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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가 있고, 또 요즘에는 인터넷으로 보내는 메일이 있어 종이 편지가 많이 줄었다고 한다. 나 역시 종이 편지를 써 본지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오래되었다. 그런데 어제 나는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몇 번을 주저하다가 염치 불구하고 펜을 드네'로 시작되는 편지는 '직접 말하는 것이 예의인줄 알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아 편지로 대신하는 옹색함을 이해해 주기 바란다'면서 이어진다.
'형이 최근 여러모로 말이 아니며 인생에 있어 최대 고비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사업상의 어려움이 크다'면서 '사정이 허락한다면 1-200만원만 급히 융통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이런 편지를 몇몇 지인들에게 보낸다는 말도 덧붙여 있고.
'또한 이런 해서는 안될 부탁으로 자칫 서로간의 우의를 훼손할지도 모른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도움을 청하는 형의 긴박함을 헤아려 주고, 융통이 가능하지 않다면 추호도 염두에 두지 말고 부담 갖지 말라'는 간절한 내용이었다.
편지를 보낸 사람은 내가 가장 좋아하고 존경하는 지방에 사는 형이다. 매년 여름 나의 휴가 때가 되면 그곳에서 그 형과 나의 친구들 몇 명이서 밤새워 회포를 푸는 그런 형제와도 같은 사이이기도 하다.
엊그제 "휴가가 언제이니 형 집에서 만납시다"라며 형과 형수에게 전화했는데 그때는 말로 못하고 편지로 썼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진다.
학생운동부터 시작하여 감방에 가는 것을 밥먹듯이 했고, 그 이후에는 룸펜운동이 당연시 되던 그 시절에도 생활인으로서의 삶과 운동을 병행하고자 했던 선구자적인 형. 일이 끝나면 백수인 우리들에게 '술 고프지' 하면서 동태찌개에 소주를 사주던 형. 그것도 모자라 집에까지 데리고 가서 밤새워 삶과 운동에 대하여 토론을 벌이고, 아침에 속이 쓰려 일어나 보면 어느새 형은 생활인으로 일터로 나가고 없었다.
사람이 좋으니 따르는 후배들도 많고 아끼는 선배가 많아 공동으로 사업을 하자는 제의를 많이 받았으나 공동으로 사업을 하다 사업이 잘되면 그 사업을 공동으로 투자한 그 사람이 형을 밀어내고 독차지 하고, 사업이 잘 안될 것 같으면 자기 지분 빼내고 형에게 떠넘기기를 몇 차례 당하고 나니 하는 사업이라고는 안 되는 것밖에 없더니 그 어려움이 이제 쌓이고 쌓여 한계에 도달한 것 같다.
조금 있으니 이번 휴가 때 만나기로 한 다른 지방에 사는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형 편지 받았느냐고? 자기도 받았다고. 돈을 바로 보냈단다. 그런데 친구아내는 약간 떨떠름 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친구가 그런다. 집사람은 우리와 생각이 다르더라고.
그럴 것이다. 우리와 형과의 관계와 형과 우리 아내들과의 관계는 다름이 분명하다. 언젠가 누가 그랬다. 산다는 것은 곧 관계하고 있는 것이라고. 남편과의 관계로 맺어진 다른 사람과의 관계는 물론 다를 것이다.
오늘 나는 마이너스 통장에서 약간의 돈을 빼내 보냈다.
그리고 이번 휴가에 그곳에서 형과 친구들을 만나 회포를 풀 것이다. 또한 그날 만나기는 하지만, 차마 형이 편지를 보내지 못한 몇몇 친구들의 통장도 털어 형에게 전달할 것이다.
지금은 어렵지만 언젠가는 형이 지난날 우리들의 왕초(?)로 밥 먹여주고, 술 사주고, 재워주고, 의식을 깨우쳐 주고, 삶의 목표를 제시 해준 우리들의 영원한 형으로 다시 설 것을 굳게 믿으면서 말이다.
형, 형수님 힘내세요!
우리가 있어요.
덧붙이는 글 | 형의 편지를 받고 가슴이 먹먹함을 느꼈습니다. 편지를 읽고 또 읽었습니다. 한줄 한줄 행간에 감쳐진 형의 눈물도 보았습니다. 그러나 형 우리가 있습니다.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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