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보다 진상규명이 우선

여중생 장갑차 살인사건 - 한미당국 사건 무마 진땀

등록 2002.07.07 16:46수정 2002.07.11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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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소희

미군 장갑차 여중생 살인사건이 7월 4일 주한미군 사령관의 사과와 사고 차량 운전병 Walker Mark 병장과 관제장교 Fernando Nino 병장을 지난 3일 미 군사법원에 기소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소식을 접한 유족들과 마을 주민들은 일단 환영하면서도 그것으로 만족할 순 없다는 분위기다.

7월 4일 마을 생긴 이래 최초로 주민 궐기대회 가져

지난 4일 오전 10시 경기도 양주군 광적면 효촌리 사고 지점 맞은편 공터에서는 마을 주민들의 궐기대회가 열렸다. 이번 궐기대회는 마을이 생겨난 이래 처음으로 열린 집회로, 유가족들을 비롯해 효촌리 마을 주민 150여명이 참석했다. 그밖에 양주군 군수, 군 의원, 한국군 관계자 등도 참석해 이번 집회에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집회 현장에는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경찰병력이 배치되었지만 어린 딸자식을 잃은 부모의 성난 마음은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약식 집회 후 10시 30분경부터 시작된 행진은 트랙터를 앞세우고 왕복 2차선 도로를 점거한 채 사고 당시 미군의 중간 집결지로 사용되었던 인근 덕도리 훈련장(삼거리 진지)까지 이어졌다. 2차선 도로를 점거하는 과정에서 1차선만 내주려는 경찰측과 주민들간의 마찰로 행진이 잠시 중단되기도 했다.

a 고 심미선, 신효순 학생의 영정을 들고 궐기대회에 나선 효촌리 주민들

고 심미선, 신효순 학생의 영정을 들고 궐기대회에 나선 효촌리 주민들 ⓒ 이소희

이후 주민들은 11시 50분경 훈련장 내에서 정리집회를 갖고 7월 15일까지 주민들 요구에 대한 한미 당국의 성의있는 답변이 나오지 않으면 면단위 집회도 불사하겠다며 강한 항의의 뜻을 내비쳤다.

이날 주민들이 미군당국에 요구한 내용은 ▲진심어린 사과 ▲조속한 시일내 충분한 배상 ▲전차 통행시 사전 통보, 안전대책 마련 ▲보행자 안전 우선 ▲사고 당사자는 물론 지휘자에 대한 의법조치 등 총 다섯 가지다. 그리고, 한국 정부에는 사고 도로의 확장 및 인도 신설을 요구하고 있다.

말로만 사과, 진상조사는 뒷전


그러나 아직까지 속시원한 대답은 듣지 못하고 있다. 도로 확장의 경우 예산문제가 최대 난제다. 이날 이영세 양주군 부군수는 15억5천만원의 예산을 배정하여 우선 효촌리 마을 입구에서 효촌초등학교까지 약 2km구간에 인도를 설치키로 하여 7월중 착공 예정이라고 했다가 마을 주민들로부터 "그야말로 임시방편 아니냐"는 호된 질타를 받았다.

미군측도 다르지 않다. 일단 4일 주한미군 사령관의 사과는 매우 이례적이며, 일정한 형식은 갖췄다고 보지만 알맹이는 빠졌다는 얘기다. 사과보다 선행되어야 하는 건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일이라는 것.


7월 4일 주민 궐기대회 결의문

지난 6월 13일 오전 10시 45분경 광적면 효촌리 549-8번지 앞 56번 지방도로 갓길을 효촌리에서 덕도리 방향으로 보행하던 신효순, 심미선 어린이를 부교 괴도 차량이 무참히 죽임을 가한 사건에 관하여 죽임을 당한 어린이들의 명복을 늦게나마 빌며 그 유가족에게 심심한 애도를 효촌리 주민 일동이 드리는 바입니다.

아울러 어른으로서 책임을 통감하며 뒤늦게 우리 주민이 궐기하게 됨을 파렴치한 범죄자인 미군 당4국자는 가해 차량운전병은 물론 그 지휘체계를 가려 의법 조치함은 물론 유가족에게 만족할 만한 보상을 조속한 시일내에 조치 이행하고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며 사과하여야 할 것입니다.

겉으로는 잘못하였다 하면서도 요즘 매스컴 보도를 보면 전혀 잘못이 없다하며 죽임을 당한 어린이들이 잘못이 있는 양 오도하여 이들의 넋을 욕되이 하는 비양심적이고 파렴치한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행동으로 유족들을 우롱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우리 주민 일동은 분개하여 궐기하는 것입니다.

미군 당국자는
첫째, 미군 당국은 잘못을 진심으로 천하에 사죄하라.
둘째, 조속한 시일 내에 유가족들이 만족할 만한 충분한 대가를 보상하라.
셋째, 전차 통행 이동시 사전 주민에 통보하고 그 안전 대책을 마련하라.
넷째, 보행자의 안전을 도모하여 그 보호를 우선하라.
다섯째, 사고 당사자는 물론 지휘자도 의법 조치하라.

또한 정부 당국자에게 건의합니다.
앞으로 언제 어느때, 제2, 제3의 피해자가 발생할지 그 누구도 모르는 이 비좁고 위험한 도로를 확장하고 인도를 신설하여 보행자의 안전을 도모키 위하여 파주시와 양주군의 경계인 오현리 고개에서 효촌초등학교 경우 덕도2리(대추말)까지 시급히 확장 공사를 시행하여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듯한 즉 사선을 오가는 주민의 안전을 도모하여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여 주기 바란다.

꽃봉우리를 피우지도 못하고 죽임을 당한 신효순, 심미선 어린이는 우리 주민을 대신하여 희생된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모두 우리 어른들의 책임이기도 한 것입니다.

끝으로 다시 한번 희생 어린이의 명복과 넋을 기리며 위의 사항이 관철될때까지 우리 주민은 끝까지 지속적으로 궐기할 것을 다짐한다. 신효순, 심미선 어린이의 명복과 그 가족에게 애도와 위로를 표합니다.
미군측이 5일 발행한 미 2사단 지역사회를 위한 공보에 따르면 미군측은 5개 주요 사고 요인으로 ▲차량 탑승자들 사이에 통신이 간헐적으로 끊겨 관제장교가 운전병에게 지시를 내릴 수 없었다 ▲두 호송차량이 협소한 도로상에서 서로 다른 방향을 진행하고 있었다 ▲타 무전교신과 궤도차량의 소음 등 외부 요소들로 인해 탱크운용 장병들 상호간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했다 ▲궤도차량 외형상 특성으로 인해 관제장교와 운전병의 시야가 제한되었다 ▲사고 도로가 두 대의 넓은 차량이 서로 반대방향으로 교행하기에는 너무 협소하다는 것을 들고 있다. 결국 사고 도로의 폭이 좁고, 특히 두 대의 넓은 차량이 반대방향으로 교행하기에는 도로가 너무 좁은 걸 알면서도 무리하게 작전을 진행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인데, 그에 반해 미군측이 내놓은 대책은 사고 차량 자체의 결함, 탑승자들의 과실에 대한 것으로만 국한되어 있다. 그 어디에도 작전상의 문제나 지휘관들의 책임을 묻는 것은 없다.

지휘관 문책없는 진상조사 '어불성설'

故 신효순 학생의 아버지 신현기씨는 진상규명이 먼저고, 그 다음이 사과고, 배상은 맨 마지막이라며 말로는 사과를 하면서 정작 진상규명에는 소극적인 미군측에 분통을 터뜨렸다. 특히, 7월 8일 의정부 지청에서 미군측의 협조를 받아 미군 관련자들에 대한 소환조사를 한다면서도 6명의 피고소인중 운전병과 관제장교에 국한시킨 걸 알고 격앙된 목소리로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a 주민들이 덕도리 훈련장 앞 왕복 2차선 도로를 가로막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주민들이 덕도리 훈련장 앞 왕복 2차선 도로를 가로막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이소희

"사고 나고 안난 게 중요한 게 아니지. 어떻게 해서 사고가 나게 만들었는냐가 중요한 거라구. 사고차량이 혼자 가다 사고를 냈다면 모르는데, 분명 앞에 호송차량도 가고 있었고…. 또 어떻게 교행이 불가능한 곳에서 교행을 시켰는지도 밝혀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어떻게 한두명을 가지고 할 수 있는지. 그건 말도 안되죠."

"지휘관의 책임은 분명한 건데, 어떻게 보면 지휘관의 문제가 더 큰건데 왜 인정하지 않는지 모르겠네요. 사실 운전병은 (지휘 명령에 따라 움직이므로)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말이에요."
故 심미선 학생의 아버지 심수보씨도 답답하긴 마찬가가지다.

이번 사건의 진상규명에서의 핵심은 지휘체계의 책임을 묻는 일이다. 지금처럼 차량 탑승자에 국한된 조사로는 진실이 밝혀질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명백하다. 그럼에도 차량 탑승자에 대한 조사 결과를 토대로 미군측에 재판권 포기 요청서 전달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법무부의 입장은 국민들을 기만하는 행위다.

법무부는 더 이상 주저하지 말고 미군측에 한시바삐 재판권 포기 요청서를 전달해야 한다. 그리고 한국 검찰은 사고차량 탑승자들을 비롯해 소속 부대장, 미2사단 작전참모, 미2사단장 등 유족들이 고소한 전원에 대한 전면 조사를 벌이고 사건의 진실을 밝혀내는데 온 힘을 쏟아야 한다. 그럴 때만이 제2, 제3의 효순이, 미선이가 생겨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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