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지'의 숨구멍은 브럿이야

쓰러진 소를 일으키는 생낙지 잡는 법

등록 2002.09.14 17:56수정 2002.09.15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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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후 바다는 푸르다 못해 검푸르게 싱싱하다. 날씨가 반짝 개자 어촌마을은 분주하다. 촘촘히 낚시가 베인 주낙 바구리를 싣고 마누라와 둘이서 고기잡이를 떠나는 김씨, 각망그물을 걷어올리다 힘에 부치면 소주를 한 잔 들이키는 박씨.


지난해 사용했던 김발을 내년에 다시 사용하기 위해 바닷물로 깨끗이 손질하는 어민들은 일손이 딸려 어린아이도 거들어 톡톡히 어른 한 사람 몫을 해낸다.

진도의 어촌마을은 이렇게 살아 숨쉬고 있다. 논농사도 있지만 젊은이들은 바다 일을 선호한다. 힘든 농사일보다 바다에서 고기 잡는 일이나 김 양식 등이 비교적 높은 소득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a 2km이상 펼처진 벌포만의 개펄

2km이상 펼처진 벌포만의 개펄 ⓒ 김문호

벌포만은 벌포와 원포리 두 동네가 양쪽 끝에서 서로 보듬어안은 포구다. 진도의 많은 개펄들이 농토확장에 밀려 자취를 감췄으나 이곳 벌포만큼은 현재 남아 있는 진도 최고의 개펄이다.

이곳 개펄에서 손 낙지를 잡으며 평생을 살아온 박길수(58)씨. 그는 자타가 인정하는 낙지쟁이라 김 양식이나 그물 놓는 어업은 일체 하지 않는다.

박씨가 낙지 잡는 법을 배운 것은 어머니한테서였다. 외할머니댁이 해남 문내면 중도리로 그곳은 개펄이 풍부해 낙지가 많았다. 벌포로 시집온 어머니는 낙지 잡는 프로였다. 김씨가 스물두살 되던 해 어머니는 아들에게 대바구리 하나를 물려주며 개펄에 나가 낙지 파는 기술을 가르쳤다.


a 낙지쟁이 박길수씨

낙지쟁이 박길수씨 ⓒ 김문호

낙지가 뻘 속에서 숨을 쉬는 곳은 '브럿'이라는 구멍이고 물이 차면 먹이를 잡기 위해 활동하는 곳은 원 구멍인데 이들 사이의 거리가 가까우면 낙지가 깊이 들어 있어 낙지를 팔 때는 이들 사이가 먼 것을 선택해야 한다.

낙지 잡는 방법은 바닷물이 들고 빠지는 각단에서 잡는다. 그래야 낙지가 깊이 들어 있지 않다. 도톰하게 파란 뻘을 쌓아 놓은 브럿과 원구멍 사이를 가래로 찔러 낙지가 원 구멍으로 도망가는 것을 차단하고 숙달된 솜씨로 가래를 움직여 브럿에서부터 뻘을 파내려 간다.


파다보면 게 구멍이나 다른 고기 구멍에 있는 바닷물이 흘러나와 낙지 구멍을 잃어버리기 십상이다. 어느 기술이건 완벽하게 배워 최고가 되면 평생을 먹고 산다. 어머니의 가르침대로 박씨는 여태까지 낙지를 잡아 생계를 꾸려왔다.

"조금 버니까 힘들고 불편하지만 대신 덜 쓰고 덜 먹으면 된다."
김, 미역 등 해초나 통발, 장어 등 연승 어장을 하는 사람들보다 부유하지는 못하지만 육지에서 흘러들어오는 오염물질을 걸러내는 개펄 마냥 자족하는 생활을 한다. 그는 어부이면서도 배가 없다. 그렇다고 개인승용차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는 제로 인생이다. 특별히 남을 만한 일을 한 기억도 없다. 그러나 요즈음 한국경제를 총체적 부실로 안겨준 빚 역시 단돈 1원도 없다.

농·어민들의 늘어가는 빛은 지역경제를 절망에 빠뜨리지만 벌포의 드넓은 개펄에서 잡는 낙지잡이는 박씨에게 주어진 최고의 행복이다.

어야 뽀올 뽈 기는 것 믿네

갯벌이 있는 마을마다 낙지를 잡아 연명하는 낙지쟁이는 있었다. 그만큼 낙지는 가난하고 헐벗은 시골 사람들에게는 없어서는 안될 건강식이나 배탈 설사 등 민간의약으로 인기를 누렸다.

그가 개펄에 서면 낙지들은 숨소리를 죽였다. 낙지구멍만 발견하면 잡는 데 실수가 없는 낙지킬러. 새벽 공기를 가르며 가래에 끼운 조락(잡은 낙지를 담는 바구니) 하나 들고나서면 된다.

탈이 많은 여름철이 오면 동네 사람들의 낙지 부탁이 줄을 이었다. 특별한 약이 없던 6∼70년대 여름이면 배탈에 설사 등 배앓이가 많았다. 이런 때 최고의 민간 의약이 살아있는 낙지를 날것으로 먹는 것이었다. 낙지를 먹고 나면 힘이 없어 피로하던 몸에 힘이 생기고 설사가 멈춘다.

한 여름 서숙(조) 갈이 하다가 지쳐서 쓰러진 소에게 생낙지 하나를 통째로 먹이자 '벌떡' 일어나 쟁기질을 했다는 이야기는 상식으로 통한다.
예나 지금이나 낙지는 바다에서 나오는 해산물 중에서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우리의 좋은 먹거리이다.
아는 것이 없어도 간척사업은 완강히 반대했다. 육지에서 흘러들어오는 오염된 폐수가 개펄을 통해 바다로 나가야 된다. 개펄은 오염된 물을 정화시키는 작용을 한다고 박씨는 믿고 있다. 개펄이 살아야 바다가 산다는 것은 생활을 통해 얻은 지혜다.

정화시설이 잘 돼 있다는 레미콘 공장 밑의 개펄은 점점 굳어져 그 기능을 점점 상실하고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4계절 개펄에만 나가면 낙지를 잡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계절에 따라 다르다.

낙지나 운조리 등은 해가 바뀌면 죽는다. 한 해 동안 살다가 알을 낳고 죽으면 새끼들은 죽은 어미의 육신을 먹고 자란다. 종족 보전을 위해 자신의 몸을 새끼들에게 통째로 내어주는 모성애가 강한 어류다. 만물에 생기를 불어넣는 봄날은 낙지들도 종족보존을 위한 생존 싸움이 치열하다.

산란기인 봄철에는 암컷이 사는 구멍에 두 마리의 낙지가 들어 있다. 숫낙지들이 먼저 구멍에 들기 위해 힘 겨루기가 불가피하다. 개펄 속 집에 알을 낳으면 수정을 위한 몸부림이다. 그러나 수정을 끝내고 도망하려는 숫낙지를 암 낙지는 잡아먹고 기운을 차린다.

숫낙지를 잡아먹은 어미낙지는 새끼들을 위해 자신의 몸을 바친다. 부화한 새끼들은 어미낙지가 만들어 놓은 개펄 깊숙한 집에서 안전하게 어미의 육신을 뜯어먹고 자란다. 이때가 6월 중순부터 8월까지 해당된다. 이 기간 동안 낙지 잡는 일은 쉰다.

a 그물등 어구를 정비하는 벌포리 노인

그물등 어구를 정비하는 벌포리 노인 ⓒ 김문호

대신 이 때는 물을 따라 개펄로 올라오는 보리새우를 잡거나 어망손질 등 남의 일손을 거두는 날품을 판다. 새우잡이는 아주 간단하다. 바다 물이 들어오면 허리춤까지 들어가 뜰 채로 걷어올린다. 무더운 여름 새우반찬은 밥 수저를 가볍게 하여 여름철 건강에도 큰 도움이 된다.

낙지가 가장 많이 잡히는 계절은 만물이 열매를 맺어 수확하는 가을철이다. 가을에는 새롭게 자란 어린 낙지들이 개펄에 올라와 구멍을 파고 둥지를 튼다. 그러면 박씨는 기운이 넘처 개펄을 헤집고 다닌다. 고작해야 낙지를 파는 작업시간은 3시간도 채 안 되기 때문이다.

하루에 두 번의 간조(바다 물이 빠짐)가 있어 봄, 가을에는 두 번 작업이 가능하다. 그러나 아무 때나 낙지가 개펄로 올라오는 것이 아니다. 세물 때부터 열 물까지 낙지를 잡는다. 바닷물은 달의 크기에 따라 보름 주기로 순환한다. 한 달에 두 번씩 같은 물이 반복된다. 그래서 낙지잡이는 한 달에 보름 정도만 작업이 가능하다.

사리물때는 간만의 차이가 많아 새로운 개펄이 드러나면 낙지 역시 많이 팔 수 있다. 특히 가을철 꽃낙지는 유명하다(꽃낙지란 봄에 산란한 어린 낙지로 발이 가늘고 긴 세발낙지와 비슷하다).

박씨가 잡는 뻘 낙지는 요즘 맛보기가 여간 어렵다. 그래서 맛을 아는 식도락가들은 미리 박씨에게 부탁한다. 시장에 내다팔 겨를이 없다. 숫제 소비자들은 박씨가 낙지를 잡아 해안가로 나올 때쯤이면 밖에서 기다리다 모두 사버린다. 보통 1마리당 가격이 2000원 한 물때에 보통 30마리 정도 잡으니 6만원벌이다. 낙지의 효능은 널리 알려져 있다.

약이 귀하던 60년대 말까지도 낙지는 여름을 지혜롭게 넘기는 민간요법에서 최고의 강장식품이었다. 여름철 배탈·설사로 기운이 쇠하면 낙지 죽을 먹었다. 날것으로 먹으면 즉효였다. 특히 여름 보리갈이 하던 소가 더위를 먹고 지쳐 쓰러지면 낙지를 먹였다. 그러면 즉시 일어나 일을 했다.

그러나 지금은 바다환경이 오염되어 비브리오 바이러스 때문에 여름철에는 날것으로 생선이나 낙지 먹는 것은 절대 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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