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닝 풍토로 알아보는 대학 현실

커닝과 레포트 베끼기, 넘어가도 되는 일?

등록 2002.10.17 23:20수정 2002.10.18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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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닝 6도
인(仁) - 공부를 잘 못하는 동료를 위해 아는 것이 있으면 보여주는 어진 마음을 갖는다.
의(義) - 커닝을 같이하다 들켜도 절대 공범자(친구)를 불지 않고 자기가 혼자 뒤집어쓰는 의를 닦는다.
예(禮) - 절대 보여준 친구보다 점수를 더 맞지 않는 예의를 지켜야 하며 그것을 지키기 위해 보여준 친구보다 먼저 나간다.
지(知) - 평상시 감독들의 습성을 파악하고 과목마다 누가 잘하며, 누가 잘 보여 주는지를 파악하는‘지’의 덕을 기른다
신(信) - 넘어온 커닝 페이퍼의 내용이 상당히 의심이 가도 넘겨준 친구를 꾹 믿고 베끼는 마음을 길러야 한다.
용(勇) - 감독이 아무리 삼엄해도 용감히 커닝을 하는 용기를 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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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명진


다가오는 중간고사. 학부제 이 후 더이상 놀아도 되는 학년은 없다. 1, 2학년부터 학점관리를 하지 않으면 원하는 전공을 하지 못하게 된다. 공부를 해야 하긴 하지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매일 술자리다, MT다, 이리저리 다니다 보면 막상 공부하기가 막막해지기 마련이다.

공부는 안했지만 성적표에 F를 새길 순 없고 묘안이 떠오르니 바로 커닝(cheating)이다.

벽, 책상, 의자에 까맣게 채워진 글씨들. 축소복사, OHP필름에 베껴 써두기, 미리 작성한 답안지 내기. 때가 때이니 만큼 핸드폰과 PDA까지 동원된다. 커닝은 도구의 개선을 거치며 거듭나고 있다. 한국기독학생회 IVF에서 대학생 39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10명 중 7명이 부정행위를 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조교에게 들어본다, 이런 학생 수상하다

△불안한 표정, 눈을 계속 마주친다 △마주치는 시선을 피한다 △움직임이 적고 굉장히 부자연스럽다 △시험지를 자꾸 들거나 미묘하게 시험지의 좌우 운동을 꾀한다 △손을 일정 각도로 유지하며 힐끔댄다 △ 모자 쓴 학생이 커닝을 많이 한다 △들어와서 초반에 열심히 쓰고 5분만에 나간다. 이 학생은 미리 반정도 작성한 답안지를 가져와 나머지 반을 쓰고 가는 것이라 한다. 글씨체와 색깔이 다른 것으로 알 수 있다.

성공회대 조교 3년차 서유정씨, 그녀만의 커닝하는 학생 잡아내기 노하우를 들어보자. 미심쩍은 분위기가 풍긴다면 행동 개시. 주위 교란법, 커닝하는 학생들은 조교의 위치파악에 사력을 다한다. 학생들에게 혼란을 주기 위해 반복적으로 강의실 앞뒤를 활보한다.


다음 단계. 노골적으로 커닝을 하는 학생을 발견하면 그만둘 때까지 눈치를 주거나 간접적으로 제지를 가한다. 끊임없는 신경전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면 개인 감독에 들어간다. 마지막 도가 지나친 학생들에게는 물증을 압수하고 책상에 써두었다면 보란듯이 빡빡 지워준다.

걸린 학생들의 반응은 대개 두 가지, 발뺌형 또는 애교형의 태도를 보인다고 한다. 능청을 떨며 ‘난 아니오’라는 표정을 짓거나 미안한 표정에 애교 어린 미소를 보내며 위기를 모면하기도 한다.


그러나 막상 잡아내더라도 시험지를 찢고 퇴장을 시키거나 담당교수에게 알려 조치를 취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학생들과의 개인적 친분이나 자기 평판도 있기 때문이다. 다음은 교수신문에서 실시한 ‘학생의 시험부정행위 적발시 어떻게 하셨습니까’라는 설문조사 내용이다.

전체 271명의 교수 중, ‘경고만 했다’가 34%로 가장 높은 수치를 보였고 ‘성적삭감을 했다’가 30% 였다. 좀 더 강도 높은 조치인 ‘성적을 주지 않았다’와 ‘학내 규정에 따라 처벌한다’는 항목은 9%와 6%에 그쳤다.

커닝 왜 하나 … 일률적인 시험방식도 문제

‘커닝 왜 하나’라는 질문에 대부분의 학생들은 ‘시험준비는 미흡하지만 점수는 잘 얻어야하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하지만 커닝하는 이들의 깊은 속내를 읽어 내려가면 커닝할 때는 답이 아니라도 중간점수라도 맞았으면 하는 바람을 알 수 있다.

성균관대 법학과 김모씨는 “솔직히 시험 준비를 못했으니까 커닝하죠, ‘F만 면하자’는 심정으로 예요”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도 커닝이 나쁘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또 “컨닝은 필요악이지만 지적재산권 침해같은 일종의 범죄행위지만 학점과 순위 위주의 대학 경쟁 상태가 계속되는 한 쉽게 사라지지는 않았을 꺼예요”라고 말했다.

커닝을 손쉽게 하는 시험형식에도 개선이 필요할 것이다. 기출문제를 재활용하는 무성의한 태도나 시험결과만 집중평가하는 것도 문제다. 실제로 객관식이 아닌 구술형태 시험 강화를 요구하는 학생들도 많다.

성공회대 사회복지학과의 한 조교는 커닝 방지를 위해 '감독관 수의 증대'를 강조하기도 한다. 하지만 시험시간 중 3-4명의 조교가 한 강의실에 들어가 감독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또한 학생들이 요구하는 시험 형식의 전환에 관해 “교수님 나름대로의 기존방식이 있는데 나서서 제안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개선이 쉽지 않다”라고 전한다.

채플· 족보식 레포트, 베껴쓸 수밖에

a 레포트 정보제공 사이트 '커닝페이퍼'

레포트 정보제공 사이트 '커닝페이퍼' ⓒ 황예랑

학점을 위한 잘못된 열정은 레포트에서도 드러난다. 해피캠퍼스, 레포트 천국, 레포트 뱅크 등 레포트 전문 사이트를 이용해 내용을 발췌하고 문체를 교정하는 꼼꼼함까지 보여준다.

고려대 인문학부 이모씨는 “레포트 베끼기가 잘못된 행동인 것을 알지만 주위에 많은 친구들이 별 노력없이 고학점을 따내는 것을 보고 당연히 따라하게 된다”고 말한다.

같은 날에 여러 레포트를 제출하게 되는 경우 부담이 커서 빨리 쓰려고 베끼기도 한다. 족보식 레포트의 경우는 가장 교정이 쉬운 형태로 선배들의 레포트를 잘 고치면 된다. 또한 체계적인 레포트 쓰는 법을 가르쳐 준 적이 없기 때문에 다른 레포트를 참고하다 보면 베끼기가 되는 경향도 없지 않다.

반면에 교묘하게 베꼈다고 해도 교수들은 금방 알 수 있다고 한다. 학생들이 제출한 보고서간에 유사하게 겹치는 부분, 전혀 다른 어투, 연결어미가 어색한 레포트들은 거의 베낀 것이라고 한다. 따로 불러서 처리하지는 않지만 점수는 F를 매기는게 일반적이다.

베껴쓸 수밖에 없는 레포트의 내용에 문제를 지적하는 의견도 있었다. 의무화된 채플 과목의 보고서나 해당과목의 내용과 전혀 동떨어진 과제를 해야하는 목적이 없는 과제들은 시간들이는 게 아까워 베끼기를 하게 된다고 한다.

커닝과 레포트 베끼기 현상에 관해 성공회대 영어학과 김성찬 교수는“아직 훈련, 양성기간에 속한 학생들이 행하는 작지만 비양심적인 행동들은 현재 사회에 공공연하게 퍼진 뇌물과 촌지 등 비리행위를 낳는 시초가 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덧붙이는 글 | 위 기사는 '대학생신문' 168호(10월 15일)에도 실린 기사입니다.

덧붙이는 글 위 기사는 '대학생신문' 168호(10월 15일)에도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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