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에서 본 갈매기섬인권하루소식
진도 수품리항에서 배를 타고 30여분을 가면 그 생김이 갈매기와 닮았다는 갈매기섬이 있다. 무인도인 갈매기섬에서 곡소리를 들었다는 소문이 낚시꾼들 사이에서 무성해 진도사람들은 으레 물속 원혼으로 여겼다.
지난해 정부는 제주 4·3항쟁과 관련해 갈매기섬의 집단유골에 대한 전설을 조사해줄 것을 진도문화원(박문규 원장)에 요청했다. 박문규 원장이 지역의 노인들에게서 확인한 것은 한국전쟁 당시 갈매기 섬에서 해남지역 보도연맹원 등에 대한 집단학살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사망자 수치와 학살일에 대한 이견이 있지만, 1950년 7월 해남지역 곳곳에서 보도연맹원 등 민간인 350여명이 갈매기섬에 끌려가 학살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7일 10여명의 갈매기섬 피학살자 유족들은 지역언론 및 사회단체 활동가와 함께 억울하게 죽은 영혼들을 달래기 위해 50여년만에 처음으로 섬을 방문, 천도제를 지냈다.
섬 중턱, 동백나무가 빼곡이 늘어선 곳에 천도제를 지내기 위한 상이 차려졌고, 그 뒤로는 최근 박 원장이 수습해놓은 유골이 비닐에 싸여 있었다. 태풍으로 나뭇잎이 많이 떨어져 있어 바닥이 드러나지 않았지만, 하얀 유골과 주인 잃은 고무신 등을 찾아볼 수 있었다.
천도제에 참여한 박미숙(53살)씨는 당시 갓난아이였고 아버지와 큰아버지를 갈매기섬에서 잃었다. 박씨의 어머니 채은애(75살)씨는 "당시 경찰이었던 남편은 모략으로 끌려가 죽었다. 수소문 끝에 섬에서 죽었다는 말을 듣고 5명이 저녁에 배를 탔는데 새벽에야 도착했다"라고 전했다. 채씨는 "섬 전체가 시체로 덮여있었다. 서방님은 썩은 채로 (강한 햇살로) 바짝 말라있었다"라며 "그때 내가 안 갔으면 찾기 힘들었지"라고 회상했다.
사람들 눈을 피해 한밤중에 찾아나선 사람들 중 시신을 못 찾는 경우가 허다했고 아예 이를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