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대사에게 못다한 이야기

덕수궁 터 미국대사관, 우리에겐 막을 힘이 있습니다

등록 2002.08.28 01:53수정 2002.08.29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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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지난 8월 26일 <오마이뉴스>와 미국 대사와의 인터뷰 과정에서 못 다한 이야기를 몇 자 적어봅니다.

나의 첫 번째 질문은 미국의 오만함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미국은 마이클 그레이브스라는 유명 건축가를 내세워 아주 당당하게 자신들의 건축계획을 설명하여 왔습니다. 그러나 미 대사관과 아파트 설계는 한국 법을 무시한 채 철저히 미국의 이해에 기초해 설계되었습니다.

일단 자기들 필요한 대로 설계해놓고 나중에 부딪히는 문제는 외교적으로 해결하면 된다는 식입니다. 지난 5월 건교부장관, 서울시장을 만나 협조를 요청했습니다. 이때만 해도 미국의 건축계획이 외부로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최근 공개된 미국측 사업계획과 조감도 등을 보면 한국과의 협의 결과와는 상관없이 이미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짓기 위해 모든 준비를 끝내 놓은 상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주차장 면적의 경우 우리 법에 의해 529대를 확보해야 하는데 116대 면적으로 되어 있고 아파트 신축에 필요한 부대시설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미국이 결심하면 안 되는 것이 없었던 한국사회에서 어찌 보면 당연히 행동일지 모르겠습니다.

두 번째 질문은 그에게 던지지 못하였습니다. 온 국민이 반대하는 일을 왜 강행하려고 하는지 묻고 싶었습니다. '한국 정부가 제공한 땅이고 그것을 믿고 우리는 일을 추진해왔고 그 동안 아무런 문제제기가 없다가 왜 지금 와서 이러냐. 문화재가 나오면 잘 보존하겠다'고 대답했을 것입니다. 미국의 거의 일관된 답변입니다. 인터뷰 당일 미 대사의 답변은 미국대사관 홈페이지의 홍보용 글과 같았습니다.

그럼 나는 다시 말하고 싶었습니다. '반미감정이 왜 생기는지 아는가. 우리에겐 너무나도 상식적인 일이고 억울한 일에 대해 미국은 자기 중심으로 해석하면서 합리의 탈을 씌워 우리의 입장을 묵살하고 회피하며 때론 조롱합니다. 결국 반미감정은 미국 스스로가 만드는 것입니다.' 대화부족 때문이 아닌 것이죠. 미 대사의 상황인식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미국대사관은 지어질 것인가."
지금까지의 판단을 종합해볼 때 미 대사관 신축에 유리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먼저, 지난 8월5일 정부 국무조정실 주재하에 관계부처회의에서 - 외교통상부, 건교부, 문화관광부, 문화재청, 서울시 참가 - 미 대사관 신축일정이 지연되지 않도록 최대한 협조키로 결의한 바 있습니다. 한술 더 떠서 지표조사와 발굴조사를 단기간 내에 끝날 수 있도록 협조해달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 정부의 굳은 의지를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두 번째, 미국의 신축 의지가 확고합니다.
최근 <오마이뉴스> <시민의 신문> 등을 통해 자기 입장을 홍보하면서 반드시 신축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의지만 확고한 것이 아니라 행동도 나타나서 주요한 정책결정자들을 대상으로 로비가 진행되고 있음이 여기저기서 포착됩니다. 대사는 유력 대선후보도 만났다고 하고 그 밑에 있는 사람은 비슷한 급(?)의 한국관료들을 접촉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세 번째, 대통령 선거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나라의 정치지형을 고려할 때 미국의 영향력을 무시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때론 너무 그것을 과도하게 생각하기도 합니다. 선거를 앞둔 후보 입장에서는 더욱 그러하겠죠. <주간동아>에 보도된 바에 따르면 이미 유력 대선후보의 참모가 덕수궁 터 미대사관 신축에 대한 긍정적인 답변을 미 대사관측에 전달했다고 합니다. 온 국민이 반대하는 가운데 밀실에서 합의하고 선거 끝나면 다른 소리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거죠. 누구처럼...

현재 위의 삼박자가 잘 어울려 미대사관 신축의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물론 그것을 막을 힘과 방법도 우리에게는 있습니다.

첫째, 국민 절대다수가 반대한다는 것입니다.
길거리에서 서명운동 하다보면 아주 가끔 '왜 반대하냐, 이런 미친놈들'이라고 이야기하는 분을 만납니다. 그러면 저는 우리 사회에도 다양성(?)이 존재하는구나 하는 생각으로 오히려 기쁘기까지 합니다. 그만큼 신축 찬성하는 분 만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죠.

문제는 이런 국민 절대다수의 반대의사를 효과적으로 모아서 표출할 것인가 하는 부분이겠지요. 그래서 서명운동, 1인시위, 집회 같은 것을 합니다. 시민여러분의 뜻이 함께 모이고 있음을 확인할 때 힘은 더 세지는 것이겠죠. 월드컵 경기를 함께 응원할 때의 기쁨처럼...

둘째, 지표 조사를 저지하는 것입니다.
현재 건축허가과정상 미국은 대사관, 아파트 신축 부지에 대해 지표조사를 받아야만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지표조사기관 - 주로 대학박물관으로 우리나라에 130여개 - 들이 미 대사관 신축을 위한 지표조사반대 입장을 가지고 있어 현재 진행이 안되고 있습니다. 미국 입장에서는 속타는 일이죠.

이것 때문에 지난번 관계기관 대책회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문광부 장관이 문화재청장에게 문화재청장이 다시 국립문화재연구소장에게 명령해서 지표조사를 하라고 시키게 될 것 같습니다. 언제 시키느냐 이것은 시간문제인데 아마 국민여론이 시점을 결정하는 중요한 판단근거가 될 것 같습니다. 만약 지표조사가 이루어지면 문화재청 중앙문화재위원회 6분과가 소집되어 지표조사 결과에 대해 심의를 하게 됩니다.

결국 국민 여론과 이것을 효과적으로 집중 표현하는 것이 첫째 방법이고 8월 서울 시정질의 9월 국정감사 등을 이용해 서울시와 정부를 압박하고 지표조사 등 절차에 적극 개입해 최대한 저지 지연시키는 것이 방법인 것 같습니다.

그 옛날 김영삼 대통령처럼 단순하게 생각해서 경복궁 터에 있는 조선총독부 헐었듯이 복잡하게 생각 않고 문화주권과 역사에 대한 자긍심을 지키려는 정책적 의지가 아쉽다는 생각이 듭니다. 참~ 제가 김영삼 칭찬까지 다하게 되는군요.

8월 29일은 경술국치일입니다.
일제에게 우리의 주권을 빼앗긴 날입니다. 90여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엄연한 주권국가임에도 과거 경복궁에 조선총독부가 세워진 것과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국치일에 주권의 소중함을 되새기며 우리의 주권과 자존심을 지키는 자리에 함께 하여 주십시오.

8월 29일 오후 6시30분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뵙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천준호 기자는 한국청년연합회(KYC) 사무처장입니다.

덧붙이는 글 천준호 기자는 한국청년연합회(KYC) 사무처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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