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1주년, 일방주의 치닫는 미국
냉정 되찾은 국제여론에 '동정'은 없다

[특집] 미국과 세계, 그리고 한반도 (상)

등록 2002.09.09 13:56수정 2002.09.10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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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미국 뉴욕, 워싱턴 강타한 자살테러로 화염에 휩싸인 세계무역센터
9.11 미국 뉴욕, 워싱턴 강타한 자살테러로 화염에 휩싸인 세계무역센터연합뉴스
전세계를 충격에 휩싸이게 한 9·11 테러가 발생한 지도 1년이 지나고 있다. 미국의 힘을 상징하는 세계무역센터와 펜타곤이 칼로 무장한 테러리스트에 의해 납치된 여객기의 공격으로 힘없이 무너져내리는 장면은, 헐리우드 영화의 상상력마저 초라한 것으로 만들기도 했다.

'철옹성'과도 같았던 본토에서 처참한 공격을 당한 미국의 포효 앞에 전세계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고, 철저한 응징과 지속적이고 광범위한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하면서, 국제사회를 향해 "우리의 편에 서든지, 테러리스트의 편에 서든지를 결정하라"며 줄서기를 강요하는 부시 행정부의 태도에 아연실색하기도 했다.

그러나 세계의 많은 나라들은 테러와의 전쟁에 동참하지 않으면 어떤 화를 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또한 이스라엘, 중국, 러시아 등은 각각 팔레스타인, 티벳, 체첸 등에서 자행하고 있는 억압과 폭력을 테러와의 전쟁으로 덧칠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미국 주도의 반테러국제연합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물론 반테러연합의 구성 배경에는 미국에 대한 동정과 9·11 테러와 같은 참사가 재발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도 강하게 투영되었다.

동정에서 분노로

미국의 아프간공습으로 무너진 카불소재 주택가에서 망연자실해 하는 시민
미국의 아프간공습으로 무너진 카불소재 주택가에서 망연자실해 하는 시민연합뉴스
9·11 테러 이후 불어닥친 미국 내의 애국주의 열풍과 막강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앞세운 미국의 일방주의의 만남은 '9·11 이후의 신세계질서'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는 곳곳에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이는 기본적으로 부시 행정부의 일방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다.

9·11 테러 이후 1년 동안 부시 행정부가 보여준 모습은 인류 사회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는 마치 전후(戰後) 아프간이 새로운 기회의 땅이 될 것인 양 인도주의적 색채를 한껏 강조했으나, 아프가니스탄 복구에 쏟아야 할 힘을 또 다른 전쟁 준비로 소진시키고 있다.

대량살상무기 위협을 강조하면서 '테러와의 전쟁' 확전을 정당화시키면서, 정녕 미국은 생물무기금지협약(BWC) 검증의정서 채택 거부, 탄도미사일방어(ABM) 조약 파기, 포괄핵실험금지조약(CTBT) 인준 거부 등 대량살상무기를 국제 사회의 공동 노력으로 해소할 수 있는 기초를 앞장서서 무너뜨리고 있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가 비핵국가에 대해 핵무기 사용 및 사용 위협을 하지 않겠다는 소극적 안전보장(NSA)을 철회하고 새로운 핵무기 개발 및 핵실험 재개를 추진하고 있어, 핵무기 등 대량살상무기 확산의 불씨를 지피고 있기도 하다.

빈곤과 환경오염 등 인류 사회가 직면한 '확실한' 위협 해소에는 극히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하면서, 현실화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위협에 대해서는 수천억달러를 쏟아붓고 있는 것도 오늘날 미국의 모습이기도 하다.


이러한 미국의 오만한 일방주의를 보면서 국제사회의 여론은 점차 동정에서 분노로 바뀌고 있고, 미국 주도의 반테러국제연합에 동참해온 세계의 많은 국가들은 '이제 미국의 일방주의와 군사주의를 어떻게 막을 것인가'로 화두를 바꾸고 있다.

신세계 질서의 중대한 분수령은 이라크 전쟁

아프간 공습 당시 에섹스 항공모함서 출격을 기다리고 있는 미국 영국연합군 헬기
아프간 공습 당시 에섹스 항공모함서 출격을 기다리고 있는 미국 영국연합군 헬기연합뉴스
9·11 테러 이후 새로운 세계 질서는 미국으로 대표되는 문명세력과 테러리스트 및 '악의 축' 국가로 대변되는 문명파괴세력간의 대결이 될 것이라고 부시 행정부와 미국의 많은 지식인들은 주장해왔다.

그러나 이는 부시 행정부의 바람일 뿐, 새로운 세계 질서의 요체는 9·11 테러 이후 한층 맹위를 떨치고 있는 부시 행정부의 일방주의와 이를 견제·제어하려고 하는 국제주의적 다자주의 사이의 대결에 있다. 그리고 이 승부의 중대한 분수령은 이라크 문제가 되고 있다.

이라크 문제를 놓고 이미 일방주의와 다자주의 사이의 대결은 시작되었다. 부시 행정부는 유엔 안보리의 승인이 없어도 이라크 공격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혀두고 있고, 전세계의 대부분의 국가들과 미국 내 신중론자들은 이라크 공격 자체를 반대하거나, 유엔의 승인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칼을 들고 있는 쪽은 부시 행정부이지만, 칼을 휘두르려는 부시 행정부를 말리려고 하는 미국 안팎의 사람들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부시 행정부가 국제법을 무시하고 미국 안팎의 여론에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이라크 공격을 강행한다는 것은, 전세계에 걸쳐 확산 조짐을 보이고 있는 반미감정에 기름을 붓는 꼴이 될 것이다. 이는 또한 국제사회가 힘을 합쳐 미국의 일방주의를 막지 못하면 세계의 안정과 평화는 요원할 수밖에 없다는 각성제 역할을 할 것이다. 극단적으로는 알-카에다와 같은 반미 테러조직의 강화와 확산에 촉매제 역할도 할 것이다.

주목해야할 미국 내의 변화

부시 행정부의 일방주의와 군사주의가 국제사회의 공분을 사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인 미국이 세계 질서의 중심에 있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는 근본적으로 미국이 싫지만 미국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세계 각국 정부의 현실적인 딜레마로 이어지고 있다.

하여 '세계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은 '미국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라는 고민을 낳고 있기도 하다. 부시 행정부의 오만하기만한 일방주의가 맹위를 떨칠 수 있는 것도, 부시 행정부 스스로 이 점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미국의 일방주의와 군사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가장 큰 힘은 미국 '안'으로부터 나와야 한다. 부시 대통령에 대한 국제사회의 분노가 극에 달하더라도, 미국의 다수 여론이 부시 대통령을 지지하는 한 부시 행정부의 일방주의와 군사주의는 계속 될 수밖에 없는 것이 미국의 정치 현실이기 때문이다.

9.11 테러 후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채 용산 주한미군 기지 앞에서 차량 검문을 하고 있는 미군헌병.
9.11 테러 후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채 용산 주한미군 기지 앞에서 차량 검문을 하고 있는 미군헌병.오마이뉴스 자료사진
많은 분석가들은 이라크 전쟁 계획을 비롯해 부시 행정부의 대외강경정책의 가장 큰 노림수는 '선거'라고 말한다. 올해말 중간 선거와 2004년 재선거를 앞두고 있는 부시 행정부는 '미국이 힘을 보여주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가장 효과적인 득표 전략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상당 부분 타당성을 갖는다면, 부시 행정부의 일방주의와 군사주의를 막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역시, 미국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소중한 변화의 조짐은 서서히 보이기 시작하고 있다.

9·11 테러 직후 90%를 상회하던 부시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1년이 지난 지금 60%대로 급락한 상태이다. 특히 이라크 공격에 대한 찬성 여론도 올초 70% 안팎에서 현재는 50%대로 떨어진 상황이다. 이러한 미국 내 여론의 변화는 이라크 공격에 대한 국제사회의 반대론 및 미국 내의 신중론 확산에 힘입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미국 내의 변화의 조짐은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지만, 국제사회가 소중하게 바라보고 지원해야할 움직임이기도 하다. 여전히 애국주의가 팽배한 미국의 시민사회와 국제문제에 대해 전반적으로 무관심한 미국 시민의 성향을 볼 때, 미국 내의 변화의 조짐이 부시 행정부의 일방주의와 군사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힘으로 발휘되기 위해서는 국제 시민사회의 적극적인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것이다.

부시 행정부는 물론 미국의 역대 정권은 틈만 나면 북한, 이라크, 이란 등에 대해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이 되어야 한다"고 촉구해왔다. 그러나 지금 목도하고 있는 현실은 미국이 국제사회에서 가장 무책임한 '깡패국가'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미국 시민들도 원하는 미국의 모습이 아닐 것이다.

국제사회가 현재 미국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또 어떤 역할을 기대하는지를 미국 국민들에게 알리고 설득할 수 있을 때, 부시 행정부의 막가파식 일방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평화의 힘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국제질서는 주로 정부와 다국적 기업이 주도해왔고, 그 폐해는 시간이 흐를수록 분명히 나타나고 있다.

미국 시민을 포함한 국제시민사회가 새로운 세계 질서 창출의 중심적인 역할을 해나갈 때, 혼란스럽고 위험하기만한 9·11 이후의 세계질서는 비로소 제 모습을 찾아나갈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평화네트워크 홈페이지(www.peacekorea.org)에는 9·11 테러 이후 미국의 군사전략 및 MD 추진 현황, 군산복합체와 테러와의 전쟁의 관계, 테러와의 전쟁과 한반도 평화 등에 관련한 자료가 업데이트 되었습니다. 여러분의 많은 방문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평화네트워크 홈페이지(www.peacekorea.org)에는 9·11 테러 이후 미국의 군사전략 및 MD 추진 현황, 군산복합체와 테러와의 전쟁의 관계, 테러와의 전쟁과 한반도 평화 등에 관련한 자료가 업데이트 되었습니다. 여러분의 많은 방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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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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