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상교전으로 긴장이 고조된 가운데 우리측 해군 고속정 편대가 30일 연평도 해상에서 작전 전개중이다.연합뉴스
6·29 서해교전 사태에 대한 책임 공방이 끊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논란의 초점이 햇볕정책에 모아지고 있다. 보수성향의 언론과 지식인, 야당 등은 연일 "햇볕정책이 안보를 망쳤다"며, 햇볕정책의 폐기, 혹은 전면 재수정을 요구하고 있다.
그렇다면 보수파들이 강변하고 있듯이 햇볕정책이 안보를 망친 것일까? 아니면 한반도의 경직된 안보구조가 햇볕정책을 망치고 있는 것일까? 이른바 '정경분리'로 일컬어지는 햇볕정책과 안보는 분리될 수 있는 것이고, 또 분리되어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오늘날 한반도의 위기가 거론되고 있는 것은 햇볕정책의 탓일까, 아니면 북한의 호응이 부족한 탓일까, 또 아니면 군사주의적 속성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는 부시 행정부 탓일까?
아마도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변은 자신이 처한 정치적, 이념적 위치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보수든, 진보든 정치적, 이념적 선입관을 가지고 햇볕정책과 안보 사이의 관계를 접근하는 것은 비생산적인 논란만 키울 뿐, 합리적인 토론이나 문제해결 방향을 모색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이념적 지향이나, 정치적 이해관계를 잠시 뒤로 하고, 정책적 평가를 시도하는 것이 햇볕정책의 성과와 한계를 제대로 짚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예상되는 한반도의 위기에 적절히 대응하고, 올 대선에서 합리적인 정책경쟁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햇볕정책에 대한 생산적인 토론을 시민사회부터 준비해야 할 것이다. 필자가 '다른 각도'에서 햇볕정책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려는 것도 커져가는 위기감에 비해 위기 예방 노력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남한 내부의 담론 형성이 제대로 되고 있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필자 역시 햇볕정책이 여러 가지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김대중 정부가 햇볕정책의 목표로 내세운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 기반 구축' 전략은 기본 가정부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왔다.
'햇볕정책' 표현부터 문제 있다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필자는 햇볕정책이라는 표현부터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해왔다. 대화의 상대를 두고 햇볕을 비춘다는 것이, 아무래도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썩 기분 좋은 말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김대중 대통령 스스로 "북한과 대화하기 위해서는 자존심을 세워줄 필요가 있다"고 말한 것과도 모순된 측면을 안고 있기도 하다.
또한 사실의 여부를 떠나 '남한이 지나치게 베푼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김대중 정부의 대북지원이 김영삼 정부 때보다 결코 많지도, 주변 국가들인 미국, 중국, 일본 등에 비할 때 턱없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퍼주기 논란'에 시달린 이유 가운데 하나도 '표현상'의 문제 때문이 아닌가 한다. 이러한 이유로 필자는 햇볕정책이나 포용정책이라는 표현보다는 '화해협력정책'이 전략적으로 더 좋은 표현이라고 주장해왔다.
어쨌든 통상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을 햇볕정책이라고 일컫는 만큼 이 글에서도 이 표현을 그대로 사용하기로 한다.
햇볕정책의 세 가지 기본 축
햇볕정책은 통상 무력도발 불용, 흡수통일 배제, 남북화해협력 증진이라는 세 가지 전제를 가지고 출발했다고 언급되어왔다. 기본적으로 옳은 방향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또 다른 '전략적인 세 가지 틀'에서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의 세 가지 전략적 틀은 '평화와 경제의 교환 전략', '튼튼한 안보'로 상징되는 강력한 방위태세 유지, 그리고 한-미-일 삼각공조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각각 남북관계, 남한 내부, 한미관계를 중심으로 한 국제관계의 측면에서 마련된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전략 방향이 '한반도 냉전구조의 해체'를 지향하는 대북정책의 목표와 적지 않은 긴장관계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평화와 경제의 교환 전략은 기본적으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북한을 돕고, 대신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줄이는 '비대칭적인 상호주의'를 의미한다. 이것이 한나라당에서 주장하는 '전략적 상호주의'와 다른 점은, 상호주의 적용의 '일관성' 및 '유연성'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전략은 근본적으로 북한의 안보 딜레마를 고려하지 못한 한계점을 갖고 있다. 즉, 북한이 남한에게 위협이 된다는 가정하에 출발함으로써, 역으로 북한이 남한이나, 미국, 일본으로부터 군사적 위협을 느끼고 있다는 점을 간과하게 만든 측면을 안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가장 근본적이고도 최우선적인 관심사는 '안보'
북한의 입장에서 볼 때, 극심한 식량난을 비롯한 경제난을 해소하고 체제 생존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남북관계를 비롯한 국제사회와의 관계개선에 나설 강한 동기를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북한이 남한의 경제지원에 대한 대가로 군사적으로 양보를 한다는 것은 적어도 '안보적' 측면에서는 기대하기 힘들 수밖에 없다.
북한의 위기는 경제적 위기 못지 않게 외부로부터의 안보 위협이 시간이 갈수록 더욱 커지고 있다는 안보위기의 측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냉전의 해체로 동맹국들을 잃고도, 기본적으로 한미일 삼각협력체제와의 군사적 대립관계는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객관적으로 볼 때도 심각한 안보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인 북한의 입장에서 이러한 환경이 개선되지 않거나, 개선될 수 있다는 확고한 믿음이 있지 않으면 군사 문제에 있어서 쉽게 양보할 수 없는 구조에 놓여 있는 것이다.
북한 군부가 강한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도 대립관계에 있는 남한, 미국, 일본의 군사동맹과 군사력, 그리고 군사 전략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는데, "왜 우리가 군사적으로 양보해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떨칠 수 없기 때문이다.
김대중 정부는 이 점을 고려했어야 한다. 대북지원 및 교류협력은 '화해·협력 및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경제협력은 기본적으로 '시장 논리'에 따라 추진하면서, 이러한 교류 협력이 갖는 안보적 효과를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군사 문제는 '상호 위협 감소'를 비롯한 '군사적 상호주의'의 관점에서 접근했어야 하는 것이다. 남한이 군사적으로 양보할 준비가 안되어 있는 상황에서 북한의 일방적인 위협 감소나 군축을 기대하기는 힘들지 않겠는가?
보수파들은 물론 국방부조차도 "햇볕정책을 통해 남북관계가 일정 정도 진전된 것은 사실이지만, 북한이 군사적으로 변한 게 없다"고 주장해왔다. 그렇다면 미국과 일본은 차치하더라도 남한은 군사적으로 변한 것이 무엇인가? 군관계자를 비롯해 대다수 안보 전문가들은 "안보는 보수적으로 판단해야 하고 쉽게 변해서는 안된다"는 것은 '상식'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상식을 북한에게는 적용하려고 하지 않는가?
마치 북한을 대변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는 주장이지만, 이러한 문제제기 및 주장은 북한을 '옹호하자'는 것이 아니라 역지사지의 관점에서 북한의 입장을 '이해하자'는 취지에서 제기하는 것이다. '페리보고서'로 잘 알려진 윌리엄 페리 전 대북정책조정관이 99년 평양을 방문하고 돌아와서 비슷한 취지에서 강조한 것처럼, '있는 그대로의 북한'이 아닌, '우리가 원하는 북한'과 대화하고 협상하려고 할 때, '우리가 원하는 결과'를 얻기가 가장 힘들다는 것이다.
"돈으로 안보를 사려고 한다"는 보수파의 비아냥거림을 인정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평화와 경제의 교환전략'은 근본적으로 비군사분야에서는 '탈냉전시대'를 지향하면서도, 군사분야에서는 냉전시대와 별 다를 것이 없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미 '불일치의 문제'를 내포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김대중 정부의 안보전략이 냉전시대의 '일방적 안보'와 크게 달라지지 않음으로써 실제 운용에 있어서도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어 왔다. 구체적인 성과가 없을 경우, 북한의 위협이 줄어들었다고 국민들을 설득하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남한의 경제 위기나 서해교전과 같은 군사적 충돌이 발생할 경우 대북정책 추진력이 총제적인 위기로 빠져들게 하는 약점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햇볕정책이 안보를 망친다"는 보수파의 공세를 무마시키는 방법으로 북한의 위협에 대해 전통적인 방식, 즉 '힘에 의한 대응'를 추구하게 되고, 이에 따라 남북한의 군사 문제가 더욱 꼬이게 되는 악순환에서 자유롭기가 힘들어지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되는 것이다.
'튼튼한 안보'의 자기 함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