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여장을 하면 웃긴다?"

개그콘서트 각종 아가씨 선발대회 유감

등록 2002.07.29 13:51수정 2002.08.01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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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녔던 과에서는 매년 신입생 환영회를 할 때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미스 독문'이라 불리는 선발대회이다. 예전에 대학에서 'MAY QUEEN'을 예상한다면, 천만의 말씀. 우리가 뽑은 '미스 독문'은 남자를 여장시켜 '미스'라는 이름을 주고 아름다움과 섹시함을 겨루는 것이다.

신입생 환영회를 하면 보통 6개 정도로 조를 나눠주고, 각 조의 장기자랑를 준비하게 하는데, 그중 많은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준비하는 사람들의 공이 많이 들어가는 것은 바로 이 프로그램이다.


과 학생회실에 있는 옛 앨범의 낡은 사진에도 아줌마 파마 머리를 한 고학번 선배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꽤 오래된 전통인 것 같다. 그리고 지금도 이 전통은 이어지고 있다.

남자 수가 여자들보다 적었던 과의 특성 때문인지, 대부분의 남자들은 한번쯤 다 여자가 되어 미를 과시한다. 여장을 하게 되는 남자들은 대부분 '꽃 미남' 축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1순위가 되고 그런 남학생이 없는 조는 파격적인 준비를 하기도 한다.

단장을 하고 나오는 사람들은 해를 거듭할수록 화려해졌다. 그리고 그들이 지향하는 바는 한결 같았다. 바로 '섹시함'이었다. 짙은 화장과 긴 가발을 착용한 남자들은 간드러진 목소리로 자신을 소개하고 남자 선배들을 향해 윙크를 하기도 하였다.

조금 덩치가 큰 사람들은 기성복을 입힐 생각을 포기하고, 가릴 부분만 가리기도 하였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여성의 기준을 볼 수 있는 것은 바로 '가슴'이었는데, 풍성이나 양말을 말아 만든 가슴은 과도하게 컸으며 사람들은 그것을 강조하였다.

매년 반복되는 이 행사에서는 심사위원들이 과 학생회장단과 교수님, 졸업한 선배들로 구성된다. 그리고 1등을 차지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섹시함을 내세워 여성과 가장 가까운 사람이다. 단순히 외모만을 보지 않는다. 1등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선배들과 블루스를 쳐야 했고, 춤을 추며 선배들을 잘 '유혹'한 사람의 경우 점수를 후하게 주었다.


어제 개그 콘서트를 보면서 나는 우리 과의 '미스 독문'을 떠올렸다. 각종 아가씨 선발대회인데, 이 아가씨들은 모두 여장을 한 남자들이다. 완변한 여장이 아니라 누구나 남자인 것을 다 아는 상황에서 '트렌스 젠더'나 '드랙 퀸'들처럼 완벽한 여성미를 내세우지는 않는다.

어설프기 때문에 웃음을 유발하게 되는데, 이 어설픔은 이쁘거나 섹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자연스러운 여성의 모습이 아니라 과장되고 희화화된 여성의 이미지를 통해 웃음을 만든다. 또한 그렇게 나온 여성들의 모습은 하나같이 뭔가 모자란다.


마지막을 장식하는 역할은 아줌마로 분한 남자이다. 여성도 남성도 아닌 제3의 성이라 불리기도 하는 이 '아줌마'는 젊음을 상실하고, 늘씬하지 못하며, 미모가 사라진 여성에 대한 경멸과 멸시의 뉘앙스가 녹아 있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등장만으로 웃음을 자아내는 것은 그런 이유이다.

요즘은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도 여성을 상품화시킨다는 이유로 TV방송을 중단하고 폐지의 목소리가 높아져가고 있다. 여성의 몸을 쇠고기 처럼 부위를 나누어 점수를 매기고 그것을 전시하고 즐기는 각종 선발대회는 그 자체로 여성을 비하하며 인격을 상품화시키는 것이다.

개그 콘서트의 각종 아가씨 선발대회는 여성의 상품화를 넘어 희화화된 여성 이미지를 만들어내면서 두 배, 세 배 여성을 왜곡시키고 있어 더욱 심각하다.

여자를 남장시킨다면 각종 아가씨 선발대회처럼 웃음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냐면 여성을 상품화시킨 수많은 00아가씨 선발대회가 조장한 여성의 이미지-이쁘고 날씬하고 조신하고 섹시하고-가 우리 머리 속에 있기 때문에 그것에 부합하지 않는 것이 웃음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남성에 비해 여성은 획일적인 기준과 가치가 적용되기 때문에 더 더욱 그렇다.

각종 아가씨 선발대회가 끝날 즈음 나는 우리 과에서 계속 전통이 되어 내려오는 '미스 독문' 폐지를 요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통이고 재미있기 때문에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은 별다른 이유가 못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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