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교도소 보내달라" 시위에 발포

의문사위원회, '삼청교육대는 공권력의 불법 행사' 해석

등록 2002.10.01 17:18수정 2002.10.02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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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사위원회가 1일 삼청교육대 피해자의 명예회복을 권고했다. 사진은 80년 여름 삼청교육대에 입소해 '순화교육'을 받는 교육생들의 모습.
의문사위원회가 1일 삼청교육대 피해자의 명예회복을 권고했다. 사진은 80년 여름 삼청교육대에 입소해 '순화교육'을 받는 교육생들의 모습.
80년 신군부에 의해 자행된 대표적인 인권침해 사례로 지탄을 받아온 삼청교육대 사건은 권위주의 정권의 위법한 공권력 행사로 보아야 한다는 해석이 국가기관에 의해 내려졌다.

1일 삼청교육대 입소교육자 전정배씨 사망 경위를 발표한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www.truthfinder.go.kr, 이하 의문사위원회)는 대법원 판시를 근거로 "80년 5월31일 국보위의 설치는 내란행위로 보아야 하며, 마찬가지로 국보위 사회정화분과위에서 추진한 삼청계획 5호 불량배 소탕계획과 계엄포고령 13호 역시 신군부의 폭동행위를 유지·강화시키기 위한 내란죄에 해당하는 행위로 위법한 공권력의 행사로 보아야 한다"는 판단을 내렸다.

전씨는 지난 81년 6월 군부대에 수용중 처우개선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다 경비병들의 총에 맞아 숨졌다. 의문사위원회는 "삼청교육대 운영이 공권력의 위법 행사인 만큼 전씨가 삼청교육대에 끌려가 순화교육을 받고 강제노역에 해당하는 근로봉사를 한 것, 군 지휘관의 구타로 촉발된 감호생 집단시위 중 발포로 사망한 것 또한 위법한 공권력의 행사로 보아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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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사위원회의 이같은 결정은 88년 '5공 청산' 여론의 고조와 함께 6공정부 하에서 '관련자 명예회복'이 잠시 검토됐던 삼청교육대 사건의 재조명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의문사위원회는 지난달 16일로 조사활동이 종료된 상태여서 정치권이 '의문사위원회 2기'의 구성에 협조하지 않을 경우 삼청교육대 사건의 실체는 다시 역사 속으로 묻힐 공산이 높다.

사망 당시 서울에서 이발소를 운영하던 전씨(당시 30세)는 부친과의 말다툼 이후 동네 파출소에 연행돼 계엄포고령 13호에 따라 재판절차 없이 B급 교육자 판정을 받고, 그해 8월4일 삼청교육대에 입소했다.

전씨는 그곳에서 약 5개월간 순화교육과 근로봉사를 받았는데, 이듬해 1월 다시 사회보호법에 의해 감호처분을 받고 5사단 36연대에 설치된 감호분소에 수용됐다.

81년 6월20일 장교들이 도로정비작업을 나갔다가 민가에서 담배와 술을 구입하고 들어온 감호생 6명을 곡괭이 자루와 군화발로 집단 구타하면서 감호생들의 울분이 폭발했다. 감호생들은 '죄가 있으면 교도소에 보내달라' '폭행 장교 처벌하라' 는 등의 요구사항을 제시했고 대대장의 약속과 번복 사이에 시위도 거듭돼 분위기는 갈수록 격화됐다.


감호생들은 연병장으로 집합, 스크럼을 짜고 "이 줄을 흩뜨리지 말고 의정부지청으로 가자"고 하며 시위를 했고, 경계병력은 시위대와의 대치상황에서 당시 소대장 고모 중위에 의해 시위대에 발포했다.

이 과정에서 시위대열 선두에 있던 전씨는 우측 대퇴부 관통총상을 입었다. 전씨는 응급조치 없이 피를 흘리는 상태에서 방치되어 있다가 후송 전후 과다출혈로 사망했다. 전씨외에도 감호생 5명이 발포 과정에서 중경상을 입었다.


당시 군은 경계병의 발포 사실에 대하여 정당한 경계행위로 인정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사망한 전씨 유족에 대한 보상조치는 없었다. 사단 검찰부 역시 감호대장에게는 근신 처분, 폭행 연루 장교들에게는 기소 유예 후 석방이라는 관대한 조치를 내렸고, 반면 시위에 참여한 감호생들에게는 초병 집단협박, 초소침범, 군용시설 손괴, 특수공무집행방해죄를 적용, 대다수에게 중형을 내렸다.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는 의문사위원회 특수조사과의 현정덕 조사관과 김진택 팀장(오른쪽).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는 의문사위원회 특수조사과의 현정덕 조사관과 김진택 팀장(오른쪽).오마이뉴스 손병관
의문사위원회는 "전씨가 ▲ 집단시위 과정에서 재판 없는 삼청교육대 입소, 일정기간 교육 후 귀가시킨다는 약속 불이행, 불공정한 감호생 심사 등의 부당성에 대해 항의했고 ▲ 감호생에 대한 존징 사용 등 처우개선과 인권존중을 요구한 점 ▲ 당시 감호생들의 시위는 위법한 권위주의적 통치에 항거한 행위로 보아야 한다"며 전씨의 사망이 민주화 운동 관련성이 있다고 인정했다.

삼청교육은 80년 7월29일 '불량배 소탕계획'으로 추진된 삼청계획 5호 사업을 말하며 명칭은 국보위 사무실이 위치한 삼청동에서 비롯됐다. 당시 계엄사 발표 자료에 따르면, 계엄사는 그해 여름 6만755명을 검거하여 재판회부자(A급) 및 훈방자(D급)을 제외한 4만347명을 군에 인계, 위탁교육을 실시했다. 의문사위원회측은 "당시 훈련이 너무 가혹해 2주∼4주 교육을 받고 출소한 교육생들이 입소예정자들에게 '차라리 1급으로 분류돼 재판을 받으라'고 권유한 적도 있었다"고 전했다.

삼청계획 5호는 소탕되어야 할 불량배를 '개전의 정 없이 주민의 지탄을 받는 자' 등으로 모호하게 규정해 주민들의 피진정 대상, 폐수가 쌓이는 것을 항의한 사람, 심지어 상가집에서 도박을 하다가 시비로 싸움을 한 사람, 중고생까지 교육대상으로 분류시키는 등 터무니 없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국보위 백서에 따르면, 교육은 80년 8월4일부터 이듬해 1월25일까지 계속됐고, 교육이 끝난 후에도 1만228명은 근로봉사에 동원됐다. 80년 12월 제정된 사회보호법은 교육생들중 7578명에 대해 보호감호 처분을 내렸고, 이들은 1981년 12월 청송보호감호소가 완공될 때까지 군부대에 수용됐다. 의문사위원회는 "법무부의 자료협조 거부로 삼청교육 조사는 군부대 수용기간에서 중단됐고, 청송까지 간 감호생들에 대해서는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고 밝혔다.

군의 공식 발표에 따르면, 군부대 수용중 사망자의 수는 총 50명에 이르나 삼청교육대 희생자들은 "1천명 이상에 이른다"고 주장하고 있어 논란을 예고하고 있다. 삼청교육의 발상 자체가 신군부의 취약한 정통성을 국민대중들에 대한 무차별 폭력으로 보완하려는 불순한 목적이 개입했기 때문에 5공화국이 몰락한 후 6공화국 정부내에서도 삼청교육의 위법성을 인정한 흔적들이 감지됐다.

의문사위원회는 "국방부 문서자료실에서 찾아낸 '삼청교육 관련 사실여부 판정 의결서'는 삼청교육 피해자 신고에 대한 사실여부 판정이 내려져 있음을 보여주는 자료"라고 말했다.

1988년 12월1일 국방부 장관이 국무총리에게 보고한 '삼청교육 피해보상계획'은 정부가 삼청교육 피해자에 대한 피해보상계획을 수립한 바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당시 국방부는 대통령 특별담화문을 근거로 이 같은 계획을 입안했으나 계획은 그해 개각과 함께 총리가 교체되며 흐지부지됐고, 현재까지 피해자들에 대한 후속 조치나 배상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의문사위원회는 삼청계획 5호를 실행한 전두환 국보위 상임위원장 이하 국보위 위원들과 이희성 계엄사령관과 합수부 지휘부가 삼청교육을 어떻게 입안, 실행했는 지에 대한 책임규명과 교육대 시행의 전과정에 대한 철저한 진상조사, 피해자 명예회복 및 피해자 배상을 정부 부처에 권고키로 했다.

의문사위원회 특수조사과의 현정덕 조사관은 "전향 공작 중 옥사한 장기수들에 대한 조사에 집중하느라 전정배 사건 조사가 삼청교육대 사건 전반에 대한 조사로 이어지지 못했다. 6개월의 시간만 더 있더라면 삼청교육대에 대한 좀더 진전된 조사가 이뤄질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의문사위원회의 발표에 삼청교육 피해자들은 고무된 분위기. 서영수 삼청교육진상규명전국투쟁위원회 위원장은 이날 브리핑에 나타나 "8일 삼청교육 사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촉구하는 항의 시위를 할 계획"이라며 대중들의 관심을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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