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 연고제, 이대로 좋은가?

특권 의식 및 집단주의 강화의 장으로 변질된 연고제

등록 2002.09.25 23:51수정 2002.09.26 10:41
0
원고료로 응원
당신은 연고제(고연제, 이하 연고제라 칭함)에 대해 아는가? 사실 해당 학교의 학생이나 동문이 아닌 이상 이러한 행사가 있다는 것을 꼭 알아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해마다 언론에서 보도되는 연고제 개막과 경기전적을 통해, 연세대나 고려대를 다니거나 졸업한 친구나 친지, 자녀들을 통해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 행사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사실 한 나라의 전통 있는 사학들이 정기적으로 학술, 스포츠 등 문제의식이나 유희를 같이 할 수 있는 지점을 중심으로 교류 행사를 갖는 것 자체는 그다지 문제될 것이 없다. 오히려 우리나라에 그런 학교간의 교류가 지나치게 단절되어 자신의 학교만 중심으로 생각하는 소위 '학연' 구조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정기 연고제의 농구 경기 하프타임때 벌어지는 응원전
정기 연고제의 농구 경기 하프타임때 벌어지는 응원전임명현
그러나 지금의 연고제에서는 안타깝게도 그러한 미덕을 찾아볼 수가 없다. 서로 다른 학풍과 분위기를 지닌 학교간의 교류라 하면 당연히 '나의' 집단 안에는 존재하지 않는 '상대의' 다른 부분들을 배우고 이로 인해 자신의 학교만을 최고로 생각하는 편견을 고쳐나간다는 그런 지점을 기대해야 할텐데, 국내 대학 중 유일하게 정기적인 교류를 갖고 있는 연고제는 역설적으로 한국 사회 특정 계층의 특권 의식을 강화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선 '연고제'라는 구도 자체가 대학 서열구조에 기반한 것이다. 학벌과 권력이 긴밀하게 결탁한 지금의 구도에서 엄청난 경쟁을 뚫고 연대나 고대같은 소위 '명문사학'에 입학한 학생들은 자신의 학교에 대한 엄청난 애교심을 가지게 되고, 그러한 애교심에 기반한 연고제는 자연스럽게 다른 집단, 다른 학교에 대한 폭력적 평가절하 및 배제로 이어진다.

이렇게 '그들만의 대결'을 통해 형성되는 특권 의식은 자연히 다른 집단에 대한 폭력으로 연결된다. 연고제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토요일 오후에, 그들만의 유희를 위해 신촌로타리에서 연대 정문으로 이어지는 '연세로'가 통제된다. 토요일 오후 교통 체증이 심각한 시간에 서울 서부 지역의 핵심 도로 중 하나가 통제될 정도의 이유라면, 월드컵 기간에 시청앞 광장이 통제된 것이나 '환경의 날'에 세종로가 통제되는 것처럼 전체 시민들의 축제를 위한 것이어야 할텐데, 통제된 '연세로'에 연대생과 고대생 아닌 다른 집단의 사람들이 끼어들 공간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또 이때 신촌 주변의 상권들은 철저히 그들의 영업 권리를 박탈당한다. 집단으로 몰려와 소위 '기차놀이'를 이유로 공짜 술을, 공짜 밥을 요구하는 그들을 외면하고도 신촌에서 계속 영업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상인들은 그다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상인들이 1년에 한 번 주요 고객들에게 인심 쓰는 거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나, 소위 '공짜'의 특혜는 연고대생 아닌 다른 집단에게는 허용되지 않는다. 이뿐인가. 이 기간에 잠실에서 신촌으로 오는 방향의 지하철 2호선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수시로 벌어지는 연고대생들의 소위 '응원' 소리를 몇 번이나 들어야 한다.


문제는, '젊음의 객기'라고 이 현상들을 이해하고 넘어가기에는 이러한 현상이 벌어질 수 있는 기저에 학벌주의를 근간으로 한 특권 의식과 엘리트 의식이 뿌리깊게 퍼져 있다는 것이다. 연대생 혹은 고대생이라는 이유만으로 1년에 한 번 이 무법천지를 누릴 수 있는 학생들은 자신들이 '연대니까', '고대니까' 이런 사회적 특혜를 누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며 그들의 특권 의식을 더욱 강화하게 된다. 이런 맥락에서 연고제는 단순히 '대학간의' 문제가 아닌 대사회적인 문제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불행 중 다행으로, 연세대와 고려대 내에도 이런 연고제의 폐해를 인식하고 대안적인 연고제를 고민하는 모임이 생겨나고 있다. 연세대학교의 'Alter-Y', 고려대학교의 '안티 고연전' 모임이 그것인데, 연대의 'Alter-Y'를 이끄는 이김경진(연대 인문4)씨를 통해 연고제의 주체로서 고민하는 문제의식을 들어볼 수 있었다.


- 모임의 주체는 누구이며, 언제부터 시작하게 되었는가?
"고대에는 이미 작년부터 이런 성격의 모임이 있었다. 연대에도 연고제에 대해 문제의식을 담은 흐름이 있었는데, 올해에 총여학생회, 연세 교육행동위원회, 장애인권동아리 '게르니카', 교육운동동아리 '열음'이 주체가 되어 이 모임을 시작했다."

- 'Alter-Y'의 주된 문제의식은 무엇인가?
"연고제를 존재하게 하는 부분에 연대생 고대생이라는 우월의식이 크게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맹목적 애교심은 다른 집단에 폭력적으로 변질될 수 있기에 이를 비판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연고제가 학내 구성원 모두를 포함할 수 있어야 함에도 여성과 장애우들이 외면되는 측면이 존재한다. 지금까지는 이런 부분이 외면되어져 왔지만 이제 문제제기 되어야한다고 생각한다.

- 활동에 있어서 특권의식, 학벌주의 강화 등의 사회적 부분과 여성, 장애우 참여 문제 등의 학내 부분에 있어서 어느 영역을 중요시하고 있는가?
"사실 학우들에게 동의를 쉽게 끌어내고 실천적인 부분으로 옮길 수 있는 부분은 후자의 영역이다. 학우들에게 마초주의를 심어줄 수 있는 응원가(연대에는 "마쵸맨"이라는 응원가가 있다)부르지 않기, 장애인들이 응원을 따라할 수 없는 문제제기 등이 그렇다. 그렇다고 해서 대사회적인 문제의식을 소홀히 하는 것은 아니다."

- "연고제 폐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리는 연고제 폐지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연고제 내에도 대학간의 자율적 교류 가능성, 지역주민과의 교류 가능성 등 긍정적인 부분이 충분히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남성중심적, 反장애인적, 특권주의적인 연고제의 문제점들을 조금씩 변화시켜나가는 것이 우리의 주된 목표이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1만2000 조각 났던 국보, 113년만에 제모습 갖췄다 1만2000 조각 났던 국보, 113년만에 제모습 갖췄다
  2. 2 [단독] 김태열 "명태균이 대표 만든 이준석,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고" [단독] 김태열 "명태균이 대표 만든 이준석,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고"
  3. 3 수능 도시락으로 미역국 싸 준 엄마입니다 수능 도시락으로 미역국 싸 준 엄마입니다
  4. 4 대학 안 가고 12년을 살았는데 이렇게 됐다 대학 안 가고 12년을 살았는데 이렇게 됐다
  5. 5 한 박스 만원 안 나오는 샤인머스캣, 농민 '시름' 한 박스 만원 안 나오는 샤인머스캣, 농민 '시름'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