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재래식 군사력 감축까지 나서나

[심층해설] 북한군 2-5만 감축 검토 보도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

등록 2002.10.08 10:32수정 2002.10.09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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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교도통신>이 모스크바발로 7일 보도한 북한군 2-5만 감축 검토 보도는 최근 한반도 정세 및 북한의 변화와 관련해 주목할 만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북한군 감축과 함께 북한이 휴전선 일대에 집중시켰던 부대의 임전태세를 완화하고 있다는 보도는 북한의 변화와 이를 둘러싼 논란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 동안 북한의 변화를 둘러싼 안팎의 논쟁의 핵심에는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 있어왔다. 북한의 변화를 '전술적' 변화라고 일축해온 쪽에서는 가장 강력한 근거로 '북한위협론'의 불변을 들어왔다. 반면에 북한의 변화를 '전략적' 수준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쪽에서는 우선적으로 북한의 대외정책 및 경제개혁을 주목하면서, 이러한 변화가 군사적 변화로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아 왔다.

군 부대 시찰 중 군인들과 함께 사진을 찍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군 부대 시찰 중 군인들과 함께 사진을 찍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연합뉴스
실제로 북한은 군사적으로도 '자의든, 타의든' 적지 않게 변화해왔다는 것이 정확한 평가일 것이다. 우선 냉전의 해체로 중국, 러시아의 군사동맹관계가 해체되었다. 탈냉전 시대 고슴도치 전략의 일환으로 추구했던 핵무기 개발도 미국과의 제네바 합의를 통해 동결한 상태이고, 중장거리 미사일의 성공적인 개발에 필수적 요소인 '실험 발사'도 98년 8월 이후 중단한 상태이다.

또한 최근에는 남북한 군사적 긴장완화와 신뢰구축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경의선, 동해선 철도 및 도로 연결에 착수한 바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속적인 경제위기로 군사력 현대화의 길이 막혀 전반적인 전쟁수행능력이 크게 약화되었다는 것도 북한의 군사문제에 있어서 중요하게 바라봐야 할 사안이다.

이러한 북한의 군사적 변화마저도 그 동안 인색한 평가를 받아온 주된 요인은 휴전선 인근에 집중 배치된 야포를 비롯한 재래식 군사력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교도통신>의 보도는 북한이 체제의 마지막 보루로 여겨온 '전방배치 군사력'의 준비태세와 병력수를 완화하고 있다는 신호탄으로 해석돼, 그 진위 여부와 파장이 주목되고 있다.

북한군, 양적인 감축과 부분적인 질적 향상 도모할 듯

현재 북한의 군사력은 한마디로 '비정상적인'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양적으로는 세계적 수준에 있지만, 질적으로는 후진적 상황을 면치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현재 병력수는 약 110만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러나 이 가운데 약 절반은 '무장한 노동자', 즉 반민반군 상태에 있다는 것이 많은 군사전문가들의 평가이다. 또한 무기와 장비도 상당 부분 노후화돼 있어, 실전에서 사용하기 어렵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따라서 북한군의 향후 군사력 건설 방향은 양적으로는 감축을 시도하되, 질적으로는 부분적인 향상을 도모하는 것이 될 것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비정상적인 상태의 군사력을 정상화한다는 동기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북한군의 정상화 과정이 한반도 정세에 대단히 복합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에서, 치밀한 대응책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우선 향후의 가장 유의해야할 변수 가운데 하나는 북한 군사력의 현대화 추진 가능성이다. 세 가지 측면에서 북한은 군사력 현대화에 대한 강한 압박을 받고 있다. 첫째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북한의 재래식 군사력의 상당 부분이 노후화되었기 때문에, 군사력의 정상화 관점에서 현대화를 더 이상 늦추기 힘들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북한 군부 달래기 차원의 문제이다. 부분적이든 전면적이든 북한이 체제변화와 개혁·개방을 추진하는 데 따른 리스크를 줄이는 유력한 방법은 군부의 요구를 일정 부분 수용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미국 등 국제사회의 강력한 견제로 북한이 추구해온 억지력인 핵,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 확보가 갈수록 어려운 상태에서, 억지력 '만회' 차원에서 재래식 군사력을 증강시켜야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북한의 내부적, 안보적 동기와 함께 유력한 무기 판매국인 러시아의 입장도 주목해야 한다. 즉, 러시아는 현금을 주면 무기를 팔 수 있다는 입장이다. 북한이 2001년에 '외상'으로 무기 구매를 러시아에 요청했다가 거절당한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만약 북한이 군사력 정상화의 동기에서 부분적인 전력 향상을 도모하면, 한-미-일의 강경파는 이를 대북한 강경책의 강력한 빌미로 삼게 될 것이다. '우리가 준 돈이 총알로 되돌아온다'는 식의 강경 여론 몰이가 힘을 얻을 것이며, 대북화해협력 정책의 명분이 약화되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는 것이다.

한반도 군비통제와 군축 본격 추진해야

향후 북한의 군사적 변화는 이처럼 두 가지 방향에서 추진될 것이다. 하나는 비정상적으로 비대한 병력수를 감축해 한편으로는 경제재건 인력으로 투입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남북, 북미, 북일관계의 정상화의 근거로 삼을 것이다. 다른 하나의 방향은 노후한 무기를 부분적으로 현대화함으로써 '유사시'를 대비할 것이다.

예상되는 이러한 북한의 군사적 변화가 한반도 정세에 미칠 영향은 대단히 '복합적'이다. 북한의 군사적 준비태세의 완화와 병력 감축은 그 자체로도 한반도 긴장완화와 군사적 신뢰구축에 큰 기여를 할 수 있다. 동시에 남북, 북미, 북일관계 개선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의 이러한 전향적인 변화가 그 동안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이유로 거론조차 하기 힘들었던 여러 가지 사안들에 대해서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주한미군의 성격변화·감축·철수 문제부터, 최근 남한 사회의 뜨거운 감자로 부각되고 있는 북한 주적 표현, 군복무 기간 단축이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등을 둘러싼 논쟁에 이르기까지 북한의 군사적 변화는 새로운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북한군의 부분적인 현대화 여부는 향후 한반도 정세의 핵심적인 변수 가운데 하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북한군의 현대화 조짐만 보여도 한-미-일의 대북강경파들은 들고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향후 대북정책의 중심축의 하나는 군비통제와 군축을 추진해야 하는 일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한편으로는 북한의 군사적 준비태세 완화와 병력수 감축 계획이 긴장완화와 신뢰구축, 그리고 북한의 경제재건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치밀한 전략을 세워야 할 것이다.

특히 최근 북한의 경제개혁의 성격과 내용을 볼 때 북한이 병력수를 감축해 노동력을 확보해야할 필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기 때문에, 남한으로서는 대단히 중요한 기회를 맞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대북정책의 핵심적인 두 가지 목표인 군사적 대결 상태 종식과 민족경제공동체 건설이 선순환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향후 핵심적 변수의 하나인 북한군의 현대화 여부와 관련해서는 북한에게 군현대화에 신중해질 것, 특히 공격적 성격의 군비증강에 신중해질 것을 촉구하면서, 부분적인 현대화는 용인하는 자세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물론 이러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남한과 미국 역시 군사적으로 양보해야할 준비를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대북지원과 관계정상화를 지렛대로 삼아 북한의 군사적 변화를 도모해왔던 지난 과정이 주는 교훈은, 적어도 군사문제에 있어서는 '상호주의'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향후 한반도 군사문제의 전개 방향을 전망할 때, 북한의 군사적 변화 여부에 못지 않게 주목해야할 점은, 북한과 적대 상태에 있는 남한, 미국, 일본의 군사력과 이들 국가 사이의 동맹관계는 날로 강화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이 점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재검토가 전제되지 않으면,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정착과 군축도 요원한 얘기가 될 수밖에 없다.

전환기에 접어든 한반도, 북한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체제안전보장과 경제발전에 대한 전망과 비전을 확실히 보장받는다면, 군사적으로도 변화하겠다는 것이 북한이 남한과 국제사회에 보내는 핵심적인 메시지 가운데 하나이다. 이제 "북한은 변하지 않았다"고 강변해오고 있는 한-미-일의 강경파들이 변할 차례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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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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