생기면서 차츰 책을 보게 될 겁니다. (청소년에게 권해주고 싶은 책이 있다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신곡(단테)"이 있어요. (너무 어렵지 않나요?) 몰라도 읽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읽다보면 저절로 알게 되거든요. 요즘 육체적 쾌락에 더 빠져 있는데 사실은 지적쾌락이 더 재밌습니다. 육체적 쾌락은 지치게 하지만, 지적 쾌락은 지치지 않거든요."

자리를 옮겨오면서 화제가 바뀌었다.

- 시집에서 남달리 애정이 가는 시가 있나요?
"'고호의 귀', '쥐', '말뚝', '집', '물노래', '날개'(이유가 있냐는 질문에) '고호의 귀'는 '예술가의 필연적 비극'을 나타내고자 했고, 쥐, 말뚝, 물노래의 경우는 80년 5월 민중항쟁을 경험하며 썼어요. 결국 구체적 경험이 바탕이 되어 씌여진 시라 더 사랑스러운것이지요."

- 창작하는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열심히 하라는 겁니다. 이 말처럼 간단하고 함축적인 말이 없지요."

- 신동엽 창작기금 수혜자이신데요. 그 기금을 어떻게 쓰실 건가요?
"(중앙일보에서 그는 지금 하는 일을 접고 당분간 글 쓰기에 전념하고 싶다고 했다) 겨울이면 일이 없는데 딱 좋은 일이지요. 일 없는 동안 열심히 글써야죠."

시간은 세 시간을 넘어서고 있었다. 엉뚱하게도 집으로 가는 길목에서 그의 창작에 영향을 미친 작가들이 알고 싶었다. 그는 서슴지 않고 다무라 류이찌, T.S.Eliot, John Dan, 김수영, 박목월, 신동엽을 말한다. 이번에 수혜자가 된 것도 어쩌면 그의 작품 어딘가에 신동엽의 시 정신이 녹아 있어서가 아닐까 한다.

앞으로 산문집-신변잡기류가 아닌 중수필(에세이)-과 창작과 비평사에서 시집을 낼 예정이라고 한다. 그의 주제 '노동·예술·문화'를 잘 버무려서 만든 그의 창조물이 인간에게 참된 고독, 진정한 노동을 알게 하고, 사회와 타인을 행복하게 만들어 행복이 의무임을 느끼길 바란다.

된장을 좋아하고, 겨울 길거리 붕어빵을 말없이 사다주는 배려는 혼자면서 혼자가 아닌 시인만의 행복한 그림이다. 우스개말처럼 좋은 사람 소개시켜달라는 말에 그가 혼자였다는 것을 인식한다. 시인도 이젠 혼자이고 싶지 않은가보다. 어떤 여자면 되냐는 말에 "너무 이쁘지 않고, 너무 착하지 않고, 생각할 줄 아는 여자면 된다"고 한다. 참 어려운 말이지만, 사랑이라는 것이 어디 말로 되는 것이랴.

인간이 자연에게 얻은 것을 온통 멍으로 물들이고 있는 요즘, 그의 시정신이 사람들 영혼을 맑게 해주었으면 한다. 오토바이를 타고 가겠노라며 손을 드는 시인의 뒷모습은 보지 않았다.

요즘 쓴 시 하나를 소개하자고 한다.

털옷

헌 털옷을 풀고 있다
천천히 당기다가
갑자기 빨리 당겨보기도 하여
한번쯤 끊어질 만도 한데
당기면 당기는 대로
술술 잘 풀리더니

결국에는
아무 것도 남기지 않고
쥐고 있는 손을
부드럽게 빠져나간다

무슨 흔적이라도 남았는가
손을 펴 보나
드러나는 것은
하얀 손바닥뿐이다

나는 얼마나 풀려 나갔을까!
이제부터 나의 할 일은
생각의 뜨개질로
풀리지 않는
털옷을 짜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최종천 시인>

1954년 전남 장성에서 태어남
1986년 『세계의 문학』, 1988년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
2002년 3월 첫 시집 『눈물은 푸르다』(시와시학사) 펴냄
2002년 신동엽 창작기금 수혜자

덧붙이는 글 <최종천 시인>

1954년 전남 장성에서 태어남
1986년 『세계의 문학』, 1988년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
2002년 3월 첫 시집 『눈물은 푸르다』(시와시학사) 펴냄
2002년 신동엽 창작기금 수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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